“오죽 답답했으면 우리가 서울시청 기자실까지 찾아갔겠습니까. 보도자료만 돌리고 거의 쫓겨나다시피 나왔는데 어디에서도 연락이 안 오더라고요. 분양광고 받아먹고 좋은 소리만 늘어놓던 언론도 책임이 있는 거 아닙니까.” 서울 관악구 신림동 C&백화점 피해자 협의회 장영학 총무의 이야기다. C&우방(옛 우방건설)에서 짓던 이 백화점은 자금난을 겪던 C&그룹이 지난해 12월 워크아웃에 돌입하면서 1년 반 가까이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C&백화점은 ‘분양 후 위탁운영’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고 투자자들을 끌어 모았다. 분양받은 사람이 매장을 직접 운영하는 게 아니라 백화점이 이를 위탁 운영하고 수익률을 배분하는 방식을 말한다. 750여명의 투자자들 대부분이 무작위로 걸려온 투자안내 전화를 받았거나 길거리에서 나눠준 전단지를 보고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시행사인 플레이쉘은 이들에게 2년 동안 연 11%의 수익률을 보장한다고 약속했다.
지난해부터 소비심리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신림동 상권 역시 찬바람이 불었지만 상당수 투자자들은 은행 이자의 3배에 이르는 수익률에 현혹됐고 설마 재계 서열 66위의 C&그룹이 무너질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 무렵 언론에서 쏟아졌던 홍보 기사도 이런 확신을 거들었다. 대부분 시행사가 제공한 보도자료를 그대로 인용한 기사였지만 “서부지역 최고의 쇼핑 명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는 내용에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C&백화점은 지난해 헤럴드경제가 선정한 상반기 히트상품으로 꼽히기도 했다. 이 신문은 “백화점 내 매장을 촘촘하게 떼어 나눠주던 틀을 깨고 ‘분양 후 위탁운영’이라는 분양방식을 과감히 도입, 대표적인 분양 성공 사례로 주목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머니투데이는 “국내에선 처음으로 LED 외관 등 세계 12개국 테마형 복합 건물을 벤치마킹, 지역내 랜드마크가 될 수 있도록 차별화했다”고 보도해 투자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백화점은 이제 막 골조공사만 끝냈을 뿐이다. 총 분양금액은 3050억원인데 계약자들이 1226억원을 냈고 농협에서 800억원의 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까지 받았지만 이후 중도금 납부가 안 돼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2천억원 이상이 투입됐는데 공사 진행률은 아직 절반이 채 안 됐고 투자금은 온데간데 없이 모두 사라졌다. 투자자들은 투자금의 일부가 C&중공업 등에 흘러들어갔을 의혹을 제기하고 있지만 확인이 안 된다.
만약 C&그룹이 경영난을 겪지 않았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계약자들은 애초에 투자원금 조차도 회수하기 어려운 ‘사기 분양’이었다고 주장한다. 실제 공사비용은 2천억원 수준인데 분양금액은 3천억원이 넘었고 게다가 건물 전체를 조각조각 잘라서 팔았는데 누가 여기 들어와서 위탁운영을 하려고 할까. 시행사만 수백억원을 챙기고 계약자들은 엄청난 손실을 뒤집어 쓸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백화점 점포 일부를 좋은 조건에 분양한다고 광고해서 그런 줄로만 알았죠. 무이자 대출까지 해준다고 하고 몇 달이면 프리미엄 받고 되팔 수 있다길래 퇴직금에 빚까지 내서 들어온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많았는데 다들 신용불량자가 됐어요. 일단 돈부터 끌어들여 건물을 짓고 공사비만 챙겨서 빠져나간 뒤 나 몰라라 할 생각이었던 거죠.” 1층 점포를 분양 받았던 계약자 이아무개씨의 이야기다.
계약자들은 새로운 시행사를 물색해서 건물을 완공하고 위탁 운영자를 찾는다는 계획이지만 기존 시행사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버티고 있어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지난 2003년 동대문 굿모닝시티 사건 이후 상가 후분양제가 도입됐는데도 워낙 빠져나갈 구멍이 많아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많다. C&백화점의 경우는 부동산신탁회사와 신탁계약을 맺었지만 시행사가 나가떨어지고 나니 그 피해는 고스란히 계약자들 몫이 됐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김헌동 본부장은 “선분양을 없애고 후분양 제도를 의무화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조한다. 이미 만들어진 물건도 꼼꼼히 따져보고 사야 하는데 어떻게 만들지도 않은 물건을 보지도 않고 살 수 있느냐는 이야기다. 김 본부장은 건설사들과 공무원 못지않게 언론도 공범이라고 주장한다. “후분양을 하면 물건이 있으니까 광고를 할 필요가 없거든요. 선분양을 해야 광고가 쏟아지겠죠. 언론의 침묵은 비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