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들은 노동자들에게 말한다. “당신들은 정해진 월급을 받아갈 뿐이지만 우리는 투자한 돈을 잃게 될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 당신들은 위험을 부담하지도 않고 손실에 따른 책임을 지지도 않는다. 당연히 당신들에게는 이익에 따른 권리도 없다. 당신들 월급을 주고 남은 이익은 우리 주주들의 몫이다. 그 이익은 정당한 투자의 대가다.”
터무니없는 억지처럼 들리지만 이게 바로 우리 사회와 우리 경제를 관통하는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다. 이를 좀 더 복잡하게 잔여청구권이라는 말로 설명하기도 한다. 노동자는 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받고 돈을 빌려준 사람은 이자를 받고 재료를 납품한 사람은 납품 대금을 받고 소비자는 돈을 내고 상품을 받는다.
그 모든 임금과 이자와 비용을 지불하고 난 다음에야 주주에게 돌아갈 몫이 남기 때문에 주주들이 그 잔여이익을 청구할 권리를 갖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논리다. 다른 이해 당사자들은 성과와 무관하게 계약에 따라 투자의 대가를 보장 받고 있지만 정작 위험 부담을 떠안은 주주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보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기업의 이익은 누구의 몫인가.
그러나 노동자들은 주주들에게 말한다. “당신들만 위험을 떠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이 회사에서 배운 기술은 다른 회사에서 쓸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당신들은 자본을 투자했을 뿐이지만 우리는 이 회사에 우리의 삶을 투자하고 있다. 이 회사의 이익이 늘어난다면 당연히 우리에게도 나눠받을 권리가 있다. 왜 당신들이 그 이익을 독차지하려고 하는가.”
주주들은 기업의 주인이지만 대부분은 결국 스쳐지나가는 투자자일 뿐이다. 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이들은 굳이 먼 미래를 함께 고민하지 않는다. 이들은 기업이 충분한 기회비용을 제공하고 더 많은 이익을 안겨줄 다른 대안이 나타나지 않는 동안만 주주로 남는다. 극단적으로 이들은 10년 뒤의 더 큰 이익보다는 당장의 작은 이익을 추구한다.
그러나 주주들은 반박한다. “기업의 목표는 결국 이윤 아닌가. 더 많은 이윤에 가장 강력한 동기부여를 받는 이해당사자들이 바로 주주들이다. 기업이 더 많은 이윤을 내고 주주들이 더 많은 이익을 가져가도록 해야 한다. 그런 시스템이 결국 가장 효율적이고 다른 이해당사자들이나 사회 전체로 볼 때도 가장 좋다.”
노동자들은 묻는다. “문제는 지속가능성이다. 우리는 이 회사에 10년 뒤, 20년 뒤까지 남아있어야 하지만 당신들은 10년 뒤는커녕 1년 뒤도 걱정하지 않는다. 당신들이 가져가는 이익은 우리의 미래를 희생한 대가일 수도 있다. 당신들에게 더 많은 이익을 안겨주는 시스템은 과연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시스템인가.”
주주들의 관심은 이왕이면 더 짧은 시간 안에 더 많은 투자수익을 챙기는 것이다. 새로운 공장을 짓거나 생산설비를 들여오는 과정에서 주주들의 반대에 부딪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노동자들은 다시 묻는다. “그렇게 이익을 모두 챙겨나가 버리면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
주주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우리는 IMF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배당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설비투자가 그에 반비례에서 줄어드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기업은 더 많은 이익을 내고 주가도 크게 오르고 주주들은 더 많은 배당을 챙겨 가는데 이상하게도 기업들은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다. 공장도 짓지 않고 새로운 기계를 들여오지도 않는다.
일자리는 꾸준히 줄어들고 노동조건은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 기업마다 산더미처럼 현금이 쌓여있어 은행에서 돈을 빌릴 이유도 없다. 아무도 위험을 떠안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사주를 사들여 주가를 끌어올리는 데 천문학적인 비용을 쏟아 붓는 걸 보면 아연실색할 정도다. 어떻게 된 일일까.
기업의 성장을 바라지 않는 주주는 없겠지만 주주의 욕망은 어쩔 수 없이 단기적이다. 주주들은 10년에 걸쳐 100%의 이익을 내는 것보다 1년에 30%의 이익을 노린다. 10년 뒤까지 남아있을 수도 있겠지만 많은 주주들은 눈앞의 더 많은 이익을 좇아 주식을 사고판다. 이들은 기업의 미래에 관심이 없다. 기업이 안겨줄 당장의 이익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주인과 대리인 이론에서는 주주를 주인으로, 경영자를 주주의 대리인으로 본다. 경영자들이 주주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결정을 내릴 경우, 이 이론에서는 이를 대리인 비용이라고 한다. 기업 지배구조 문제는 결국 이 대리인 비용을 어떻게 줄이느냐의 문제다. 경영자를 주주의 편에 서게 하려고 스톡옵션을 주기도 한다.
시장 근시안 이론에서는 이에 반박해 금융시장이 경영자들에게 장기 가치를 희생하고 단기 가치에 매몰되도록 강요하고 있다고 본다. 주주에게 더 많은 이익을 줘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이런 근시안적인 경영이 장기적으로 기업의 투자 부진과 성장률 둔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적자본 투자이론에서는 자본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인적자산도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데 기여한다고 주장한다. 노동자들에게도 잔여이익을 청구할 권리가 있고 기업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도 당연하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경영자는 주주의 이익뿐만 아니라 노동자와 이해관계자 모두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와 관련해 자산특수성이라는 개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떤 특수한 기술이 있는데 이 기술이 딱 이 회사에서만 필요하다고 가정해 보자. 이 기술을 배워서 취직할 수 있는 곳이 이 회사밖에 없다면 이 회사는 직원들에게 오히려 불리한 조건을 강요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런 우려 때문에 이 기술을 아무도 배우지 않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노동자 입장에서는 위험을 감수하고 자신의 인적자본을 이 기업에 투자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투자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노동자들은 이 회사에서만 필요한 특수한 기술보다는 좀 더 많은 곳에 필요한 기술을 배우게 되고 이 회사는 직원을 찾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장기 고용계약뿐만 아니라 인적자원 투자에 동기부여가 충분히 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주주들은 흔히 노동자들이 대체가능하다고 생각한다. )
혁신적 지배구조 이론에서는 좀 더 나가서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고민하되 단순히 이익의 일부를 떼어주는 데 그칠 게 아니라 혁신적인 자원배분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업의 혁신을 지원하는 금융제도, 투기자본의 규제, 은행의 공공성 강화, 연기금의 주식시장 진출 확대, 노동자의 주식소유 장려와 경영 참여 등을 그 대안으로 제안한다.
장하성 펀드를 보는 이중성.
장하성 펀드를 둘러싼 논란도 정확히 이 지점에 있다. 장하성 펀드는 주주의 이익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둘러싼 오래 된 논쟁의 애매모호한 경계선 위에 놓여있다. 누구도 선뜻 장하성 펀드를 비판하거나 옹호하지 못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 논란에는 우리나라 경제의 본질적인 문제제기들이 모두 포함된다.
그동안 우리나라 언론은 주인과 대리인의 이론을 내세우면서 이른바 주주가치 극대화에 주력해왔다. 경영자들은 철저하게 주주의 이해를 대리해 왔고 더 많은 이익을 위해 노동자들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논리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그러다가 정작 경영권 문제에서는 시장 근시안 이론으로 돌아서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를테면 외국 투기자본의 공격에 맞서 기업의 경영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한쪽에서는 주주가치 극대화를 부르짖으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외국인 주주의 탐욕을 비난하는 이중성, 경영자는 주주의 대리인이라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주주와 맞설 것을 요구하는 모순. 그런데 여기에 장하성 펀드라는 새로운 적이 나타났다.
장하성 펀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장하성 펀드는 올해 3월, 고려대학교 장하성 교수가 만든 사모펀드를 말한다. 원래 이름은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펀드. 규모는 1300억원. 버지니아대학과 조지타운대학 재단, 하나금융지주 등 국내외 10여개 기관 투자자들이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름에서 잘 드러나듯이 이 펀드는 우리나라 기업에 투자하고 그 기업들의 지배구조를 개선해 이익을 내는 것을 목표로 만들어진 펀드다. 사모펀드라서 정확한 지분구조나 운용내역은 파악할 방법이 없다. 이 펀드가 대한화섬의 지분 5.15%를 확보하고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이름도 낯선 이 회사가 갑자기 뉴스의 중심에 서게 됐다.
폴리에스테르 섬유 제품을 만드는 대한화섬은 지난해 2471억원 매출에 146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장하성 펀드가 이 회사에 주목한 것은 자산가치가 4600억원에 이르는데 시가총액은 5분의 1 수준인 800억원 밖에 안 되기 때문. 장 교수는 이 회사가 순환출자와 내부거래 등의 문제로 주가가 저평가 돼 있다고 보고 있다.
자산도 많고 실적도 좋으니 지배구조만 개선해도 주가가 크게 뛰어오를 거라는 계산을 한 것이다.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이 펀드가 처음 대한화섬의 주식을 사들인 것은 4월 7일, 그 뒤 8월 22일까지 45차례에 걸쳐 소리 소문 없이 사들인 주식은 모두 6만8406주, 금액으로는 48억9723만원에 이른다. 평균 매입 단가는 7만1591원이었다.
장하성 펀드에 거는 막연한 기대.
장하성 펀드가 이 사실을 발표한 때가 8월 23일, 대한화섬의 6만5400원에서 걷잡을 수 없이 뛰기 시작해 일주일 뒤인 8월 31일에는 14만1500원까지 두 배 이상 뛰어올랐다. 잠깐 주춤하기도 했지만 9월 12일 기준으로 주가는 15만8천원, 장하성 펀드의 평가이익은 무려 59억1087만원에 이른다.
장하성 펀드는 그동안 우리나라 기업을 공격했던 외국 투기자본과는 차원이 다르다. 외국 자본이 상당부분 들어와 있긴 하지만 딱히 외국 자본이라고 보기도 어렵고 게다가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대의명분까지 내걸었다. 장기투자를 공언하고 있고 장 교수는 운용 보수를 전액 사회단체에 기부하겠다는 의사까지 밝혔다.
주주가치 극대화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난도 옳지 못하다. 장 교수가 주도한 소액주주운동이 그동안 재벌 개혁에 기여한 성과도 무시할 수 없다. 장 교수는 정부도 하지 못한 재벌개혁을 시장의 힘으로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심지어 소버린도 SK그룹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기업가치와 주가를 끌어올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가장 손쉽고 무책임한 비난은 장하성 펀드를 외국 자본으로 몰아붙이고 국부유출의 의혹을 뒤집어씌우는 것이다. 실제로 장하성 펀드는 조세회피지역에 등록돼 있고 운영 주체도 외국 자본이다. 가뜩이나 장하성 펀드의 운용을 맡은 라자드에셋은 2003년 SK그룹을 공격했던 소버린자산운용의 자문을 맡기도 했다. 소버린과 다를 게 뭐냐고 비난하는 언론도 있다.
그러나 이런 비난은 정직하지 못하다. 이들이 걱정하는 것은 국부유출이 아니라 사실 대주주들, 특히 재벌 일가의 기득권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 재벌은 그동안 외국 투기자본을 핑계로 은근슬쩍 경영권을 강화해왔다. 황금주 등 경영권 보호장치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인수합병의 위험을 부풀려 출자총액제도 폐지를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장하성 펀드가 얻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얻게 될 일확천금을 강조하는 것은 좀 더 원색적인 비난이다.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대의명분을 탐욕으로 매도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자본의 탐욕을 부추겨왔던 언론이 탐욕을 비난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이런 비난도 역시 경영권 위협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가장 흔한 반응은 비난보다는 막연한 기대다. 재벌 대기업을 정면 공격하지 않은 탓에 장하성 펀드는 소버린만큼 위협적이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장하성 펀드가 보여줄 주주가치 극대화라는 마법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동안 외국 투기자본에게 뺏기기만 했지만 이제 우리도 그들만큼 엄청난 이익을 낼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주주들의 이해에 기꺼이 동조하는 모순에 우리는 직면하고 있다.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일부 희생하더라도 주주로서 좀 더 많은 이익을 얻는 게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노동자로서의 권리는 막연하지만 주주로서 얻게 될 더 많은 이익은 충분히 가시적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장하성 펀드에 막연한 기대를 거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노동자들이 주주들에 동조하는 모순.
그러나 냉정하게 따져보면 장하성 펀드가 이번에 성공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도 대한화섬의 대주주인 이호준 회장과 그 특수관계인들 지분이 무려 70.94%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장하성 펀드가 지배구조개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거나 거의 없다. 기껏해야 회계장부를 열람하거나 법원에 소송을 거는 정도가 고작이다.
물론 대한화섬이 저평가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가가 오르고 그 과정에서 장하성 펀드가 상당한 시세차익을 얻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펀드가 목표로 내 걸었던 지배구조 개선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소액주주들을 끌어 모은다고 해도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을 벌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자그마치 70.94% 대 5.15%의 싸움이다. 여론을 몰아 압박하지 않는 이상 경영진에게 큰 위협이 안 된다는 이야기다. 대한화섬 경영진은 이미 무소불위의 권한을 갖고 있다. SK그룹의 치명적인 약점을 잡았던 소버린의 경우와 다른 상황이다. 최근 장하성 펀드의 주주명부 요청을 대한화섬 경영진이 거절한 것만 봐도 앞으로 꽤나 힘겨운 싸움이 예상된다.
장하성 펀드는 결국 영리적 목적의 사모펀드일 뿐이다. 장하성 펀드가 우리에게 안겨줄 더 많은 이익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거창한 대의명분을 내걸었지만 과연 자신들이 얻게 될 이익을 희생해가면서 기업의 미래를 함께 고민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게 장하성 펀드와 주주가치 극대화 논리의 현실적인 한계다.
(장하성 펀드는 스스로 만들어놓은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 작성중)
이정환 ‘이코노미21’ 기자 top@journalismclass.mycafe24.com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어떤 경로로 오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이정환 선생님을 알게 된 것도 벌써 반 년 가량 흘렀네요.
한번 두번 읽게 된 것이, 요즘에는 언제 새로운 글이 올라오나 기다려질 정도네요^^;
매번 읽기만 하고 가는 것이 죄송스러웠던지 오늘은 글을 자판을 두들기게 됐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들 많이 읽을수 있도록 수고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어차피 운영주체가 라자드 펀드로 밝혀진 이상 장하성펀드 역시 시민운동가의 이름을 빌은 그냥 그런 영리펀드일 뿐이라는게 제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