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게이트는 미국 역사상 최대의 정치 스캔들이다.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지만 1972년 6월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보좌관이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본부에 침입해 도청 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돼 체포된 사건을 말한다. 워싱턴포스트 밥 우드워드 기자의 보도로 닉슨이 이 사건을 직접 지시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닉슨은 대통령직을 사임하게 된다. ‘딥 스로트’로 알려진 익명의 제보자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워터게이트는 탐사보도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그런데 노암 촘스키 매사추세스공대(MIT)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라는 책에서 “닉슨은 언론과 그 광고주로 대표되는 자본가들과 지배계급의 핵심세력을 적으로 돌림으로써 몰락했다”고 말한다. 촘스키는 워터게이트를 “미국 지배계급 내부의 파워게임”이라고 평가 절하한다. “언론은 그 파워게임에 들러리를 섰을 뿐”이라는 이야기다.
촘스키는 말한다. “사람들이 지닌 중대한 환상 가운데 하나는 정부가 곧 권력 그 자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정부는 권력 그 자체가 아니다. 정부는 권력의 한 부분을 맡고 있을 뿐이고 진정한 권력은 사회를 소유한 사람들의 손에 있다. 워터게이트는 국가 관리자들이 자신의 본분을 잊어버리고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뜻을 거스르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분명한 사례였다. 언론이 얼마나 온순하고 순종적인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했다.”
지배계급의 파워게임에 언론은 들러리.
촘스키는 민주당과 그 배후의 거대한 정치세력이 언론을 앞세워 닉슨을 몰아내고 워터게이트의 본질을 은폐했다고 보고 있다. 이를테면 공화당이 사회주의 노동자당 등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 작업이 벌어졌던 사실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반공정책에서는 언론 역시 공화당과 같은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촘스키는 “워터게이트는 미국 언론이 거둔 가장 위대한 공적의 하나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가장 부끄러운 실패작 중 하나일 뿐”이라고 비난한다.
닉슨은 언론에 나와 “나는 사기꾼이 아니다”라고 강변했다. 그런데 그가 사기꾼이 아니라고 주장할수록 유권자들은 그를 사기꾼으로 믿게 됐다. 조지 레이코프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책에서 “코끼리와 경쟁하려면 코끼리라는 단어를 생각하지 말라”고 조언한 바 있다. 상대방의 프레임에 휘말려들면 안 된다는 이야기다. 사기꾼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순간 닉슨은 사기꾼이 돼 버렸고 어느 순간 대통령직을 그만두도록 내몰렸다.
대통령이 불법도청을 지시하고 이를 은폐하려 했던 이 사건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대수롭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 올바른 일은 아니지만 흔한 일이고 다만 문제는 이 사건이 언론에 폭로됐고 대통령직을 계속할 수 없을만큼 명예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탄핵 직전까지 갔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도 비슷한 사례다. 언론은 한 나라의 대통령을 끌어내릴 수 있을만큼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다.
“언론은 사람과 명성을 갈가리 찢어버리는 포악한 야수와 같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올해 6월 퇴임을 앞두고 로이터 언론연구소에서 했던 강연의 일부분이다. 블레어는 “언론은 영향력이나 충격을 주는 뉴스에서 물러나면 곧 매출 감소로 이어질까봐 두려워하지만 그 반대가 진실”이라며 호된 비판을 쏟아냈다. 블레어가 지적한 6가지 언론의 퇴행적 보도 행태 는 주목할 만하다.
첫째, 추문이나 논란거리가 일상적인 보도를 눌러버리고, 둘째, 공격하려는 의도가 공격적인 비판보다 훨씬 잘 먹혀들게 되고, 셋째, 낙종 공포에 휩싸여 떼로 몰려다니면서 사냥감을 찾게 되고, 넷째, 선정적이고 논쟁적이더라도 일반 보도기사보다는 뉴스에 대한 논평을 선호하게 되고, 다섯째, 그 결과 기사와 논평의 혼동이라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고, 여섯째, 언론에서 균형감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언론은 왜 스캔들만 좇나.
물론 언론은 거세게 반발했다. ‘인디펜던트’는 “우리가 이라크 전쟁을 지지했어도 이렇게 말했을까”라고 반문했다. 이 신문은 사설에서 “이라크 전쟁이 가장 끔찍한 외교적 결정이라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며 이에 대해 사과할 뜻이 전혀 없다”고 맞섰다. 블레어의 비난은 다분히 감정적인 것이었지만 그의 지적은 영국 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우리나라 언론을 돌아봐도 상당부분 옳다.
토마스 마이어 독일 도르트문트 대학 교수는 올해 3월 한국언론재단에서 열린 초청강연에서 “정치가 미디어화 하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마이어는 “정치인들이 미디어의 룰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정책 대결 보다는 ‘플라시보’ 정치에 치중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플라시보 효과란 실제로 효과가 없는 약이지만 환자가 그것을 모르고 효과가 있다고 믿을 경우 정말로 효과가 나타나는 현상을 의미한다.
마이어는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사례를 들었다. 레이건은 교육예산을 크게 삭감했지만 초등학교를 찾아가 학생들과 대화하는 모습이 TV에 비춰지면서 교육 문제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는데 성공했다. 국민들은 언론에 비춰지는 모습을 보고 정치인을 판단한다. 언론이 초등학생들과 대화만 비춰준다면 교육예산이 얼마나 삭감됐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마이어는 독일의 미디어를 과거 10년간 분석한 결과, TV 정치뉴스 가운데 80%, 신문은 50% 이상이 인물 중심이었다고 소개했다. 정치뉴스에 정책은 없고 드라마적 요소와 영상적 효과만 가득하다는 이야기다. 마이어는 “미디어는 정치에 대해 얘기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정치를 떠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치가 미디어 시스템에 예속화하고 결국 정치가 폴리테인먼트(정치와 오락의 합성어)화한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통령 선거를 앞둔 최근 정치판과 언론 보도를 보면 명확하다.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의 학력위조 파문이 청와대로 확산되고 정치 스캔들로 돌변하는 일련의 과정은 플라시보 정치와 폴리테인먼트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정치뉴스가 쏟아져 나오지만 여기에는 아무런 정책도 비전도 없다. 추악한 음모와 스캔들만 난무할 뿐이다. 급기야 일부 언론은 여성의 알몸 사진을 게재하기도 했다.
선거를 석 달 남짓 앞둔 시점에서 언론과 국민들의 진짜 관심은 신정아씨의 남성 편력이 아니라 그가 청와대 또는 정부 여당과 얼마나 깊숙이 관련돼 있는가 하는 것이다. 더 정확히는 이 스캔들이 이미 확정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지지율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이냐 하는 것이다. 언론은 이런 국민들의 관심에 기꺼이 부응하면서 의혹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 끊임없이 우려먹는다.
정치가 미디어 시스템에 예속화된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시장에서 아이스크림 통을 어깨에 매고 “아이스케키”를 외친다. 이 장면은 저녁 뉴스를 타고 전국의 유권자들에게 배달된다. 경선에서 패배했지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당원 간담회에서 ‘젊은 그대’를 부르기도 했다. ‘젊은 그대’를 빨리 부르면 ‘젊은 그네(근혜)’로 들린다는 참모진, 이른바 스핀 닥터들의 의견을 수용한 퍼포먼스였다. 이런 뉴스에는 아무런 정치적 메시지도 없다.
통합민주신당의 경선 역시 따분하기는 마찬가지다. 열심히 하겠다는 이야기는 많지만 대통령에 당선되면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친노 대 반노의 대립이 있을 뿐 결국 얼굴만 보고 찍어야 할 판이다. 넓게 보면 한나라당과 통합민주신당의 차이점도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이런 식이라면 이번 대선은 한반도대운하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의 선택으로 흐를 가능성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정치인들의 이벤트는 이미 역사가 깊다. 일찌감치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기타를 들고 나와 ‘상록수’를 불렀고 탄핵 사태 이후 추미애 전 민주당 최고위원은 삼보일배로 국민들 마음을 돌리려 애쓰기도 했다. 한나라당은 한동안 천막당사 생활을 하면서 속죄하는 모습을 비춰주려 했다. 데이비드 슐츠 미국 햄린대 교수가 말한 ‘폴리테이너(정치인과 연예인의 합성어)’라는 단어를 갖다 붙여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다.
한편 이명박 후보의 한반도대운하를 둘러싼 논의는 다분히 코끼리의 논의와 같다. 코끼리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상대방도 결국 코끼리의 프레임이 갇히게 된다. 한반도대운하를 반박하면 할수록 이 후보의 주장에 이목이 집중된다. 온갖 논리가 쏟아져 나오면서 선뜻 판단을 내리기 혼란스러운 상황이 되고 결국은 한반도대운하라는 아젠다만 남게 된다. 이 후보에게 한반도대운하는 실현 가능성 여부를 떠나 절호의 흥행카드였던 셈이다.
문제는 누가 먼저 흥행카드를 선점하느냐다. 일찌감치 2002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김민석 의원이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의 청계천 개발을 비판했다가 패배했고 지난 대선에서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표가 노무현 후보의 행정수도 이전을 비판했다가 패배한 바 있다. 이명박 후보는 최근 한나라당 경선에서 재산형성 과정에 대한 잇단 의혹을 음모론으로 일축하고 청와대의 정치공작으로 몰아붙이기도 했다. 이 후보는 아젠다 선점에 능숙하다.
이번 대선은 개혁진보세력의 수성이냐 보수세력의 탈환이냐로 정리할 수 있다. 물론 노무현 정권을 개혁진보세력이라고 보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개념에서다. 이른바 조중동과 문화일보를 비롯한 보수성향의 신문들이 일찌감치 이명박 후보에 줄을 선 것은 결코 낯선 일이 아니다. 이 후보는 일찌감치 미디어팀을 꾸리고 이미지 전략을 짜고 있다. 지금까지 이 후보의 언론 전략은 매우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러시아의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은 1996년 선거를 앞두고 스핀 닥터를 대거 고용했다. 옐친의 선거 전략을 진두지휘했던 알렉세이 볼린은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공약을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볼린은 방송사가 좋아할만한 장소에서 집중적인 유세를 펼쳤고 철저하게 감성적인 광고로 밀어붙였다. 그 결과 선거 6개월 전 지지율이 6%에 지나지 않았던 옐친은 압도적인 표차로 재선에 성공했다.
미국의 여론조사 전문가 프랑크 룬츠는 “미국인의 50%는 연방 상원의원 이름을 2명 이상 알지 못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룬츠에 따르면 2000년 대선 때 출구조사 결과 유권자 5명 중 1명은 조지 부시 대통령 후보의 러닝 메이트가 누군지도 몰랐다. 하물며 그들이 내놓은 정책 따위에 관심이 있을 리가 없다. 유권자들은 말쑥한 존 캐리 상원의원보다 푸른 셔츠의 소매를 걷어 올린 카우보이 같은 이미지의 부시에 더 끌렸다.
마크 크리스핀 밀러 뉴욕대 교수는 ‘부시의 언어장애’라는 책에서 부시의 부정확한 발음과 문법 등을 조롱한 바 있다. 밀러는 “근대 대통령 중 어느 누구도 웅변과 학식 면에서 부시보다는 낫다”고 지적하면서 난독증이 있는 것 같다는 진단을 내리기도 했다. 문제는 미국 언론이 이런 부시를 평범하면서도 친숙한 대통령, 9·11 테러 이후에는 심지어 영웅으로 포장해 왔다는데 있다.
자본이 언론을 지배하고 언론이 대통령을 만든다.
“권력과 돈으로 인한 미디어 통제 때문에 민주주의가 큰 위협을 받고 있다. 해결책은 인터넷뿐이다.”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의 이야기다. 고어는 지난해 8월 영국 애든버러 페스티벌에서 “민주주의는 대화이며 미디어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민주주의의 대화를 촉진하는 것”이라며 “오늘날 대화는 더욱 통제되고 중앙에 집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어는 “TV는 여전히 미디어의 주축이지만 이를 보완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촘스키는 ‘여론조작’이라는 책에서 ‘선전 모델’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언론이 권력을 움켜 쥔 특정 이익집단의 이해를 대변하고 선전한다는 이야기다. 촘스키는 “언론이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도한다는 믿음은 언론과 권력이 만들어낸 신화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촘스키는 또 “언론은 진실을 추구하고 정의를 수호한다는 허상에 사로잡혀 있지만 뉴스를 선별하고 강조하거나 배제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언론은 자본의 영향력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자본은 언론을 흔들고 권력까지 뒤흔든다. 이번 대선에서 정책 대결이 사라지고 시장주의와 보수주의가 지배담론으로 자리잡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신정아씨 사건과 청와대까지 번진 정치 공방이 전면에 등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언론은 이미 의제 설정을 포기했고 기꺼이 자본의 이해를 반영한다. 선거의 주인공은 언론이고 그 배후에는 자본이 있다.
인터넷과 사용자 제작 콘텐츠, 이른바 UCC가 그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아직 확신할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언론이 여론을 형성하고 수렴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고 대의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이 말하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깨달아야 한다. 선정적이고 편향적인 보도를 넘어 좀 더 정치의 본질에 접근하는 보도가 아쉽다. 인터넷과 UCC 혁명에 기대를 거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정환 기자 top@journalismclass.mycafe24.com
미디어미래 10월호에 보낸 글입니다.
작은 수정하나. ‘딥 스로트’ 밝혀지지 않았나요? 2년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