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그래프를 보자. 휘발유 가격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51.9%나 된다. 지난 2008년 2월 유류세를 10% 인하한 적이 있었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유류 소비가 급격히 늘어났고 덕분에 정부의 유류세 세수도 크게 늘어났다. 언뜻 감세가 소비를 늘리고 경제를 활성화시켜 정부 세수도 늘어난다는 신자유주의 신봉자들의 주장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그래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올해 1월 기준, 휘발유 가격에서 유류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51.9%나 된다.)
(유류세를 인하했더니 소비가 크게 늘어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유류세 세수도 늘어났다.)
먼저 짚고 넘어갈 부분은 (석유 가격이) 싸면 더 많이 쓰게 된다, 다시 말하면, 덜 쓸 수도 있는데 싸니까 더 쓰게 된다는 사실이다. 석유 가격이 물가에 영향을 미치고 서민들 생활에도 직간접적인 부담을 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과연 석유 가격을 낮춰서 소비를 늘리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한편으로는, 과연 석유 가격이 뛰어서 살림살이가 힘들어질 정도인가 반문해볼 필요도 있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갈 부분은 가까운 미래에 석유 생산이 정점을 맞게 될 것이고(피크 오일이 이미 지났다는 분석도 나온다), 세계적으로 석유 소비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으며 당연히 국제 유가가 지금보다 훨씬 더 뛰게 될 거라는 사실이다. 1배럴에 100달러를 넘어 200달러까지 치솟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 그때쯤 되면 휘발유나 경유 가격 100원을 깎느냐 마느냐, 유류세를 10% 인하하느냐 마느냐 정도는 오히려 사소한 고민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서도 에너지 소비가 많은 편이다. 2009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1인당 에너지 소비는 4.48toe, 미국(7.74toe) 보다는 적지만 일본(4.13toe)이나 독일(4.23toe), 영국(3.82toe) 보다 많다. 소득 대비 에너지 소비량는 우리나라가 1.98toe로 일본(1.01toe)의 거의 두 배 수준, 미국(1.84toe)이나 영국(1.62toe)보다 높다.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11위인데 석유 소비량은 세계 7위일 정도다.
분명한 것은 석유를 덜 쓰는 사회로 가지 않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큰 부담을 안게 될 거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유류세를 인하한다고? 어제 토론회에서 나는 오히려 유류세를 인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유류세를 인상하되 생계형 유류 소비만 감면하거나 환급하는 방안도 가능할 것이다. 1인 출퇴근 차량이나 대형 차량에 중과세를 부과하거나 환경에 기여하는 정도에 따라 유류세를 차등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다.
(정유회사들 정제마진. 국제유가와 정비례한다.)
(정유회사들 정제마진은 사상 최고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물론 정유회사들 담합을 뿌리 뽑는 것도 병행돼야 한다. 담합으로 챙긴 부당이익의 3배 이상의 징벌적 과징금을 물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그게 근본적인 해법은 될 수 없다. 고도화 설비 등 생산성 개선의 효과가 있다는 걸 부정하긴 어렵고 폭리라고까지 하기는 어려운 수준이라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정유회사들 영업이익률은 2% 수준, 영업이익을 모두 유가 인하에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10~20원 정도에 그칠 거라는 분석도 있다.
주유소들의 담합을 차단하기 위해 자가 폴 주유소를 늘리거나 독립 폴 주유소를 육성하는 등의 대안을 모색할 필요도 있다. 석유 수입 규제를 완화해 경쟁 체제를 구축하는 것도 담합을 깨뜨리는 대안으로 거론된다. 일부에서는 정유회사들의 원가 구조를 파악하고 절대 마진을 산정해 초과 이익을 환수하자는 주장도 나오지만 실현 가능성은 낮다. 국민석유회사를 설립하자는 제안도 있었지만 역시 아직은 아이디어 단계일 뿐이다.
이제는 1리터에 2천원 이상의 높은 휘발유 가격을 받아들여야 한다. 유류세를 깎아주면 당장 몇천원씩 부담을 덜겠지만 결국 그 부담은 다른 형태로 모두에게 돌아온다. 자가용을 모는 사람이 자가용을 몰지 않는 사람들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방식이 돼서는 안 된다. 정유회사들 담합 못지않게 자가용 보유자들의 집단 이기주의를 깨뜨려야 한다. 에너지가 더 이상 싸지 않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유류세 인하? 터무니 없는 소리다.
결국, (석유) 에너지를 적게 쓰는 것이 답이겠군요. 생활 주변에서라도 조금 더 적게 쓰는 방법을 실행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