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실명제 컨퍼런스가 잘 끝났다. 대략 세어보니 70여명, 중간에 다녀간 사람들을 포함하면 얼추 100명 정도는 된 것 같다. 한 달 남짓한 동안 뚝딱 치른 행사치고는 성공적이었다는 안팎의 평가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발제가 모두 충실하고 흥미로웠다. 발제자들 뿐만 아니라 청중들도 모두 만족해하는 분위기였다. 뒷풀이 자리에도 거의 30명이 모였다. 하루 종일 긴장했던 탓인지 끝나고 돌아오니 기운이 쭉 빠지는 느낌이었다.
기사로 정리하긴 했지만 행사 진행과정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를 덧붙이고 싶다. 이번 행사는 거의 비용이 들지 않았다. 행사장소는 무료로 빌렸고 간식거리와 생수, 기타 부자재를 사는 정도였다. 발제자들 사례비도 없었다. 몇 차례 준비회의 비용은 갹출하거나 블로그래픽 운영비에서 충당했다. 특별히 유명인사도 없었고 이벤트도 없었다. 그야말로 기획과 문제제기, 입소문만으로 청중을 끌어모았다. 물론 트위터의 역할이 컸다.
이날 컨퍼런스는 ‘인터넷 주인 찾기’라는 연쇄 프로젝트의 첫 번째 행사였다. 인터넷 실명제라는 협소한 주제, 언뜻 지루하고 뻔한 이야기가 될 거라고 다들 우려했지만 컨퍼런스는 시종일관 흥미진진했다. 100인 100색이라고 할까. 다양한 관점의 문제제기가 쏟아졌다. 무엇보다도 이날 컨퍼런스의 가장 큰 성과는 강정수님의 표현대로 방문자가 아니라 거주민들이, 바로 우리가 우리의 문제를 고민하고 대안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는데 있다.
펄님의 발제가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실명제란 오프라인의 페르소나만 진짜로 인정하고 자기 내면의 자기 자신은 가짜라고 낙인찍는 것”이라는 지적은 핵심을 정확히 찌른다. 펄님은 “인터넷 실명제는 페르소나를 벗어 던지고 내면의 자아가 욕망을 추구하는 것을 막는 가면금지법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강정수님과 민노씨, 펄님, 새드개그맨님, 써머즈님, 이승환님, 링크님, 나솔님 등에게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씀을 드린다.
기사에 반영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상당수의 언론사들이 인터넷 실명제를 거부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불이익을 감수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발제를 했다. 대안으로는 블로터닷넷처럼 댓글을 전면 폐쇄할 수도 있고 미디어스처럼 비공개 게시판을 운영하되 댓글을 기사로 정리해서 공개할 수도 있고 민중의소리처럼 벌금을 감수하고 전면 저항하는 방법도 있다. 아직 국내 사례는 없지만 트위터를 댓글에 연동시키는 방법도 가능할 것이다.
흥미로운 건 해외 사이트인 유튜브가 확산되면서 인터넷 실명제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 것처럼 트위터 사용자가 늘어나게 되면 형평성 문제와 함께 인터넷 실명제가 자연스럽게 유명무실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데 있다. 댓글 대신 트윗을 쓰게 하면 그걸 제재할 수 있을까. 이 모든 딜레마는 결국 규제할 수 없는 걸 규제하려고 하고 규제해서는 안 되는 걸 규제하려고 하기 때문에 벌어진다.
나는 이날 컨퍼런스가 한국 인터넷 역사에 기록될 만한 중요한 사건이 될 거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인터넷 실명제는 머지않아 폐지될 수밖에 없다. 필요하다면 누리꾼들의 조직적인 저항운동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앞으로 인터넷 실명제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제제기가 쏟아질 것이고 그때마다 많은 누리꾼들이 고민을 쏟아낼 것이다. 이날 컨퍼런스가 그 첫 걸음이 될 거라고 믿는다.
한 참석자가 “말이 많으면 진다, 좀 더 선명한 구호가 필요할 것 같다”고 지적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시대착오적 규제인 것은 분명하지만 실제로 인터넷 실명제를 폐지하기까지는 넘어야할 장벽이 많다. 좀 더 적극적인 대안이 거론되지 않았던 건 아쉬움으로 남는다. 해외에 서버를 둔 선거법 위반 운동 같은 것도 필요하지 않느냐는 이야기가 잠깐 나왔지만 구체적인 논의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개인적인 일로 참석하지 못한 게 너무 아쉽네요. 여러모로 의미있는 행사로 잘 진행되고 마무리되었다고 하니 참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