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진봉 미국 텍사스주립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지상파 방송의 영향력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케이블 채널의 시청 점유율이 상대적으로 치솟고 있는 가운데 IPTV를 비롯해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도 계속 확산되는 추세다. 스마트TV 보급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과거에는 KBS와 MBC, SBS가 TV의 거의 전부였지만 우리는 지금 채널이 무한대로 늘어나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주류 언론의 헤게모니가 빠른 속도로 붕괴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 언론사들의 변화는 더딘 편이다.
최진봉 미국 텍사스 주립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종합편성채널이 허용되고 온갖 새로운 형태의 뉴미디어 플랫폼이 쏟아져 나오면서 지상파 방송을 비롯해 주류 언론의 어젠더 파워가 지금보다 훨씬 더 축소될 것”이라면서 “역설적이지만 경쟁이 격화될수록 시청률에 목을 매기 보다는 철저하게 공공성 강화에 주력하는 게 지상파 방송의 위기 해법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최 교수와 일문일답.
– 미국에서는 지상파 방송사들의 영향력이 케이블 채널 보다 약하지 않나.
“FOX와 CNN, 그리고 하나 더 꼽으라면 MSNBC 정도가 가장 영향력 있는 뉴스 채널인데 셋 다 지상파가 아니라 케이블 채널이다. 우리나라도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본다. 장기적으로는 지상파와 케이블을 구분하는 게 큰 의미가 없게 될 수도 있다. 지상파 방송이 케이블로 재송신되기도 하고 지역에 따라 케이블 채널이 지상파에 송신되는 경우도 있다. 플랫폼 보다는 콘텐츠와 네임 밸류가 더 중요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지금까지의 기득권이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 신규 종편 채널이 등장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FOX 같은 선정적인 상업방송이 판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지금까지는 지상파 방송의 공공성이 보호를 받아왔고 그만큼 책임도 무거웠지만 갈수록 무한 경쟁으로 내몰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경우 거대 자본이 콘텐츠의 생산과 유통, 소비 시장을 모두 장악하고 여론을 흔들고 있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프로그램이 늘어나면 상대적으로 시청 점유율이 낮은 교양 프로그램들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콘텐츠 시장 전체가 미디어 재벌에 종속되면서 콘텐츠 다양성이 사라지고 소비자들의 선택권도 박탈된다.”
– 이를 테면 ‘PD수첩’이나 ‘백분토론’ 같은 프로그램들이 사라지게 될 거라는 말인가.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쟁이 심화되면 KBS나 MBC 같은 공영방송들도 시청 점유율을 무시하게 어렵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는 공영방송인 PBS가 신뢰도는 가장 높은데 시청 점유율은 최저 수준이다. 반면 FOX는 공정성이 최하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시청 점유율은 가장 높다. KBS나 MBC도 비슷한 도전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들이 과연 공공성이라는 가치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인지 사실 우려스럽다.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면서 미디어 공공성이라는 개념이 희박해지고 있다.”
– 결국 정치적 독립이 가장 중요한 과제 아니겠나.
“상업방송이 판치는 미국에서도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이 제도적으로 보장돼 있다. 우리나라는 KBS나 MBC나 정치권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이나 이명박 정부에서나 늘 낙하산 인사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MBC의 경우 엄기영 전 사장의 사퇴 논란에서 보듯이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다. 정부 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가 비영리 단체인 방문진 이사를 선임하는 이런 구조에서는 결코 정치적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PBS의 경우 이사회 이사를 선임할 때 전국의 지역 방송국들이 참여해서 직접 투표로 결정하도록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확보하려면 공영방송의 이사 선임을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단체에서 할 수 있도록 바꿔야 한다.”
– 공영방송이라고 해도 시청 점유율이나 광고 매출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을 것 아닌가. PBS가 아무리 신뢰도가 높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영향력 없는 방송으로 전락하기를 바라지는 않을 거고. 공영방송이 살아남으려면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까.
“상업방송과 정면으로 경쟁해서 이기기는 어렵다. KBS와 MBC가 FOX를 벤치마킹할 수는 없지 않은가. 오히려 철저하게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고 본다. 상업방송이 늘어날수록 공영방송의 가치가 더욱 주목받게 된다. 그러려면 정치적 독립을 확보하는 게 최우선 과제다. 미국에서 영국의 BBC를 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BBC가 전략적으로 미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목할 부분은 퀄리티 높은 공영방송의 수요는 여전히 충분하다는 사실이다.”
– 신문시장 전망은 어떤가. 미국에서는 수많은 신문사들이 문을 닫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문 닫은 신문사가 거의 없다. 광고시장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는 가운데 언론과 자본권력의 유착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좀 특별한 경우라고 본다. 광고시장도 변화하고 있다. 불특정 다수에게 보여주는 광고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온라인 광고 시장이 빠른 속도로 팽창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큰 부분이 맞춤형 광고다. 신문광고 시장은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기업에 부정적인 기사를 쓰지 않는 걸 조건으로 광고를 받는 기형적인 수익모델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 콘텐츠 유료화 전망은 어떻게 보나. 뉴욕타임즈는 유료화 이후에 페이지뷰가 급감했다던데.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본다. 파이낸셜타임즈는 2002년에 유료화를 했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페이지뷰가 더 많다. 핵심은 좋은 콘텐츠는 돈을 내고라도 본다는 거다. 뉴욕타임즈도 어느 정도 회복할 거라고 본다. 뉴욕타임즈에서만 읽을 수 있는 기사들이 있으니까. 그리고 다른 언론사들에도 이런 수익모델이 확신될 거라고 본다.”
– 미국에서는 몇 년 전부터 하이퍼 로컬 저널리즘이 확산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지역신문이 매우 취약하다. 어떤 차이가 있다고 보나.
“AOL이 인수한 패치닷컴(patch.com)을 봐라. 시민기자들을 활용해서 지역의 크고 작은 뉴스를 다루면서 지역 상권을 광고로 끌어들인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모델이 가능할 거라고 본다. 다시 강조하지만 차별화된 콘텐츠를 만들면 자연스럽게 수익모델도 따라온다. 우리나라 지역신문들이 지역 커뮤니티를 제대로 커버하고 있는가. 부산일보나 대구매일 같은 신문사들이 전국 단위 종합일간지들과 과연 얼마나 차별화된 기사를 쓰고 있는가.”
– 신문의 신뢰도가 갈수록 추락하고 있다. 최근에는 모든 어젠더가 포털 사이트에 종속되는 현상을 보인다. 특히 네이버 뉴스캐스트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세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신문사들이 네이버가 제공하는 트래픽에 기생하고 있는 측면도 있지만 뉴스가 파편화하고 중요한 어젠더가 묻히는 등 부작용이 크다.
“우리나라에서는 포털 사이트들이 정치적 편향성 논란에서 벗어나려고 ‘언론 안 할 테니까 돈이나 벌게 해줘’, 그런 분위기라면 미국에서는 포털 사이트들도 언론에 욕심을 낸다. 앞으로는 언론과 포털의 구분 자체도 모호해질 거라고 본다. 사실 종이신문의 시대가 끝나가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뉴스 소비의 패턴이 바뀌고 있다. 어디까지가 언론이고 어디서부터는 아닌지조차도 명확하지 않게 됐다. 미국의 언론 재벌들이 뉴미디어에 막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유튜브도 사버리고 마이스페이스도 사버리고 모두 거대 자본의 통제 아래 들어가고 있다. 아직까지는 자본 권력에서 자유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앞으로도 그럴까, 잘 모르겠다. 물론 우리나라는 상황이 다르다. 그렇지만 인터넷이라고 해서 자본에서 독립된 중립지대로 남아있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 전환 이후 매물로 나올 황금 주파수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통신회사들의 데이터 트래픽이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통신회사들은 주파수 확보에 사활을 걸고 덤비고 있다. 통신회사들의 독과점을 깨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고 한편으로는 보편적 시청권 확보라는 차원에서 지상파 방송사들의 네트워크 자원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에서도 700MHz 대역 경매에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 바 있는데. 과연 비싸게 내다 파는 게 최선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미국에서도 논란이 많았다.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느냐는 지적도 많았고 망 중립성에 대한 논의는 아직까지 진행 중이다. 핵심은 돈이 없어서 정보 소비에 제한을 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거다.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도 신청만 하면 디지털 컨버터를 무료로 나눠줬다. 우리나라는 저소득 계층에게만 지원금을 줄 계획인데 나중에 재산권 침해 논란이 제기될 수도 있다고 본다. 특히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난시청 지역이 많은데 이를 해소하는 노력이 없다면 디지털 전환의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는 나도 케이블 서비스에 가입하지 않고 지상파를 직접 수신한다. 우리나라는 케이블 서비스 가입 비율이 80%가 넘기 때문에 큰 문제의식이 없는 것 같은데 지상파 직접 수신은 기본권 차원에서 논의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