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르네 데카르트는 “의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의심하라”고 말했다. 국방부는 어제 브리핑에서 천안함 침몰 사고의 원인이 ‘수중 비접촉 외부 폭발’이라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북한이 개입했다고 단정짓지는 않았지만 “어뢰나 기뢰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힌 것은 북한을 용의자로 지목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최종 결론은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최근 언론 보도 태도에 나는 쉽게 동의할 수 없다.


나는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공격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부가 그렇게 발표했다고 해서 그걸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나. 그동안 제기된 수많은 의혹이 모두 풀렸나. 언론의 책임은 끊임없이 의심하고 문제제기를 하는 것 아닌가. 북한의 공격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정부가 무엇인가 숨기고 있으며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밝혀야 한다는 이야기다. 어쩌면 거기에 이 끔찍한 참사의 본질이 숨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언론이 이 사건의 실체를 정확하게 예언할 수는 없고 섣불리 예단해서도 안 된다. 그건 언론의 영역을 넘어선다. 좌초거나 피로파괴거나 내부폭발이거나 외부폭발이거나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되 끊임없이 의심하고 주어진 정황을 종합해 사건의 실체에 좀 더 가깝게 파고드는 것이 최선이다. 실체가 드러날 때까지 끊임없이 의심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고 이를 해명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다. 과연 이번 사고 이후 언론과 정부가 그 역할과 책임을 제대로 다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조선일보 22일 1면 머리기사의 그래픽과 다음 아고라 쓰엉포아님의 패러디. 개념도에 개념이 빠져있다고나 할까.)

아래는 어제 썼던 기사.

‘수중 비접촉 폭발’, 7가지 의문을 풀어라.
어뢰 한 방을 근접 폭발시켜서 대형 초계함 두동강 낼 확률은?

“내부 폭발은 아니다. 암초 충돌도 아니다. 피로 파괴도 아니다.” 25일 천안함 침몰 민관 합동조사단의 1차 조사 결과는 이렇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외부 공격 밖에 없는데 파공 흔적이 없는 걸로 봐서 ‘수중 비접촉 외부 폭발’로 보인다는 게 조사단의 잠정 결론이다. 윤덕용 조사단장은 기자회견에서 “외부 공격이 확실하지만 직접 충돌은 아니고 좌현 하단 수중 어딘가에서 비접촉 폭발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일단 탄약고와 연료 탱크의 손상이 없고 내장재와 전선 피복 등의 상태가 양호한 걸로 봐서 내부 폭발일 가능성은 낮다. 선저에 긁힌 흔적이 없고 함수 하단의 음파 탐지기가 온전한 걸로 봐서 암초에 의한 좌초일 가능성도 낮다. 또한 너덜너덜하게 찢긴 절단면으로 볼 때 피로파괴라고 보기도 어렵다. 그을음이나 파공 흔적이 없고 선저 부분이 위쪽으로 휘어져 올라가 있는 걸로 봐서 직접 공격 보다는 외부 압력에 의한 절단일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조사단은 “좌현이 3.2m, 우현이 9.9m 가량 유실된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터빈실 좌현 하단 수중 어느 곳에서 폭발이 발생해 오른쪽으로 치고 올라간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윤 단장은 “아래에서 선저부분을 봤을 때 구멍 흔적이 전혀 없고 선저부분이 완전히 말려 올라간 형태이며 용골(함정 뼈대) 부분도 절단되어 완전히 위로 감겨 올라갔다”면서 강력한 외부 압력의 가능성을 거듭 강조했다.

앞으로 조사단이 풀어야할 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왜 물 기둥을 본 사람이 없는가. 윤 단장은 버블 제트는 물 기둥이 옆으로 퍼지는 형태도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바다 밑이 아니라 선체 가까운데서 폭발했을 때는 옆으로 퍼질 수도 있고 이 때문에 아무도 물 기둥을 못 보았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과거 호주에서 이뤄진 버블제트형 어뢰 실험과 비교할 때도 이 같은 설명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조사단은 천안함과 가까운 거리에서 폭발한 것으로 보이지만 자세한 건 조사해 봐야 알 수 있다고 밝혔다.

둘째, 누가 어떻게 공격을 했을까. 조사단은 어뢰와 기뢰 모두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지만 이날 오전 윤태영 국방부 장관이 “기본적으로는 중어뢰에 의한 버블제트의 효과가 제일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힌 것으로 미뤄볼 때 기뢰 보다는 어뢰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미 합동 군사훈련 도중 어떻게 경계망을 뚫고 천안함에 접근할 수 있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어뢰를 발사하려면 최소 5km 반경까지는 접근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셋째, 버블제트로 대형 초계함을 두 동강 낼 수 있나. 유일한 가능성으로 남은 버블제트형 어뢰의 성능과 위력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는다. 호주에서 성공한 적이 있지만 그때는 표적이 고정돼 있고 기상상태도 최상인 상황에서 진행된 말 그대로 실험이었다. 수심 40m의 백령도 인근 해역의 지형을 감안하면 한 방의 어뢰를 발사해 정확히 천안함의 중간 부분에 근접해 폭발, 절단 낸다는 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넷째, 유력한 ‘용의자’로 꼽히는 북한이 버블제트형 유도 어뢰를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은? 설령 그런 기술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북한이 이를 보유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실제로 버블제트는 호주의 실험 이외에 아직까지 검증된 바가 없다. 미국에서도 실험이 진행된바 있지만 그 결과는 공개된 바 없다. 양무진 북한대학원 대학교 교수는 뉴시스 등과 인터뷰에서 “완벽한 버블제트가 가능한 어뢰는 미국만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다섯째, 왜 고막 손상도 물고기 떼 죽음도 없었을까. 만약 천안함이 버블제트로 절단돼 침몰했다면 엄청난 압력이 발생했을 텐데 생존자들 가운데는 고막 손상 환자가 단 한 명도 없다. 까나리 어장인 사고 해역에서 물고기 떼 죽음도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조사단은 수중에서 발생한 폭발이기 때문에 고막 손상이 없는 건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물고기 떼 죽음 역시 거센 조류 때문에 발견되지 않았을 수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여섯째, 하필 지금 북한이 공격할 이유가 있나. 북한이 지난해 11월 대청해전의 복수를 벼려 왔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지만 북한이 지속적으로 6자회담 복귀를 모색해 왔고 미국의 경제제재 완화를 요구해 왔다는 걸 감안하면 북한이 도발을 감행해서 얻을 실익이 크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군부가 지도부의 승인 없이 공격을 저질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북미 관계가 악화일로에 있었다는 사실도 다양한 가능성을 추론하게 한다.

일곱째, 군은 무엇을 숨기고 있나. 만약 외부 공격이 확실하다면 군은 의혹을 털어내기 위해서라도 교신일지과 군사지휘시스템 기록을 부분적으로라도 공개해야 한다. 특히 사고 직전까지 천안함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으며 아무런 위험 징후도 발견하지 못했던 돌발사고였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군은 군사기밀이라며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과거 연평해전 때 관련 기록을 공개했던 것과 비교하면 최근 군의 행보는 석연치 않다.

조사단은 26일부터 쌍끌이 저인망 어선 등을 동원해 파편 수거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어뢰 파편 등이 발견될 경우 실마리가 잡히겠지만 조류가 워낙 빠른데다 한 달 가까이 시간이 흐른 뒤라 사막에서 바늘 찾기나 마찬가지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현재로서는 비접촉 외부 폭발이라는 잠정 결론만 내려졌을 뿐 누가 왜 쏘았는지도 알 수 없고 아무런 증거도 확보하지 못한 채 자칫 영구미제로 남게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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