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는 한 기업의 입사 면접에서 면접관이 “노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취업 정보 커뮤니티에 모범 답안이라고 올라온 답변은 다음과 같다. “노조는 가혹하고 부당한 착취를 일삼는 기업에서 필요한 것 아닌가. 국내 최고의 대우를 해 온 ○○기업은 노조를 만들 이유가 없는 기업이라고 본다.” 면접자의 신념이나 철학은 중요하지 않다. 이미 정답은 결정돼 있고 그 정답을 말하지 않으면 실격이다.
최근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서 필수 스펙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경제 능력 테스트도 수험생들에게 이런 딜레마를 안겨준다. 가치 판단을 배제하고 출제자의 의도를 읽는 게 우선이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답을 고르는 게 아니라 출제자가 옳다고 생각할 것 같은 답을 골라야 한다. 혹독한 취업 전선에 나선 수험생들은 이처럼 기업의 이해관계에 맞춰 자신의 신념과 철학에 위배되는 답을 선택하도록 훈련을 받는다.
“최저 생계비만 지급해도 악덕기업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지난해 2월 실시됐던 TESAT 2회 시험 18번 문제를 보자. “최저임금제를 실시할 때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 아닌 것을 고르라”는 문제인데 “① 노동공급이 늘어나 실업률이 높아진다”, “③ 고용주가 불법 고용을 시도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④ 최저임금 이상으로 임금수준이 상승해 기업에 부담이 된다”, “⑤ 일자리가 있는 미숙련 근로자의 소득을 증가시킬 가능성이 있다” 등 부정적인 보기가 대부분이다.
물론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일정 부분 실업률이 높아지고 기업에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제도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최소한의 임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기업을 퇴출시키는 효과도 있다. 올해 최저임금 4110원은 주 40시간 근무 기준으로 월급이 86만원이다. 그런데 해설서에는 “최저가격을 설정하면 시장에서 초과수요가 나타난다”면서 “일자리가 늘어날 가능성이 줄어든다”고 풀이하고 있다.
다음 문제에서는 “최저 생계비가 80원인데 어느 기업이 임금을 80원으로 책정해 운영하고 있다”는 상황에 대한 설명으로 “임금을 80원으로 책정하더라도 일하겠다는 근로자는 계속 존재한다”는 보기가 정답으로 제시되기도 했다. 해설에는 “이 기업을 악덕기업이라거나 퇴출시켜야 한다는 말은 시장원리에 맞지 않는다”면서 “80원으로 균형을 이룬 상황에서 정부가 개입해서 최저임금을 얼마로 설정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고 설명했다.
“고가 부동산 있어도 부자 아닐 수도. 공급 확대가 유일한 대책.”
일반적인 경제 상식을 묻는 질문이 절반 이상이지만 이처럼 가치 판단을 묻는 질문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이 문제는 시장에서 형성된 임금을 정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가치 판단을 가정하고 있다. “정부가 개입해서 더 높은 수준의 임금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는 보기를 선택하면 틀린다. “임금을 최저생계비 수준으로 유지하는 기업이라면 퇴출시키는 것이 국가에 이익이다”는 보기도 역시 오답이 된다.
부동산 문제 역시 일방적인 시장 논리를 강요한다. 애초에 문제에서부터 “아파트 값은 실거주 수요와 투자 수요가 공급보다 더 급격히 증가하기 때문에 폭등한다”고 가정하면서 “근원적 대책이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데 “아파트 공급을 크게 늘린다”를 골라야 정답이 된다. 투기적 가수요를 잡고 개발이익과 불로소득을 환수해야 한다는 반대 주장은 모두 틀린 답이 된다. 공급 확대가 유일한 대안이라는 경제지들의 논리를 그대로 답습한 문제다.
종합부동산세와 관련된 문제의 보기에는 폐지론자들의 주장으로 “고가의 부동산을 보유했다고 해서 진짜 부자인 것도 아니다”라거나 “세금이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는 효과도 없다”는 논리가 등장한다. “존치론자의 논리대로라면 종부세가 아닌 재산세를 올려야 한다”는 문항도 있다. 찬반양론을 싣고 있는 것 같지만 존치론자의 주장이 옳지 않다는 결론이 이미 내려져 있는 셈이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비교한 다음 명제들 가운데 틀린 것을 고르라”는 질문에서는 아예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배치되는 개념으로 상정한다. “민주주의는 국민주권을, 시장경제는 소비자 주권을 전제한다”는 문항이나 “다수결 원칙은 시장가격 결정원리보다 대체로 비효율적이다”라는 문항이 맞는 개념으로 제시됐다. 해설에서는 “민주적 의사결정을 통한 경제정책이 항상 친시장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교육은 공공재가 아니다. 과외 규제하면 가격만 뛴다.”
자유경쟁을 가로막는 정부의 개입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대목도 많다. 학원 수업시간을 제한하는 조례와 관련된 문제에서는 “위험부담이 커진 만큼 심야 과외 수업료가 더욱 높아질 것이다”라는 문항이 정답으로 제시됐다. “인위적으로 시장가격에 개입해 공급을 제한하는 최저임금제와 유사한 정책으로 초과수요가 생겨 가격이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는 해설이 붙어있다. 정부의 시장개입은 대부분 부정적으로 평가된다. 시장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다.
외국어 고등학교와 사교육 시장에 관한 문제에서는 “고등교육은 공공재이기 때문에 정부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문항이 틀린 답으로 처리됐다. “외국 학교의 분교를 허가 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진입장벽”이며 “공교육은 경쟁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교육의 질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등이 옳은 답으로 제시됐다. 교육이 공공재인가 아닌가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대목인데 이 시험에서는 정부가 개입해서는 안 되는 영역으로 간주된다.
기업의 이익 배분에 대한 편향된 시각도 곳곳에서 드러난다. “기업의 경영권이 주주에게 귀속되는 까닭은”이라는 질문의 답은 “주주들이 잔여취득자이기 때문”이다. “기업 이윤의 본질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한 것은”이라는 질문의 답은 “임금, 이자 등 기업이 약속한 모든 비용을 지불하고 남은 소득”이다. 해설에서는 “기업의 사회적 역할이 강제되지는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순환출자 규제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위배된다.”
이 시험에서는 기업의 이익을 주주의 몫이라고 단정짓고 노동자와 소비자, 채권자 등 이해관계자의 권리를 부정하는 극단적인 주주자본주의를 정답으로 상정한다. 지난해 8월 실시된 4회 시험에서는 “나라별 기업 지배구조의 특성에 대한 기술 중 옳은 것을 고르라”는 질문에 “우리나라는 주주자본주의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는 보기가 정답으로 제시되기도 했다. 역시 가치 판단을 배제하고 일방적인 시장 논리를 강요하는 문제다.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문제도 수상쩍은 부분이 많다. “소유경영은 부패 가능성이 전문경영인 기업보다 구조적으로 높다”는 문항은 틀린 답이다. “가족 경영은 전 근대적 경영이므로 개혁해야 한다”거나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경영 효율성 제고에 필수적이다”라는 문항 역시 모두 틀린 답이다. 사상 최대 규모의 분식회계로 차명자산을 조성했던 삼성 그룹 비자금 사건을 지켜봤던 사람들에게 쉽게 답변하기 어려운 문제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비춰볼 때 자유시장경제에 부합하지 않는 규정”으로 “대기업 집단의 상호출자 금지”와 “계열회사 채무보증 제한”을 고르도록 한 문제는 정확히 삼성그룹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 우리나라 재벌들과 같은 순환출자 구조를 보이는 기업집단이 세계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전제조건이 무색할 정도다. 다른 문제에서 강조했던 주주자본주의의 원칙에도 상충되는 논리다.
해묵은 비교우위 이론을 내세워 자유무역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문제도 많다. 한 시간에 물고기 5마리와 바나나 100개를 따는 타잔과 같은 시간에 물고기 8마리와 바나나 300개를 따는 치타를 비교하는 문제에서는 “타잔은 물고기에서 비교우위가 있다”는 문항이 정답이 된다. 비슷한 다른 문제의 해설에서는 “비교우위에 있는 품목을 중심으로 자유무역을 할 경우 두 나라가 모두 이익을 얻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폐해가 드러나면서 비교우위 이론이 도전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이런 문제에서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장하준 캐임브리지대학 교수 등은 “경제발전에 성공한 나라들은 비교우위 이론에 입각한 자유무역이 아니라 유치산업의 보호 육성으로 성장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오히려 자유무역이 후진국의 경제를 선진국에 종속시키는 부정적인 사례가 훨씬 많았다.
심지어 “시장원리로 환경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자원 문제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한 것을 고르라”는 질문에 “시장경제는 고갈되는 자원의 값을 올려 대체자원을 개발하도록 하는 등 자원고갈 문제에 대처할 유인을 강화한다”는 문항이 정답으로 제시됐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석유 에너지가 고갈되더라도 새로운 에너지가 개발될 것이기 때문에 굳이 에너지 소비를 줄일 필요가 없게 된다.
TESAT 해설서에는 “경제논리를 이해하는 것은 정치적 주의․주장을 이해하는 것과 다르다”면서 “이런 문제는 암기한다고 풀 수 있는 것은 아니고 평소 공부가 필요하고 상대방의 견해를 깊이있게 경청하는 자세가 요구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 시험의 여러 문제들에서 일방적 정치적 주의․주장이 발견된다. 가치판단이 필요한데다 주의주장이 엇갈리는 사안을 객관식 문제로 출제한 것부터 애초에 근본적인 한계라는 지적도 있다.
고등학교 교과서부터 취업 시험까지.
전경련 시장주의 교육, 균형감각 상실 우려.
경제능력 테스트는 한국경제에서 주관하는 TESAT와 매일경제에서 주관하는 매경TEST가 있다. 지난 1월 실시된 6회 TESAT에는 4500명 가까이 응시했다. 한국경제 관계자는 누적 응시자가 2만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KT와 한국관광공사 등 주요 공기업을 비롯해 우리은행과 신한은행 등 은행권, 대우증권, 동양종금증권 등 증권사, 현대자동차그룹과 한화그룹 등 30여개 기업과 그룹에서 TESAT을 입사 증빙서류로 요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TESAT 보다 늦게 시작돼 최근 3회까지 치러진 매경TEST도 인기가 만만치 않다. 3회 시험에는 3천명 이상이 응시했다. 매일경제는 단체 챔피언십을 도입해 대학 동아리들끼리 경쟁을 독려하고 있다. 두 시험 모두 기존 임직원들의 단체 응시도 부쩍 늘어났다. 신입 행원을 대상으로 시험을 치르는 은행도 있고 기존 직원의 인사고과에 반영하는 기업도 있다. 이 시험을 준비하는 대학 동아리도 늘어나는 추세다.
매일경제와 한국경제는 이틀이 멀다하고 이 시험의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어느 기업이 이 시험 결과를 입사 증빙서류로 채택했다거나 누가 시험을 봤다거나 하는 등의 기사와 함께 “매경TEST, 경제 이해력 높이는데 최고”, “매경 TEST 고품격 문제 돋보였다”, “대학가는 지금 TESAT 열공 중”, “TESAT이 명품 시험인 4가지 이유” 등 자화자찬이 끊임없이 쏟아진다. 시험이 끝날 때마다 고득점자 인터뷰와 기출문제 분석 등도 빠지지 않는다.
대부분 응시자들이 하나라도 스펙을 더 쌓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이 시험을 준비하지만 서류 점수에 반영하는 것으로 기사에 소개된 한 은행 관계자는 “하나라도 스펙이 더 있으면 좋겠지만 특별히 추가 점수를 준다거나 성적을 제출하지 않는다고 해서 불이익을 받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앞으로 금융기관이나 대기업에 취업하려면 TESAT을 반드시 치러야 한다”는 한국경제의 기사는 다분히 과장된 것이다.
일부 응시자들은 편향된 출제 의도에 불만을 터뜨리기도 한다. 한 외국어고등학교 학생은 학교 경제동아리 홈페이지에 “전경련이 대주주인 신문 아니랄까봐 교육은 공공재가 아니라는 황당무계한 소리를 하고 있다”고 적기도 했다. 이 학생은 순환출자 구조 규제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다는 문제를 인용하면서 “역시 삼성을 의식한 경제신문의 한계”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고등학생들의 응시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취업 준비생인 한 응시자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문제를 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특히 아파트 수요 증가에 대한 대책이나 종부세 폐지 논란, 환율 등 경기 안정대책 등의 문제들은 지난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현 정부의 정책 논리가 타당한 것처럼 정답을 유도한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가치판단까지 채점하려 해선 공신력 있는 시험으로 클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는 심지어 시험 결과를 토대로 시장경제 태도 지수(T-MAI)라는 걸 만들어 발표하고 있다. 한국경제의 설명에 따르면 이 지수는 시장경제를 얼마나 얼마나 이해하고 있으며 친화성이 있는지를 검증해 응답자의 성향을 파악하는 지표가 된다. 시험점수는 높지만 시장 친화성 분야에서는 낮은 점수를 받을 수도 있다. 한국경제는 참고자료로만 활용된다고 밝혔지만 시장 친화성 등을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논란이 될 소지가 있다.
류동민 충북대 경제학과 교수는 “TESAT나 매경TEST 뿐만 아니라 KDI(한국개발연구원)에서 주최하는 고등학교 경제경시대회도 있고 하이에크소사이어티 등에서 주최하는 여름학교도 있다”면서 “전경련 등의 시장주의 교육이 청소년과 대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지적했다. 류 교수는 “한미FTA(자유무역협정)의 긍정적인 측면만 부각시킨다든가 노동운동을 비방하고 재벌 시스템을 옹호하는 등 이념적으로 편향된 문제가 많다”고 덧붙였다.
류 교수는 전경련이 만든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나 한국경제가 고등학교들에 무료로 배포하고 있는 논술 잡지 ‘생글생글’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명했다. 류 교수는 “학생들에게 경제문제를 보는 관점이 보는 이의 물질적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사회과학으로서의 경제학 그 자체가 물질적 이해관계의 반영이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 고려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헌호 시민사회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이처럼 젊은이들의 상상력을 차단하고 주어진 틀에 꿰어 맞추는 것은 성장잠재력이나 사회통합 차원에서도 도움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홍 연구원은 “단순한 경제학 원론을 넘어 경제 사회학적 관점과 예비 노동자로서의 기본적인 지식과 노동인권 등을 균형있게 배워야 할 텐데 편향된 시장주의 교육에 매몰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미디어오늘, 3월3일 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