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와 한국경제가 31일 나란히 이석연 법제처장의 인터뷰를 비중있게 실었다. 매일경제는 “기업활동 발목잡는 법·규정 뿌리 뽑겠다”는 제목을 달고 있고 한국경제는 “법령 둘러싼 부처간 갈등 적극 조정하겠다”는 제목을 달고 있다.


매일경제 인터뷰에서 이 처장은 “헌법 126조에 보면 정부는 법률로 정하지 않은 경우 기업 경영에 간섭할 수 없다고 돼 있지만 지금 경제 관련 규제를 보면 정부의 시장 개입이 일상화돼 있다”면서 “만약 있어야 한다면 정부 규제는 가장 최소화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한국경제는 29일 법제처 업무보고와 관련, “기업과 관련되는 각 부처의 내부 규정도 일괄 심사를 통해 체감 규제를 적극 개선하겠다”는 이 처장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이 처장은 1985년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94년까지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을 지내다가 변호사로 개업한 뒤 99년부터 2001년까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총장을 지냈다. 경실련 총장 시절은 이 처장의 이력 가운데 가장 독특한 시기다. 안티조선운동이 한창이던 무렵 조선일보에 칼럼을 써서 물의를 빚기도 했고 낙선운동과 관련, “시민단체 연대는 바람직하지 않다”거나 “시민운동이 권력 기관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후 경실련과는 완전히 담을 쌓고 정 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실제로 그의 그후 이력은 시민운동과는 완벽하게 무관하다. 그는 경실련을 떠난 뒤 KT와 포스코 등 대기업의 법률고문을 지냈고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대표와 선진화국민회의 상임공동위회 위원장 등을 맡으면서 보수세력의 핵심 인사로 자리 잡았다. 2004년에는 행정수도 이전 위헌소송에서 승소해 노무현 정부의 발목을 잡기도 했다. 지금까지 190여 건의 위헌소송을 제기해 이 가운데 40여 건을 승소한 바 있다.

주목할 부분은 그의 이력 만큼이나 다채로운 입장 변화다. 이 처장은 경실련 사무총장 재직 시절, 사학법 개정 서명운동을 주도하고 서명용지를 한나라당에 직접 전달하는 등 사학법 개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바 있다. 그런 그가 2005년에는 “개정 사학법이 헌법상의 기본권 침해 요소가 많다”면서 위헌소송을 냈다. 자신이 개정하자고 했던 법에 이제 와서 위헌소송을 낸 셈이다. 언젠가 한나라당 주최 토론회에서는 노무현 정부의 고교 평준화 정책이 위헌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2001년 출간한 ‘헌법 등대지기’에서는 “‘진보=개혁, 보수=반개혁’이라는 잘못된 이분법이 횡행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2006년에 출간한 ‘침묵하는 보수로는 나라 못 지킨다’에서는 “헌법의 핵심가치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질서, 적법절차원칙이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치부되면서 국가의 틀이 흔들리고 있다”면서 “산업화와 민주화의 주역인 중도보수 세력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처장은 지난해 대선 국면에서 KBS가 한나라당에 비판적인 보도를 내보내고 있다며 보수단체들을 결집, 항의 집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이명박 정부의 해결사를 자처하고 나선 것은 전혀 낯설지 않다. 조선일보는 “이 처장이 이명박 정부의 ‘리베로 처장’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청와대 주변에선 벌써부터 ‘이석연 (폐지법령) 리스트’가 나올 것이란 말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27일 법제처 업무보고 자리에서 “경제 살리기에 가장 큰 장애는 법 규정”이라고 지적한 것도 향후 법제처의 달라진 위상과 역할을 가늠하게 한다.

이 처장이 취임 이후 처음 꺼낸 아이디어는 자동차 선팅(틴팅) 규제 폐지였다. 이 처장이 내세운 논리는 “자동차 소유자의 상당수가 이 기준을 지키지 않고 있으나 교통사고와 연관성이 낮고 단속 사각지대로 남아 형평성 있는 법 적용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일보가 29일 사설에서 지적했듯이 “자동차 선팅은 1998년 규제개혁위원회가 정기검사 항목에서 제외하면서 방치됐다가 사고 위험성이 계속 제기되자 2005년 가시광선 투과율 40% 이하를 단속 기준으로 도로교통법을 개정, 유예기간을 거쳐 올해 6월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선팅과 교통사고가 연관성이 낮다는 주장은 여전히 논란이 있고 무엇보다도 자동차 소유자의 상당수가 지키고 있지 않기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는 논리는 적어도 법제처장이 하기에는 문제가 많다.

한국일보는 “그의 최근 언행은 선수 본분을 벗어나 심판 노릇을 하려는 듯한 인상을 준다”고 지적했다. 한국일보는 “새 정부의 규제 개혁 해결사라는 말까지 들리지만 지나친 조급증은 스스로 경계해야 옳을 것”이라며 “지나치면 이내 탈이 나는 법”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 처장의 합류는 이명박 정부가 주창하는 법과 원칙의 실체를 가늠하게 한다. 이미 법무부는 “법과 질서만 제대로 지켜도 성장률이 1% 올라간다”는 이 대통령의 철학을 받들어 불법 폭력 시위를 엄단하겠다고 밝혔고 29일 등록금 집회에는 최초로 체포조를 투입하기도 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파격적인 규제 완화 로드맵을 발표, 기업하기 좋은 나라의 돌격대를 자처하고 나섰다. 여기에 법제처까지 이명박 정부의 친위부대로 발벗고 나서는 분위기다.

이 처장은 법과 원칙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의 원칙은 그의 자리에 따라 바뀌어 왔다. 그는 우리 사회가 한쪽으로 편향돼 있을 뿐이고 자신의 원칙은 확고하다고 주장하지만 그의 지난 행적은 그가 주장하는 법과 원칙이 과연 공정하고 중립적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자아낸다. “헌법정신 살리는 게 경제 살리는 지름길”이라는 31일 한국경제 가판 제목 역시 이런 맥락에서 ‘석연’치 않다. 법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우리 사회 보편적인 정서와 배치되는 아찔한 경험이 많았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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