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와 뉴코아 비정규직 노동자들 파업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8개월째다. 이들의 요구는 간단하다. 지금처럼이라도 계속 일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 이랜드 노조가 공개한 급여명세표(동일 호봉 기준)를 보면, 정규직의 한 달 급여가 169만 원인 반면 비정규직은 79만 원에 지나지 않는다.
비정규직 보호법에 따르면 비정규직으로 2년 이상을 일할 경우 자동으로 정규직 전환이 된다. 이랜드와 뉴코아는 이 법의 허점을 이용, 2년이 되기 직전에 이들을 대량 해고하고 외주 용역으로 돌렸다. 이 회사들은 이들을 언제라도 대체 가능한 인력으로 취급한다. 이들은 정규직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으면서 늘 해고의 위협에 시달린다.
이랜드나 뉴코아 뿐만 아니라 코스콤, 기륭전자, KTX 등 숱한 사업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법은 이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언론 역시 철저하게 고용주들의 입장만 대변한다. 무엇보다도 국민들과 노동자들도 아무런 관심이 없다. 이들이 무엇을 목놓아 외치는지 귀를 기울이기 보다는 파업을 비난하는데 그칠 뿐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소장은 한국노총 교육부 차장과 전노협 정책실장, 민주노총 정책국장 등을 두루 거치며 국내 대표적인 노동조합 정책 활동가로서 경력을 쌓았다. 김 소장은 철저하게 실증 통계에 기초해 우리 사회 주류 이데올로기와 맞선다. 노동운동 진영의 씽크탱크라고 할 만한 많지 않은 사람 가운데 하나다.
김 소장은 특히 우리나라의 노동 유연성이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나라들 가운데 최고 수준이며 최저 임금은 가장 낮은 수준이고 임금 격차도 상대적으로 매우 크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
– 이명박 정부는 규제를 풀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면 투자가 늘어나고 자연스럽게 일자리도 늘어날 거라고 믿고 있는 것 같다. 노동 시장 유연화도 규제 완화 차원에서 검토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국민들이 이명박 정부의 성장 이데올로기에 암묵적으로 동조하고 있다. 현실적인 아이디어라고 보나.
“성장이 더 많은 일자리로 가는 구조는 깨졌다. 노무현 정부의 성장률 지표는 5%를 웃돌았다. 경제 못했다고 욕먹기는 했지만 사실 성적표는 좋았다. 문제는 성장이 아니라 성장의 혜택이 분배되지 않는다는데 있다. 성장해도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 시대다. 지난 5년 동안 익히 보지 않았나. 제조업만 해도 그렇다. 부가가치 비중은 늘어났는데 오히려 고용은 줄어들었다.”
– 이유가 뭔가.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은 1989~1996년에는 13~14%였는데 1997년에는 11.4%, 1998년에는 9.8%까지 줄어든다. 1999년 이후에도 10% 안팎에 머물러 왔다. 이를 두고 아웃소싱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정작 매출액 대비 외주가공비 비중은 1989~2001년 3.7~4.3% 수준에서 2006년에는 5.2%로 늘어나는데 그쳤다. 성장은 하지만 그 혜택이 노동자들에게 분배되지 않는 구조라는 이야기다.”
– 우리나라의 임금 불평등이 특히 더 심각한 수준인가.
“OECD 나라들 가운데 가장 불평등이 크다. 하위 10% 대비 상위 10%의 임금은 2001년 4.8배에서 2006년 5.4배로 늘어난다. OECD 21개 나라 가운데 우리나라는 이 비율이 미국과 헝가리에 이어 3위다. 저임금 계층 비율은 압도적인 1위다. 지니계수 역시 같은 결과를 보여준다. 1994년 0.272에서 2005년 0.317까지 늘어난다. 도시 근로자 가구 소득 계층별로 1980년대에는 가계수지가 적자인 가구가 30% 정도였는데 외환위기 직후인 1999~2001년에는 70%까지 늘어났다. 2002년부터 줄어들긴 했지만 2006년 기준으로 여전히 50%에 이른다. 실질 소득 기준으로는 1982년 소득 1분위는 15만원 적자, 10분위는 46만원 흑자였는데 2006년이 되면 1분위는 66만원 적자, 10분위는 188만원 흑자로 격차가 더 확대 된다.”
– 그렇다면 노동운동 진영에서는 일자리를 늘릴 대안이 있는가. 기업이 잘 돼야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건 상식인데.
“노동생산성이 높아지면서 고용이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노동생산성이 낮다는 비판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 향상 속도는 세계적으로 가장 빠른 편이다. 일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노동생산성의 향상에 맞춰 정부차원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우리나라 제조업 일자리는 전체 일자리의 18% 밖에 안 된다. 서비스업이 65%를 차지한다. 결국 일자리를 늘리려면 서비스업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서비스업은 생산자, 유통, 개인, 사회 서비스 등 4가지 부문으로 나눌 수 있다. 우리나라는 생산자와 유통 서비스는 평균 정도고 개인 서비스는 평균보다 높다. 반면 사회 서비스는 상대적으로 적다. 교육과 보건, 복지, 여성 부문에 일자리 창출의 기회가 있다는 이야기다.”
– 참여정부도 사회적 일자리 창출에 상당히 많이 신경을 썼는데.
“사회서비스 일자리 늘리는데까지는 갔는데 대부분 여성 파트타임 일자리에 그쳤다. 공공부문을 늘리자는 이야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쉽지 않다. 참여정부는 공공부문 확충이라는 정공법으로 나가지 못하고 적당히 불완전한 저임금 일자리를 늘리는 임시 방편에 그쳤다.”
– 그런데도 보수 언론은 노동 유연화가 필요하다고 떠들어 댄다.
“얼마나 더 유연화해야 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우리나라 정규직은 비정규직보다는 안정적이다. 그러나 OECD 나라들 가운데 고용 변동성이나 노동시간 변동성, 임금 변동성 등이 모두 높다. 정규직이나 비정규직 모두 극심한 고용 불안과 생활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최근 연구에서는 우리나라 노동시장 유연성이 60개 나라 가운데 9위, OECD 나라들 가운데 1위로 나타났다.”
– 노동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도 많이 한다. 흔히 현대자동차와 일본의 도요타자동차를 비교하면서 현대차의 노동강도가 훨씬 낮다는 지적도 있다.
“당연한 것 아닌가. 노동시간이 기니까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도요타의 노동강도가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야근에 특근을 밥 먹듯이 하는 현대차는 도요타처럼 노동강도를 높이기 어렵다. 똑같은 시간 일해도 48시간에 할 일을 40시간에 하면 노동강도와 생산성이 훨씬 높아질 수밖에 없다. 주5일제를 생각해 봐라. 토요일에 일을 쉬는데도 절대적인 업무량은 줄지 않았다. 그만큼 평일의 노동강도가 높아졌다는 이야기다. 노동시간을 줄이지 않는 이상 노동생산성을 늘리는 건 불가능하다. 도요타가 현대차보다 열심히 일한다고 말하는 건 기만이다.”
– 애매한 질문이지만 현대차 노동자들은 왜 야근에 특근을 밥 먹듯이 하는 것인가. 조금 더 적게 일하고 더 행복하게 살 수는 없는 것인가.
“현대차의 장시간 노동에는 배경이 있다. 대표적인 강성노조라고는 하지만 IMF 때 이미 1만명 이상 구조조정을 치러야했다. 회사가 어려워지면 언제든지 잘려나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있다. 게다가 울산은 사교육 시장이 서울 못지않게 발달된 곳이다. 연봉 5천을 받아도 사교육비를 대려면 한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일할 수 있을 때 한푼이라도 더 벌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현대차 노동자들에게는 있다.”
– 그래도 과거에 비하면 노동시간이 많이 줄어든 것 아닌가.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가장 오래 일하는 나라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1980년대 초중반에도 아프리카를 포함해서 세계적으로 가장 노동시간이 길었다. 1980년대 후반 들어 노동운동 활성화되면서 단축됐는데 그래도 년간 2400시간에 이른다. 2천시간 넘는 나라는 OECD 나라들 가운데 한국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워커홀릭의 사회다. 유럽만 해도 주말이 되면 어디 가서 물건 하나 사기도 어렵다. 우리나라는 24시간 필요한 것 다 살 수 있고 주말도 없다. 소비자 천국이지만 노동자들은 고달프다.”
– 노동생산성을 높일 방법이 있나.
“노동생산성이란 생산성을 노동으로 나눈 것이다. 사람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곡괭이로 파는 것과 중장비로 파는 것이 같을 수 없다. 시설 투자 늘리면 부쩍 늘어날 거고 기술 혁신도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업들은 자본투자나 기술 혁신은 하지 않고 노동량만 늘리려고 한다.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낮은 비용을 들여 낮은 가격에 팔아먹던 시대는 지났다. 중국만 해도 인건비가 우리나라의 3분의 1이다. 결국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품질을 높이고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가는 게 해답이다. 노동생산성을 탓하는 건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 이명박 정부는 반기업 정서를 문제삼지만 사실 반노조 정서도 심각한 것 같다.
“일단은 노조 조직률이 낮기 때문이다. 산별 노조가 안 되고 기업별 노조는 그나마 대기업에서만 가능하고 규모 작으면 유지가 어렵다. 비정규직은 조직화가 어렵다. 노조 가입률이 10%가 채 안 된다. 결국 대안이라면 초기업 수준의 노조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병원노조나 금속노조, 금융노조 등이 산별 전환에 성공했고 가시적인 성과도 보이고 있다.”
– 산별노조가 형식적이라는 지적도 많다.
“무늬만 산별이라는 지적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민주노총의 경우 4분의 3이 무늬라도 산별로 갔다. 일단은 무늬라도 산별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발전 가능성이 있다. 보건의료노조의 경우 정규직 임금 인상분을 비정규직에 배분하는 타협도 가능했다. 산별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개별 사업장의 경우 정규직에 매몰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지향과 현실의 괴리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조합원들의 요구를 무시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일차적인 임금인상이나 고용보장의 틀을 넘어서기 어렵다.”
– 희망이 있다고 보나.
“무늬라도 산별로 간 것에 희망을 본다. 서구는 1930년부터 산별로 갔다. 우리는 이제 시작일 뿐이지만 조금씩 성과를 내고 있다고 본다. 병원 노조 같은 경우는 산별 교섭을 시작한지 10년 가까이 됐는데 2003년부터 교섭에 응하기 시작했다. 초기업 수준의 교섭력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다.”
– 초기업 수준의 교섭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초국적 연대도 필요할 것 같다.
“국제적 연대에 취약한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도 원활하지는 않은 것 같다. 다국적 기업을 중심으로 정보교환이나 노무관리 등에 일정한 실력행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 유럽연합은 국가를 넘어 종업원 평의회 구성하거나 지침으로 강제하는 경우도 있다.”
– 이랜드 사태가 가닥을 잡지 못하고 있다. 처음에 관심을 갖던 사람들도 무관심해졌다. 해법은 없는가.
“최근 양상은 비정규직을 직접 고용하기 보다는 간접고용으로 돌리는 추세다. 이런 외주용역화가 가장 싸우기 어렵다. 정부가 방관한다면 노동자들의 힘을 모으고 시민사회의 지지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규제 완화는 필요하지만 필요한 규제는 강화해야 한다는 사회적 문제의식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연대를 통한 성취의 경험이 필요하다. 혼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겠다는 게 아니라 연대를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시장이 만능이 아니라 시장을 보완할 완충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자본주의를 부정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만들 수는 있지 않겠는가.”
언제나 노동생산성 이야기 하면서 노동자에 대한 배려는 없었습니다.
노동자를 배제하고 노동생산성 이야기 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모순을 우리 기업들이 만들어 내고 있고 아무 여과없이 따라하는 정부 당국자를 보면 이 나라 앞 날이 걱정스러울 뿐입니다. 이제 대통령마져 친기업정책에 너무 기울여진 나머지 반노동정책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