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대리운전 기사 이야기다.
신천에서 술을 잔뜩 마시고 왕십리로 가는 길에 대리운전 기사를 불렀다. 신천역 앞에는 길바닥이며 자동차 와이퍼며 온갖 군데에 대리운전 전단이 흩날리고 있었다. 마침 신호등 앞에 서있던 아저씨가 전화통화를 듣더니 1만5천원만 주면 가겠다고 했다. 너무 비싸다고 깎아달랬는데 막무가내였다. 전단을 보고 몇군데 전화를 했는데 다들 2만원에서 많게는 2만5천원을 달라고 했다. 결국 그 아저씨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심정우씨는 5년 경력의 대리운전 기사다. 디지털 이미지를 사고 파는 벤처기업을 창업했다가 실패해 크게 빚을 지고 대리운전을 하게 됐다고 했다. 창업 자금은 1억2천만원. 심씨는 자금 여력이 좀더 있고 버틸 힘만 있었다면 지금쯤 사업이 자리를 잡았을 거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결국 지금 심씨는 개인 파산을 신청해 놓은 상태다. 연대보증을 섰던 부인과 딸들도 모두 신용불량자가 됐다.
대리운전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심씨는 한달에 29만원을 정액 수수료로 낸다. 10~20% 정도 콜비를 따로 받는 회사들과 다르다. 심씨 회사의 경우 전화만 연결해주고 가격은 기사가 직접 협상한다. 장단점이 있지만 밤새 옮겨 다니다 보면 중간중간 택시비를 빼고도 하루 6만원 정도 수입을 올린다고 한다. 수수료를 떼고 나면 하루 5만원, 한달이면 150만원 정도 수입이 되는 셈이다.
대리운전이 택시비보다 싼 추세지만 나름대로 협정 가격이 있다고 했다. 심씨가 1만5천원 밑으로는 갈 수 없다고 우긴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1만원이라도 당장 손님을 잡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하다보면 시장 질서가 흐트러지고 이 일도 계속 할 수 없게 된다. 게다가 나중에 택시를 타고 돌아올 걸 생각하면 1만5천원도 결코 비싼게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래서 심씨는 기다릴지언정 어느 정도 이하로는 일을 맡지 않는다.
심씨는 한창 돈 들어갈 데가 많은 대학생 딸들 때문에 걱정이라고 했다. 밤새 한숨도 못자면서 일하지만 겨우 입에 풀칠만 할뿐 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잔뜩 취해서 앞뒷자석에 가득 구겨 앉은 우리들은 부끄러웠다. 우리라고 딱히 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