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백혈병으로 숨진 전직 삼성전자 직원 박지연씨에 대한 보도를 내보낸 곳은 종합일간지 가운데서는 한겨레 밖에 없었다. 미디어오늘과 시사인, 아이뉴스24, 오마이뉴스, 참세상, 프레시안 등 몇몇 주간지와 인터넷 신문을 제외하면 대부분 언론이 일제히 이를 외면하고 침묵했다. 지상파 방송도 입을 닫았다. 국내 최대의 기업에서 노동자들이 계속 죽어나가고 있는데 이 사실이 언론에는 보도되지 않고 있다.

다산인권센터 등에 따르면 삼성전자 전현직 노동자 가운데 지금까지 확인된 백혈병과 림프종 등 조혈계 암 발병자는 22명에 이른다. 박씨를 포함해 이 가운데 8명이 숨졌다. 이들과 가족들은 이 집단 백혈병이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발생하는 유독성 물질로 인한 직업병이라며 산업재해로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언론은 왜 침묵하는 것일까.

박씨가 지난 2007년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신청을 하면서 제출한 진술서에 따르면 박씨는 삼성전자 온양공장의 D램 생산 1라인에서 일했다. 박씨는 제품의 불량 유무를 검사하는 일을 맡았다. 박씨는 “엑스레이 검사가 가장 비중이 컸는데 10년이 넘은 노후 설비라 안전장치 등 잠금장치조차 없어 바쁠 때면 설비가 켜져 있는지도 모른 채 문을 열고 작업했던 적도 많았다”고 진술했다.

박씨는 “도금 접착성 검사를 할 때는 제품을 245℃의 납에 담그는데 이때 하얀 연기가 코로 흡입돼서 역겹고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고도 진술했다. 납이 입혀지고 난 뒤에는 세척제 역할을 하는 141B라는 약품에 담그는데 이때도 이 약품이 손에 묻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박씨는 “면 장갑을 끼지만 그대로 손에 스며들었고 물로 씻어도 약품이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었다”고 진술했다.

박 씨는 병원을 찾기 전부터 생리불순이 잦았고 하혈을 해서 방진복에 피가 묻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는 “4조3교대가 원칙이지만 사실상 2교대에 2주 연속 야간 일을 할 때도 있었다”면서 “주변에 유산을 경험한 동료도 있었다”고 진술했다. 다른 환자들의 진술도 대체로 일치한다. 화학물질을 피부에 접촉하거나 들이마시는 일이 많았고 안전교육도 형식적인 절차에 그쳤다. 이유 없이 멍이 들고 어지럽거나 구토 증세를 보이는 경우도 많았다.

삼성전자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 결과를 근거로 직무 관련성을 전면 부정한다. 삼성전자 직원이 5만명이 넘는데 이 가운데 22명이면 많은 숫자가 아니라는 논리에서다. 그러나 여기에는 통계적 오류가 숨어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종란 노무사는 “기흥공장의 1~3라인에서 일했거나 일하는 노동자들만 따로 뽑아서 계산해 보라”고 반박한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조사에서는 삼성전자 여성 노동자의 사망비율이 일반인의 1.48배, 암 발병 비율이 1.31배 높게 나타났지만 이 연구원은 통계적으로 의미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조사에서 남성의 경우는 오히려 일반인 보다 낮게 나타났다. 그러나 이 노무사는 “특정 생산라인에서 환자가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는데 이들 고위험 집단을 따로 분석하지 않고 전체 직원들의 발병률을 뭉뚱그려 본질을 희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역학조사 과정에서도 문제가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반올림에서 지난 1월 펴낸 “삼성 반도체와 백혈병”이라는 보고서를 보면 산업안전보건공단은 환자와 환자 가족들의 조사 참여를 거부했다. 회사기밀과 개인정보가 노출된다는 이유로 삼성전자가 제출한 자료 열람도 거부했다. 역학조사에 참여한 일부 조사위원들이 조사가 부실하다며 반발하기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노무사는 산재신청 승인절차에도 문제를 제기한다. 이 노무사는 “한 번도 직접 진찰하거나 치료한 적도 없고 얼굴 한 번도 본 적도 없는 환자에 대해 현장에 한 번 가보지도 않고 웨이퍼가 뭔지도 모르고 141B가 어떤 약품인지도 모르는 자문의사협의회 의사들이 어떻게 직무 관련성을 평가한단 말이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자문의사협의회의 자문을 받아들여 이들의 산재신청을 모두 거부했다.

미국에서는 암 사망자 50만명 가운데 4%인 2만명이 직업적인 원인으로 사망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바 있다. 우리나라 암 사망자는 2007년 기준으로 6만7561명인데 4%면 2700명 정도가 된다. 그런데 실제로 암 사망자가 산재 승인을 받은 경우는 1999년부터 2005년까지 7년 동안 149건 밖에 안 됐다. 발병 원인을 찾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우리나라는 산재신청 건수도 적지만 승인 비율이 매우 낮다.

삼성전자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는 하이닉스반도체, 해외에서는 IBM과 페어차일드, 산요와 소니, 내셔널반도체 등의 전자 또는 반도체 회사에서 유해 화학물질 중독사고가 보고된 바 있다. IBM의 경우 뇌암 발병율이 일반인의 4배, 다발골수증은 6배, 유방암은 2배에 이른다는 조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IBM 역시 “자연 발병으로 추측될 뿐 직무 관련성이 밝혀진 바는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환 경운동가인 테드 스미스 등이 쓴 ‘세계 전자산업의 노동권과 환경정의’라는 책에는 멕시코 삼성전자 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의 증언이 실려 있다. 이 노동자는 케이블에 묻은 에폭시 얼룩을 제거하는데 트리클로로에틸렌을 썼는데 장갑이 없었고 마스크도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트리클로로에틸렌이 녹여버리기 때문에 라텍스 장갑은 낄 수가 없고 면으로 된 마스크가 지급되긴 하지만 아무런 보호기능이 없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물론 삼성전자 등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들의 질병과 직무의 연관성은 정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고통을 호소하는 노동자들이 있고 이들이 계속 죽어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통계적으로 의미가 없다고는 하지만 이들의 발병률은 일반인 평균보다 훨씬 높다. 그런데도 제대로 된 실태 조사도 없고 사회적 문제제기도 안 되는 가운데 언론의 방조 아래 철저하게 은폐돼 왔다.

이 노무사는 “백혈병 사망 위험이 1.48배 높게 나타났다는 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다고 일축돼서는 안 되는 의미있는 결과”라고 주장했다. 이 노무사는 “왜냐하면 백혈병은 발병률이 낮은 질병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유의미한 결과를 얻기 어려운 게 당연하고 오히려 유의미하지 않은 약간의 문제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게 옳다”고 거듭 강조했다.

반올림은 백혈병 환자 5명의 산재신청이 거부된 뒤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들은 우리나라의 산재 적용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한 반면 유해 화학물질에 대한 규정이 너무 느슨해서 알려져 있지 않은 위험에 취약하다고 주장한다. 작업 환경의 유해 여부를 피해자가 직접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정보가 차단돼 있고 접근이 쉽지 않은데다 정부기관도 대부분 기업에 우호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삼성전자는 한때 반올림 집회에 취재기자로 위장한 직원을 내보내 구설수에 오르는 등 비상한 관심을 보였지만 최근에는 무관심으로 대응하고 있다. 일부 환자들에게는 위로금을 제시하며 산재신청을 하지 말 것을 종용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역학조사 결과 직무 관련성이 밝혀진 바 없고 행정소송 등이 걸려있는 사안이라 자세한 언급은 할 수 없다”고만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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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Comment

  1. 삼성의 위기는 여기서 시작되지 않을까요? 가죽소파를 볼때마다 혹시 이걸 만들기 위해서 누군가가 포르말린을 마셨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그 제품까지도 혐오하게 됩니다. 삼성반도체가 들어있는 수많은 전자제품들을 볼때마다.. 돌아가신 분들이 생각날거 같네요.. 다른 반도체 회사에서는 이런 환자들이 발생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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