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지에서 나는 늘 가난했다. 그렇지만 그 가난은 정직한 가난이었고 자랑스러운 가난이었다. 나는 내가 ‘말’지 기자라는 것이 늘 자랑스러웠다. 나는 ‘말’지에 들어와서 비로소 진짜 기자가 됐고 비로소 현실과 제대로 맞서게 됐고 더 큰 꿈을 꾸게 됐다. ‘말’지는 내게 직장 이상이었다. ‘말’지는 부족한 나를 늘 깨어있도록 만들었고 고민하고 공부하도록 만들었다. 나는 ‘말’지를 사랑했고 내 모든 젊음과 열정을 이곳에 쏟아 부을 각오가 돼 있었다.

그런데 6월 9일, 나는 결국 ‘말’지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기자들을 포함해 직원들이 모두 동반 사표를 냈고 회사에는 사장과 업무국장만 남게 됐다. 나는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지나간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것은 ‘말’지의 현재 주소가 바로 여기이기 때문이다. ‘말’지가 다시 출발한다면 결국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말’지의 진짜 위기는 결국 사람의 문제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말’지는 좋은 기사를 써낼 유능한 기자를 길러내지 못했다. 실력 있는 기자들은 저임금을 견디지 못하거나 회사 내부의 이런 저런 갈등으로 하나둘씩 떠나갔다. ‘말’지의 네트워크는 점점 좁아졌고 그만큼 문제의식의 깊이도 얕을 수밖에 없었다.

‘말’지 2005년 6월호는 편집장도 없이 3명의 기자들이 만들었다. 임시 편집장을 맡았던 나는 마감을 앞두고 세번이나 코피를 쏟아야 했다. 평소보다 기사를 더 많이 쓰기도 했지만 부족한 지면을 모두 외고로 채워야했기 때문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일이 밀려들었다. 나뿐만 아니라 2명의 후배 기자들도 온갖 고생을 다 했다. 그러나 그게 그때 우리가 ‘말’지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때는 그 모든 난리법석이 과도기에 겪어야할 통과의례라고 생각했다. 일단 6월호를 만들고 나면 기자를 새로 더 뽑고 편집장도 새로 모셔오면 된다고 생각했다. 여러 문제들이 정리되면 퇴직기자들도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거고 이 과도기를 잘 이겨내면 ‘말’지의 재건도 가능할 거라고 말이다. 그래서 이럴 때일수록 부끄럽지 않게 책을 더 잘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말’지 20년의 역사가 여기서 끝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늘 머리가 무거웠다.

6월호 마감을 겨우 끝내고 전현준 사장에게 인력 충원을 요청했을 때 전 사장의 답변은 이랬다. “너희들이 사장한다고 했으니까 너희들이 사장한 다음에 뽑아. 나는 못 뽑겠어.”

전 사장은 이미 3월 말부터 사장을 그만두고 싶다고 말해왔다. 그때 ‘말’지는 장단기 부채들은 물론이고 직원들 급여까지 체불돼 있는 상황이었다. 전현준 사장은 아무런 전망도 제시하지 못했고 무력하게 사장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 그는 후임 사장만 들어오면 언제라도 그만 두고 물러나겠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부실투성이 회사를 맡겠다고 나서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고 답답한 시간이 계속됐다. ‘말’지는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직원들이 나서서 사장 퇴진을 건의한 것은 5월 초의 일이었다. 직원이라고 해봐야 3명의 기자들과 관리부서 직원 4명을 포함, 모두 7명에 지나지 않았다. 직원들은 더 늦기 전에 경영을 정상화해야 한다는데 문제의식을 모으고 사장 퇴진을 추진하기로 했다. 사장이 물러나고 나면 직원 대표들이 임시로 공동 대표이사를 맡고 경영을 정상화한 다음 새로운 대표이사를 영입한다는 계획이었다.

전 사장은 그때 “은행 문제만 해결해주면 기꺼이 물러나겠다”고 했다. 올해 1월 전 사장의 취임 직후 회사 명의의 신용대출 만기가 도래했고 전 사장이 직접 은행을 찾아가 만기 연장을 시킨 적이 있었다. 대출 금액은 4천만 원이었다. 전 사장은 내게 “이정환씨가 보증을 넘겨받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은행에 확인 결과 만약 대표이사가 바뀐다면 서류만 집어넣으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였다. 직원대표 4명이 1천만원씩 마이너스 대출을 받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런데 이사회에서 문제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렀다. 전임 대표이사였던 이명순씨가 “전현준 사장 뿐만 아니라 내 보증도 해결해줘야 한다”고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 전 사장의 채무 보증은 9천만원이었다. “왜 전 사장에게는 넘겨주지 않았던 보증 승계를 직원들에게는 요구하느냐”고 물었으나 그는 “그때는 우호적으로 경영권을 넘겨줬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말했다.

결국 이날 이사회에서는 직원들이 전임 대표이사들의 채무 보증을 승계받는 것을 전제 조건으로 대표이사 해임을 위한 임시주주총회를 소집하기로 조건부 승인 결정이 났다. 그러나 다음날 은행에 확인 결과 직원들 7명 가운데 누구도 9천만원의 보증을 승계받을 정도의 신용조건이 되지 않았다. 전임 대표이사들의 경영과실을 왜 직원들이 승계받아야 하느냐는 문제제기도 있었다. 결국 대표이사 해임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전 사장에게 인력충원을 요구했을 때가 바로 그때였다. 일단 책은 내야하고 사람은 더 뽑아야 하지 않느냐고 거듭 물었지만 전 사장은 막무가내였다. 기자 3명이 모여 달마다 232페이지의 책을 낸다는 것은 단연코 불가능한 일이었다. 외고를 끌어다 메우는 것도 한계가 분명했다. 기자들은 여러차례 회의를 갖고 지금 상황에서는 도저히 7월호를 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막다른 벽에 다다른 느낌이었다.

그러던 가운데 전 사장이 갑자기 임시주총을 소집했다. 이명순 전 사장의 몫까지 보증승계를 전제조건으로 요구하던 그가 돌연 자진해서 주총을 소집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너희들을 도와주려고 그런다”는 게 전 사장의 답변이었다. 전 사장과 함께 황용하 영업국장도 동반 퇴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임시주총은 2주 뒤로 다가왔고 마감도 겨우 2주를 앞둔 무렵이었다.

동료 기자들과 직원들과 여러차례 논의를 거듭했지만 뚜렷한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가장 큰 걱정은 이명순 사장이 9천만원의 채무를 당장 상환하라고 나올 경우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또 황용하 국장의 퇴직금 3천만원도 걱정거리였다. 단돈 몇백만원에 허덕이는 회사에서 당장 1억원이 넘는 채무상환 압력이 들어온다면 자칫 회사의 영업중단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었다.

가장 큰 고민은 당장 7월호를 낼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7월호와 8월호, 9월호, 10월호를 어떻게 낼 것인가. 모든 인맥을 동원해 경력기자를 수소문했지만 아무도 ‘말’지에 오려는 사람이 없었다. ‘말’지의 복잡한 상황이 웬만큼 소문이 나 있는데다 급여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신입기자를 뽑아서 가르쳐 가면서 일을 시킨다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때 ‘말’지는 바닥까지 내려가 있었고 위기를 벗어날 내적 동력이 전혀 없었다.

정동익 선생님을 비롯해 오연호 오마이뉴스 사장 등 전임 편집장들과 선배들을 찾아다니면서 조언을 구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러나 다들 걱정은 많았지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말’지의 문제는 본질적으로 자금의 문제도 아니었고 경영진과의 갈등 문제도 아니었다. 결국 ‘말’지의 내적 동력의 문제였고 그 동력을 어떻게 조직화하느냐의 문제였다. 바깥의 그 누구도 도움을 줄 수 없었던 것은 당연했다.

그 무렵 한겨레의 기사는 상황을 더욱 명확하게 만들었다. 한겨레는 “위기의 월간 말, 어디로 가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종태 부장의 말을 인용, “직원들이 사사건건 경영진의 발목을 잡고 리더십에 도전하면 조직이 돌아갈 수가 없다”고 직원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말’지 창간 원로인 성유보 방송위원회 상임위원도 “진보 언론이 제 몫을 하기 위해서는 건전한 경영 구조가 필수적이며 이것은 경영진에게 권한과 책임을 위임하는데서 시작한다”고 말했다.

한겨레의 기사는 ‘말’지의 위기를 보는 외부의 시각을 대변했다. 기자들은 경영 정상화를 위해 싸워왔는데 한겨레는 기자들이 경영 정상화를 가로막고 있다고 비난했다. 어떻게든 책은 내야 한다고 3명의 기자들이 밤을 새워가며 코피를 터뜨려가며 6월호 마감을 끝냈는데 한겨레는 6월호가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최민희 민언련 사무총장은 “‘말’지는 저임금과 헌신을 감수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기자들은 이 기사를 읽고 그나마 남아있던 의욕을 잃었다.

나는 내가 ‘말’지 기자라는 사실이 처음으로 부끄러웠다. ‘말’지의 명성에 먹칠을 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고 다른 기자들처럼 좀 더 일찍 떠나지 못한 걸 후회했다. 정말 참담했던 건 기사 몇줄 쓰는 것 말고는 내가 ‘말’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일으켜 세우기에 ‘말’지는 너무 무너져 내렸고 무엇보다도 함께 할 사람이 없었다. ‘말’지는 완전히 고립돼 있었고 나는 고독했다.

결국 한겨레 기사가 나간 10여일 뒤 기자들은 전원 사표를 내고 회사를 떠났다. 그게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능력에 안되는 일을 고집하다가 20년 역사의 ‘말’지를 문을 닫는 상황까지 끌고 갈 수는 없었다. 한동안 잡지 발간을 쉬더라도 새로 인력을 충원해 조직을 다시 정비하고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는 게 마지막 남은 가능성이었다. 그리고 그건 기자들의 몫이 아니라 전현준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몫이었다. 우리는 결국 패배를 인정해야 했다.

그때 뜻을 함께 할 기자들이 5명만 됐다면 나는 아마 물러서지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든 책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 것이고 은행 채무야 만기 연장을 하거나 최악의 경우 연체를 하면서 버틸 수도 있었을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위기를 기회로 삼고 어떻게든 책을 더 잘 만들어야 하고 어떻게든 정기구독을 늘려서 자력으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게 ‘말’지가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때 그 기회를 우리는 놓쳤다.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현준 사장은 올해 초 취임 직후 오프라인 ‘말’지를 축소하고 인터넷 사이트 디지털말을 강화하는 것을 비롯해 인력 재배치 등 일련의 새로운 사업계획을 내놓았다. 이종태 부장의 말을 빌리자면 이렇다. “지금처럼 만들면 어차피 사볼 사람도 없다. ‘말’지에는 기자 한명만 있으면 충분하다. 나머지는 외고로 채우면 된다. 나머지는 모두 디지털말에 투입해서 인터넷 쪽에서 새로운 수익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업계획이 ‘말’지의 장기적인 발전 전망에서 출발했다기 보다는 외부에서 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급조된 구조조정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포장은 그럴듯했지만 구성원 가운데 누구도 그 가능성을 확신하지 못했고 자칫 ‘말’지의 정체성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문제제기가 나왔지만 모두 묵살됐다. 급기야는 “명령과 지시에 따를 수 있으면 남고 못 따르겠으면 떠나라”는 상황까지 가게 됐다.

그러나 결국 자금 조달은 실패했고 기자들이 잇따라 퇴직하면서 이종태 부장이 제시했던 사업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 무렵의 절박한 상황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소중한 사람들을 너무 많이 놓쳤다는 것이다. 위기를 넘어서는 것은 그럴듯한 사업계획이 아니라 사람들과 그들의 열정이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너무 늦게 깨달았다. 그게 ‘말’지를 지난 20년 동안 지탱해온 동력이라는 것도 우리는 뒤늦게 깨달았다.

‘말’지는 늘 현실과 맞서 싸웠지만 정작 그 구성원들은 현실에서 초라하게 무너져 내렸다. ‘말’지는 이제라도 현실을 제대로 딛고 서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지는 그동안 적자를 쌓아오다가 견딜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외부에서 자금을 끌여들여 급한 불을 끄는 방식으로 수명을 연장해왔다. 부끄럽지만 지난 몇년 동안 ‘말’지는 자본의 논리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말’지의 경제적 독립은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말’지가 계속 권력과 자본에 맞서 싸우려면 우선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10월 현재 ‘말’지의 정기구독은 예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다. 만약 정기구독이 예년 수준으로만 회복할 수 있다면 ‘말’지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말’지는 우선 비용 구조를 전면적으로 쇄신하고 판매 영업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독자들이 사볼만한 매체로 거듭나야 한다. 외부에서 자금을 끌어들이지 않아도 ‘말’지는 자력으로 생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기자로서 나는 ‘말’지에서 크고 자랐다. 아직도 나는 ‘말’지에 남겨두고 온 꿈이 아쉽고 그립다. 나는 ‘말’지의 역할을 다른 어느 매체가 대신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말’지와 ‘말’지 사람들, 밤새워 토론하던 그때가 그립다. 오랜 산통을 겪은만큼 ‘말’지가 더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도약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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