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머니’와 ‘투기자본의 천국’,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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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블랙머니’를 봤다. 어쩐지 손발이 오그라 들 것 같아 안 보려고 했으나 의외로 좋더라는 평가도 많았고 궁금하기도 했다. 이 영화는 실제 사건을 기초로 허구의 이야기를 풀어낸 이른 바 ‘팩션(fact+fiction)’이다.

나는 올해 초 론스타 불법 매각 사건을 다룬 ‘투기자본의 천국’이라는 책을 냈다. 미디어오늘과 미디어다음이 공동으로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고 1400만 원 이상 후원을 받기도 했다. 이 책은 영화와 달리 100% 사실을 기초로 쓴 책이다.

나는 론스타 사건을 15년 이상 취재하면서 수만 페이지 분량의 관련 자료를 분석했고 이 영화의 제작 과정에도 약간의 기여를 했다. ‘블랙머니’는 역시나 손발이 오그라들긴 했지만 그래도 꽤 잘 만든 영화라고 평가할 수 있다.

“팩스 5장에 70조 원 가치의 은행이 1조7000억 원에 넘어 간 거네.”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 말은 미묘하게 사실과 다르다. 외환은행의 BIS 비율 전망이 오락가락했고 최악의 경우 외환은행의 자기자본 비율이 6.16%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는 극단적인 전망이 외환은행 매각에 결정적인 근거가 됐던 것은 사실이다.

아래 글에서는 영화와 현실의 차이를 몇 가지 짚어보고 남아있는 의혹과 과제를 이야기해 보겠다.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지만 미리 알고 봐도 좋을 내용이라고 본다.

다들 짐작하다시피 이 영화의 ‘스타펀드’는 론스타펀드고 ‘대한은행’은 외환은행이다. ‘CK로펌’은 김앤장(김·장 법률사무소, Kim&Chang)을 거꾸로 쓴 것이다.

양민혁 : “박수경이 데리고 뭘 조사했냐고.”
최프로 : “대한은행 헐값 매각사건, 자산가치 70조가 넘는 은행이 1조7000억에 넘어갔다.”
양민혁 : “말이가. 70조짜리를 무슨 1조7000억에 넘어가.”
최프로 : “말이 안 되지. 근데 그렇게 넘어간 근거가 팩스 5장. 대한은행에서 금감원으로 보낸 허위 보고서. BIS 비율 조작한 서류.”
양민혁 : “BIS가 뭐야?”
최프로 : “자기자본비율이라는 건데 대한은행은 자기자본비율이 낮아서 재정 상태가 안 좋은 그런 부실 은행이다, 이런 걸 팩스로다가…”
양민혁 : “그걸 근거로 금감원은 대한은행을 헐값에 팔리게 한 거네.”

1. 70조 원 가치 은행이 1조7000억 원에 넘어갔다.

일단 외환은행이 70조 원 가치였다는 건 지나친 비약이다. 론스타가 68조 원 이상을 챙겼다는 건데 일단 말이 안 되는 소리고 실제로 2003년 6월 말 기준으로 외환은행의 자산총계가 64조7299억 원, 부채총계가 62조4924억 원이다. 자산총계에서 부채총계를 빼면 순자산은 2조2375억 원 정도가 된다.

기업 가치는 평가 기준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2006년 12월 검찰 수사 결과 발표에서도 “자산을 저평가하고 부실을 부풀려 정상 가격보다 최소 3443억 원, 최대 8252억 원의 낮은 가격에 매각했다”는 결론을 내렸으니 실제 외환은행의 기업 가치는 높게 잡아도 3조5000억 원 정도였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론스타는 2003년 10월, 외환은행의 지분 절반(51.02%)를 인수하는데 1조3834억 원을 썼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감안해야겠지만 실제로 론스타의 부당이익은 1조 원을 넘는다고 보기 어렵다. 물론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70조 원 가치”까지 이야기할 정도는 아니다.

2. 출처 불명의 팩스 5장에 팔렸다.

팩스 5장에 은행이 넘어갔다는 것도 영화적인 과장이다. 외환은행 매각을 앞두고 BIS 비율을 전망한 자료가 여러 가지 버전이 있었는데 이 팩스보다 더 부정적인 전망도 있었다.

팩스에는 BIS 비율이 6.16%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돼 있는데 실제로 2003년 6월16일 금융감독원 보고서에는 “외자 유치에 실패할 경우 단순 자기자본비율이 2.88%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있었다. 물론 이 최악의 시나리오도 출처가 같을 가능성이 있지만 팩스 5장이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외환은행의 위기를 과장하려는 일련의 과정에 있었다고 보는 게 맞다.

다시 정리하면 의문의 팩스 5장이라는 건 검찰이 출처를 정확하게 확인하지 못했다는 의미일 뿐, 일단 이 팩스는 외환은행에서 금융감독위원회에 보낸 것이라고 보는 게 맞다. 실제로 팩스 상단에 ’02-729-‘라는 숫자가 찍혀있는데 이게 외환은행의 전화번호 앞자리와 같다. 금융감독위원회는 국정감사에서 “외환은행에서 받은 자료를 토대로 은행감독1국에서 추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물론 외환은행에서 발송한 게 맞다고 하더라도 최종 설계자가 누구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파는 쪽 입장에서는 당연히 최대한 몸값을 올려 받으려 할 것이다. 그런데 외환은행이 ‘우리 곧 망할 것 같아요’라는 자료를 보냈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누군가가 외환은행에 가이드라인을 주고 ‘외환은행을 지금 당장 팔지 않으면 망한다’는 시그널을 금감위에 보낸 것이다.

외환은행이 보낸 시나리오는 2003년 7월16일 5.42%에서 7월18일에는 5.25%로, 7월19일에는 6.04%로, 7월21일에는 6.16%로 계속 바뀐다.

금융감독위원회 송아무개 사무관은 검찰 조사에서 “금융감독원 보고서의 9.14%와 외환은행 보고서 5.42%의 차이가 커서 외환은행에 문의한 결과 이 수치는 완전 클린화를 전제로 잠재 부실 요소를 모두 끌어들이고 총액 1.7조 원이 연말까지 모두 부실화한다는 가정 하에 이를 일시에 손실로 반영한 것이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애초에 지나친 가정이라는 걸 금융감독위원회 직원들도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3. 팩스를 보낸 사람들이 모두 죽었다.

팩스를 보낸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도 표면적으로는 맞다.

외환은행은 2006년 국정감사에서 재무기획부의 허아무개 차장이 팩스를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는데 허 차장은 이미 2005년에 죽은 사람이었다. 원래 지병이 있었다는 게 외환은행의 설명이었다. 팩스를 보낸 사람이 죽었다기 보다는 죽은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덮으려 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검찰 수사는 여기서 더 나가지 못했다.

죽은 사람이 또 있다. BIS 비율 보고서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금융감독원 진아무개 검사역도 2007년에 뇌출혈로 사망했다. 진 검사역은 론스타가 외환은행 인수 자격이 안 된다고 반발했다가 고집을 꺾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공교롭게도 외환은행 문건과 관련된 두 사람이 죽었는데 둘 다 타살이라고 볼 근거는 없다. 영화적 상상력을 동원하면 충분히 의심할 만하지만 당시 외환은행과 금융감독위원회 사이에 오고갔던 수많은 문서들에 부정적인 시나리오가 담겨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 사람들이 실제로 죽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이미 죽은 사람들에게 적당히 떠넘겼을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실제로 문건 작성을 지시한 사람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팩스 5장의 진짜 출처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누군가가 일부러 죽였을 가능성이 있을까? 알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에 덮는다고 덮힐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 모두가 ‘공범’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BIS 비율을 ‘조작’했다는 것도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BIS 비율 ‘전망’은 어떤 변수에 얼마나 가중치를 두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인데 굳이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전망치를 근거로 외환은행에 자본 확충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의도적으로 위험을 과장했다고 볼 개연성이 있고 그걸 조작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영화에서는 누군가가 무슨 장부를 조작한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게 구성돼 있다.

아주 객관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조작’이 아니라 ‘전망’이 달라진 것이다.

참고로 외환은행의 BIS 비율은 1997년에는 6.8%였으나 1998년에는 8.1%, 1999년에는 9.8%, 2000년에는 9.2%, 2001년에는 11%, 외환은행의 자본유치가 거론된 시기인 2002년에는 9.4%, 2003년에는 9.6%를 기록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외환은행은 BIS 비율이 8%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었다. 쟁점이 되는 건 외자 유치에 실패했을 경우 2003년 외환은행의 BIS 비율이 얼마나 떨어질 것인가였다.

어느 기업이든 최악의 시나리오는 있다. 이 경우는 거의 있을 수 없는 가능성을 근거로 극단적인 예외 조항을 적용해 은행을 팔아넘겼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이다.

문제의 팩스는 외환은행의 매각 자문사였던 삼일회계법인에서 나온 자료도 아니고 외환은행에서 나온 자료도 아니었다. 당시 외환은행을 실사한 곳이 삼일과 삼정, 두 군데 밖에 없는데 삼일이 아니라면 삼정일 수밖에 없다. 삼정회계법인은 론스타의 인수자문사였다. 결국 삼정과 론스타에서 나온 자료라고 볼 수밖에 없다는 게 2006년 국회 문서검증 특별위원회의 결론이었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은 이대로 가면 망할 것 같다’는 전망을 만들어 외환은행에 건네고 외환은행이 ‘우리 망할 것 같아요’라는 문서를 만들어서 금융감독위원회에 건네고 그걸 근거로 ‘외환은행을 팔아넘겨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만약 허 차장이나 진 검사역이 살아있었다면 이 같은 사실을 진술했을 것이다. 물론 이 두 사람이 아니라도 진술할 수 있는 사람은 충분히 있다. 다만 죽은 사람에게 떠넘기고 ‘우리는 모른다’고 잡아 떼고 있을 뿐이다.

5. 인수 대금의 상당 부분이 원화로 입금됐다.

외국 자본 유치라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실제로는 국내 검은 머리 외국인들의 돈이 섞여 있었던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었다.

영화에서는 입금 내역이 달러가 아니라 원 단위로 찍혀 있다는 걸 근거로 외국에서 돈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는데, 당연히 이 부분도 숱한 취재와 검증이 이뤄졌다. 외환은행은 이 자료가 실제 투자금액이 아니라 선물환 거래 내역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영화에서처럼 입금 내역을 추적해서 실제 물주를 확인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았다. ICIJ(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 홈페이지 같은 데 들어가서 이름을 집어 넣으면 주소가 툭 튀어 나온다면 얼마나 좋았겠나. 실제로는 론스타의 자문사였던 씨티뱅크가 선물환 결제 대금 12억200만 달러를 HSBC와 도이체방크 등 4개 외국계 은행을 거쳐 입금한 사실만 확인했을 뿐이다.

뉴스타파가 2013년에 보도한 ICIJ의 파나마 페이퍼스 자료는 파나마의 로펌 모색 폰세카(Mossack Fonseca)의 고객 명단이 유출된 것을 뉴스타파가 협업 취재한 결과인데 당연히 여기에는 론스타의 고객 명단이 없었다. 모색 폰세카는 수많은 페이퍼 컴퍼니 가운데 일부를 관리했을 뿐이고 론스타는 모색 폰세카와 거래하지 않았다. 론스타의 고객 명부 같은 건 아직까지 확인된 바 없다.

(영화에서는 론스타의 투자자들이 실명을 숨기기 위해 교도소 재소자 등의 명의를 훔친 것으로 나오는데 어차피 주민등록번호가 필요할 것도 아닌데 가명도 아니고 굳이 생판 모르는 남의 이름을 실명으로 가져다 쓸 이유가 없다. ICIJ가 한국의 다른 언론은 모두 ‘기레기’라서 정보를 안 줬다는 대목에서도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한국인 투자자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외환은행에 직접 입금(계좌이체)을 할 이유가 없다. 당연히 론스타가 운용하는 펀드에 직접 투자했을 것이고 론스타의 투자자 구성은 전혀 공개되지 않는다. 영화에서처럼 입금 내역을 털어보니 한국인이더라는 상황은 가능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론스타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폐쇄적인 사모펀드의 주주 명부를 다른 나라의 정부가 털 수 있는 권한이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그걸 모르고 외환은행을 팔았냐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론스타가 외화를 들여오지 않고 국내에서 이른바 신디케이트 론을 조성해 국내 금융기관이나 기업들에게 돈을 끌어 모았을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여기에 재정경제부 ‘모피아’나 국내 ‘큰손’의 돈이 들어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에 투자하기 전에도 한국 투자 규모가 꽤 됐기 때문에 극동빌딩과 스타타워 등을 담보로 국내에서 대출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국내 은행에서 수천억 원 규모의 대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자금 출처에 대해서는 제대로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다.

6.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는 데 들인 돈은 1700억 원 밖에 안 된다.

영화에서 “1700억 원으로 70조 원짜리 은행을 먹었다”는 말이 계속 나오는데 이는 외환은행 인수 자금 1조3834억 원 가운데 론스타의 자기자금은 1704억 원이고 나머지는 차입으로 조달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당연히 론스타는 사모펀드고 고객들의 돈으로 투자를 한다. 사모펀드는 최소 자본금으로 시작해 외부 자금을 끌어모아 투자를 하기 때문에 당연히 자기자본보다 자산 규모가 훨씬 크다. 사모펀드가 원래 그런 것이다. 투자자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고 어떤 목적으로 경영권을 행사하는지도 알 수 없다. 그래서 법적으로 비금융 주력자가 은행을 소유할 수 없도록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사모펀드에 은행을 넘겼다는 게 문제지만 이 펀드가 자기자본이 얼마인지 전략적 투자자(SP)와 제한적 투자자(LP)가 어느 정도 비율로 돈을 댔느냐는 확인이 불가능한 문제다.

영화의 이 대목은 2008년 6월 미디어오늘 인터뷰에서 인용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검은 머리 외국인’ 개입돼 있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는데 들인 자기자본은 1700억 원 밖에 안 됩니다. 나머지 1조2130억 원은 모두 차입으로 조달했고요. 입금내역을 보면 100억 원 단위로 원화로 입금된 부분이 보이죠. 투자자는 모두 23명인데 이 가운데 원화 입금은 100억 원이 1명, 300억 원이 1명, 400억 원이 2명, 500억 원이 6명, 1000억 원이 1명입니다. 이 자금은 역외펀드나 조세회피 지역을 우회해서 들어온 국내 자금일 가능성이 큽니다. 론스타가 파격적인 특혜를 받으면서 국내에서 천문학적인 이익을 내고 있는 것도 이들 투자자들의 역할과 무관하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론스타의 투자자 일부는 밝혀진 바 있다. 론스타는 ABN암로가 1억 달러를 투자한 것은 사실이나 의결권이 없는 소극적 자본 투자자라고 밝힌 바 있다. 일부 투자 금액을 연리 6%의 회사채로 조달한 것도 사실이라고 밝혔지만 규모는 공개하지 않았다.

애초에 금융감독위원회는 론스타의 주주 구성이나 투자자가 누구인지 관심조차 없었다. 다음은 외환은행 매각을 앞둔 2003년 9월25일 금융감독위원회 회의 기록 가운데 일부다.

질문 : “론스타는 투자 구조가 왜 이렇게 복잡한가요?”
답변 : “조세회피 목적이라고 합니다.”
질문 : “론스타의 의사결정 주체가 누구인가 알 수 없습니다.”
답변 : “최종적으로 LSF-KEB홀딩스라는 펀드가 외환은행을 인수하게 됩니다.”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도 금융감독위원회가 과연 어디까지 알고 있었는지 집요하게 추궁했지만 끝까지 몰랐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니까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속였고 한국 정부는 론스타가 자격이 안 된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인데 왜 적극적으로 검증하지 않았느냐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7. 징벌적 매각을 했어야 했다.

우리가 ‘외환은행 불법 매각 사건’이라고 부르는 것은 2003년 외환은행 매각에 문제가 있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영화 ‘블랙머니’는 2003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보다는 2012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영화에 빠져들다 보면 마치 금융위원회 위원들이 외환은행을 팔아넘긴 것 같은 분위기인데 사실 금융위원회는 이미 팔아넘긴 은행을 처분하고 떠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물론 2003년의 인수가 불법이었으니 2012년에 매각(먹튀)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와 한국 법원은 2003년의 인수는 합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워낙 복잡한 사건이라 간과하기 쉽지만 지금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면서 주장하고 있는 건 한국 정부가 부당하게 매각을 지연시켜 손해를 봤다고 보기 때문이다.

도대체 뭐가 진실이냐고 묻는 사람들을 위해 간단히 다시 정리해 보기로 한다.

첫째, 2003년 10월, 외환은행이 위험한 상황이었을 수는 있지만 어떤 경우라도 론스타는 한국에서 은행의 대주주가 될 자격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 한국의 은행법이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는 금융기관의 지분 10% 이상을 소유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고 만약 소유할 경우 매각 명령을 내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외환은행의 BIS 비율이 급격히 떨어질 거라는 전망을 전제로 은행법 시행령의 예외 조항을 적용해 매각을 승인했지만 애초에 전제가 잘못됐을 가능성이 있다.

둘째, 론스타의 산업자본 여부도 매우 중요한 쟁점이다. 금융위원회가 2003년 10월 외환은행 매각을 앞두고 론스타가 산업자본인가 아닌가를 심사했는지 안 했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심사를 했는데 산업자본이 아닌 것이라는 결론이 났을 수 있고(이 경우는 심사가 부실했다는 이야기고) 산업자본이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이 있었지만 아니라고 결론이 냈을 수도 있다(이 경우는 누군가가 진실을 은폐했거나 탈법을 강행했다는 이야기다). 내가 이 사건을 오래 취재하면서 판단한 건 아마도 금융당국이 론스타의 산업자본 여부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거나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강행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다.

‘어쨌거나 안 된다’는 게 진실이라면 그때는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라는 정서가 금융위원회와 재정경제부의 분위기였던 것 같다.

셋째, 2009년부터 징벌적 매각을 명령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는데 취재 기자 입장에서 볼 때 징벌적 매각을 명령하려면 론스타의 불법 행위를 입증하는 게 우선이다. 론스타의 불법이란 게 한국의 금융 관료들을 매수해서 외환은행의 경영 전망을 비관적으로 낮춰 잡았다거나 론스타가 산업자본이란 걸 숨겼다거나(허위로 보고했다거나) 하는 것이라면 이걸 먼저 내부적으로 ‘클리어’해야 론스타에게 징벌적 매각을 명령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배임과 뇌물 수수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았던 변양호 당시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 국장은 대법원까지 가서 무죄로 풀려났고 김석동 당시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국 국장은 재판까지 가지도 않고 혐의가 없다는 결론이 났다. ‘모피아’의 실세로 거론됐던 이헌재 전 부총리 역시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이미 2003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는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론스타의 인수 승인이 문제가 없었다면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속인 것인가. 산업자본이 아니라고 속이고 BIS 비율 전망을 낮춰 잡고 은행법 시행령 예외 조항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과연 아무런 잘못이 없었나. 이 모든 게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감쪽같이 속인 결과란 말인가.

론스타가 적극적으로 속였다고 보기에는 금융감독위원회도 론스타가 산업자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른바 추경호 문건 등에 따르면 론스타의 자격 요건 때문에 외환은행 인수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변양호 등에게 보고됐으나 묵살된 정황도 확인됐다. 론스타의 산업자본 여부를 사소한 문제라고 생각했거나 이게 치명적인 결격 사유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뭉갰을 가능성이 있다. 론스타와 ISD 재판 과정에서 이런 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영화 ‘블랙머니’에서는 한국과 한국 정부를 피해자처럼 묘사했지만 론스타 입장에서는 한국 금융당국의 승인을 받아서 제값을 치르고 사들였는데 막상 팔고 싶을 때 못 팔게 해서 손해를 봤다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8. 검찰이 사건을 덮었다.

검찰은 비교적 수사를 열심히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변양호 당시 기획재정부 금융정책국 국장의 배임과 뇌물 수수 혐의와 대가성 여부를 구체적으로 입증했지만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외환카드 주가 조작 사건은 좀 더 명확하다. 유회원 론스타코리아 대표와 론스타코리아에게 유죄가 선고됐고 세금도 추징했다.

영화와 비슷한 대목도 있다. 변양호 사건을 담당했던 심재돈 검사는 재판 결과에 거세게 항의했다가 공주지청으로 발령이 났다. 재판이 진행 중인데 수사 검사를 지방으로 내려 보내는 건 수사를 중단하라는 지시나 마찬가지다. 심재돈 검사는 공주와 서울을 오고가면서 공판에 참석했으나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심재돈 검사는 상고심 도중 서울중앙지검으로 복귀했다가 2013년 검찰을 그만두고 김앤장으로 옮겨갔다. 영화에서 양민혁 검사가 연봉 20억 원에 CK로펌 입사를 제안 받은 장면과 오버랩된다. 영화에서 대검 중수부장은 부총리를 풀어주는 조건으로 검찰총장 자리를 요청한다.

실제로 론스타 사건에서 검찰이 사건을 은폐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만 변양호의 윗선에 대한 수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고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김앤장에 대한 수사도 진행되지 않았다. 명백하게 드러난 혐의에 대해서도 법원은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윗선을 건드리지 못하고 변양호 선에서 멈춘 것도 안타까운 부분이다. 론스타코리아 유회원 대표의 구속 영장이 네 차례나 기각된 초유의 사건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영장전담 판사와 중수부장 등의 부적절한 만남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판사 돌려막기, 그들이 언제나 풀려나는 이유.)

9. 누가 테이블 머니를 쓸어담았나.

론스타는 얼마를 벌었을까?

론스타는 2003년 10월, 외환은행 인수 과정에서 신주 2억6875만 주를 인수하는 데 1조750억 원, 수출입은행과 코메르츠방크 등이 보유하고 있던 구주 6000만 주를 인수하는 데 3084억 원을 썼다. 외환은행 매각을 서두르던 2006년 6월, 수출입은행과 코메르츠방크의 남은 지분을 콜 옵션 행사로 인수한 주식이 모두 7715억 원에 이른다. 결국 론스타가 외환은행에 투자한 돈이 합계 2조1549억 원이다.

론스타는 8년 4개월 만인 2012년 2월 하나금융지주회사에 외환은행 지분 전량을 4조4059억 원에 내다 팔고 떠난다. 그런데 그 이전에 배당으로 받아간 돈이 1조7098억 원이다. 그리고 2007년 6월, 콜 옵션으로 인수한 지분을 블록 세일 방식으로 내다팔아 1조1918억 원을 챙겼다.

결국 론스타는 외환은행 투자로 2조1549억 원을 써서 7조3085억 원을 벌어들였다. 순수익은 5조1536억 원에 이른다. 론스타가 2006년부터 외환은행 매각을 서둘렀으나 6년 가까이 늦춰졌던 것을 생각하면 당초 계획했던 것보다 부족했겠지만 단일 거래 건으로는 기록적인 시세 차익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에서는 전직 부총리 등이 수천억 원을 사이드로 투자한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현실에서 론스타의 투자자는 완벽하게 베일에 가려져 있다.

실제로 2003년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 여러 명의 전직 부총리와 김앤장 고문들의 이름이 등장하지만 이들이 무슨 역할을 했는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고 처벌 받은 사람도 없다. 아버지 조지 부시 전 대통령과 박태준 전 포항제철 회장 등이 일련의 은행 매각 과정에 개입한 것으로 의심되지만 역시 제대로 밝혀진 바는 없다. 변양호 전 국장의 단독 작품으로 보기에는 맞춰지지 않는 퍼즐 조각이 여전히 많다는 이야기다.

실무 작업을 주도한 변양호 전 국장의 경우 고등학교 친구인 하종선 변호사에게 4174만 원 상당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으나 무죄로 풀려났다. 하종선 변호사는 로비 자금 명목으로 론스타에게 105만 달러를 받고 변양호 전 국장을 접촉한 것으로 확인됐다. 4174만 원은 수 조원이 오가는 이 사건의 사이즈와 비교하면 큰 금액이라고 할 수는 없다.

변 전 국장은 이밖에도 재정경제부를 그만 둔 뒤 보고펀드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외환은행에서 400억 원을 투자 받는 등 사후뇌물죄로 기소됐는데 역시 무죄 판결이 났다.

론스타코리아 대표 스티븐리와 칼라일코리아 대표 제이슨 리는 형제고, 칼라일아시아 대표를 지낸 김병주 MBK파트너스 대표는 박태준 전 총리의 사위다. 뉴브리지캐피털의 최대 주주 데이빗 본더만은 론스타의 공동 창업자다. 한미은행과 제일은행, 외환은행은 모두 매각 주간사가 모건스탠리였고 법률 대리인은 모두 김앤장이었다. 변양호 전 국장은 김은상의 고등학교 동창이고 김석동은 1년 선배다. 로비스트 박순풍은 외환은행 부행장 전용준과 고등학교 동창이다. 하종선은 변양호와 동창이고 스티븐 리와도 절친한 사이였다. ‘모두가 론스타의 사람들’이고 ‘론스타 게이트’가 아니라 ‘모피아 게이트’라고 불러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던 것도 이런 그들만의 네트워크가 사건의 본질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10. 론스타 불법 매각 사건의 본질과 불편한 진실.

외환은행 가격 협상을 하던 무렵, 스티븐 리(론스타코리아 대표)와 신재하(외환은행의 매각 주간사였던 모건스탠리 전무), 샤리하 치스티(론스타의 인수 자문사인 살로먼스미스바니의 어드바이저) 등이 노래방에서 ‘보헤미안 랩소디’를 부르며 여자를 끼고 노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은행을 팔려는 쪽과 사려는 쪽이 한 팀처럼 보인다. 내가 영화 시나리오를 썼다면 이 노래방 장면을 클라이맥스에 넣었을 것이다.

10인 비밀회의도 중요한 장면인데 영화에서는 빠졌다.

10인 대책회의의 참석자는 변양호와 재정경제부 은행제도과장 추경호,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국장 김석동, 은행감독과장 유재훈, 외환은행 행장 이강원과 부행장 이달용, 경영전략본부장 전용준, 우리 정부의 매각 자문을 맡았던 모건스탠리 전무 신재하, 청와대 행정관 주형환 등이다.

변양호는 “외환은행 증자에 실패하면(론스타를 대주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BIS(자기자본비율)이 5.42%까지 떨어질 수 있다”면서 “은행법 시행령 8조2항을 적용해 달라”고 김석동에게 요청한다. BIS 비율이 8% 밑으로 떨어지면 부실하다는 평가를 받는데 당시 외환은행의 BIS 비율은 10%가 넘는 상황이었다.

김석동은 “예외 승인을 적용하면 삼라만상이 다 해당된다”고 우려하면서도 “공식적으로 재경부에서 협조요청 공문을 보내달라”고 수락한다. 실제로 재경부는 다음날인 7월16일 금감위에 “외환은행 매각은 부실 금융기관 정리 등 특별한 사유에 해당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낸다. 재경부에서 금감위에 예외승인을 요청하고 다시 금감위가 재경부에 유권해석을 요청해 명분을 만드는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다. 문제의 팩스 5장은 이 비밀회의 이후 1주일 뒤에 발송됐다.

 

‘투기자본의 천국’을 쓰면서 확보했던 수만 페이지 분량의 수사 기록과 재판 기록, 정부 문건, 녹취록 등은 일관되게 말한다. 이들은 불법이란 걸 알고 있었다.

‘투기자본의 천국’의 결론 부분을 발췌해 인용해 본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을 종합하면 변양호 전 국장은 외환은행을 살리기 위해서 외환은행을 외국 자본에 팔아넘겨야 한다는 신념을 가졌던 확신범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그는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받아줬기 때문에 망하지 않았고 한국이 또 한 차례 외환위기에 직면하는 사태를 막을 수 있었다고 자신하고 있을 수도 있다.

다음은 2011년 12월, 김석동 전 국장의 국정감사 진술 가운데 일부다.

“당시에 외환은행을 부숴 버릴 건지, 그래서 수많은 피해자를 만들어야 될 건지 아니면 국내 한국은행을 비롯해서 모든 투자자가 증자를 거부하는 마당에 그렇게 해서라도 금융시장을 지켜야 했는지 그 선택의 문제지 않습니까? 저희도 제일 편한 것은 은행 망해버리면 아무도 책임 안 지고 편합니다. 당시에 외환은행 살리겠다고 나온 사람이 누가 있었습니까? 은행 직원들이 나오기를 했습니까, 은행 CEO들이 나오기를 했습니까? 유일하게 정부가 나서서 모든 것을 해봐도, 아무리 해보려고 그래도 안되는데 그걸 어떡하겠습니까? 결국 이렇게 시장을 구하고 정부가 이렇게 핍박받아야 되는지에 대해서는 정말 저는 슬픈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금융위원회는 오히려 론스타가 대주주 자격이 안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론스타 먹튀 논란이 불거지면서 비금융 주력자 문제는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 됐고 금융위원회는 어느 시점부터 론스타의 적극적인 동조자 또는 공모자였을 가능성이 크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팔고 나가게 만들어줘야 하는데 그러려면 2003년의 외환은행 인수가 합법이어야 한다는 데 이해관계가 일치했던 것이다.

이쯤 되면 다시 궁금해진다. 론스타가 속였나? 금융위원회가 속였나? 우리 정부가 론스타와 짜고 우리 국민들을 속였다면 우리는 과연 누구를 상대로 싸우고 있는 것일까?

여러 정황을 종합하면 금융감독위원회는 아무리 늦어도 2007년에는 론스타가 비금융 주력자라는 사실을 파악했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2003년 9월부터 의심을 했거나 알면서도 적당히 덮었을 가능성도 있다. 적어도 실무 부서에서는 충분히 검토도 했고 반대 의견도 제시했으나 묵살당한 것은 분명하다.

외환은행 불법 매각 사건 수사와 외환카드 주가 조작 사건 재판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외환은행 매각이 계속 무산된 뒤라 론스타가 비금융 주력자라는 사실이 최종 확인되면 매각을 허용 또는 방관할 게 아니라 론스타의 외환은행 지분을 전량 몰수하거나 매입 가격만 주고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상황이었다. 아마도 금융감독위원회 공무원들은 비금융 주력자 이슈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거나 어차피 론스타의 투자 내역은 확인할 수 없으니 문제가 안 될 거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만약 론스타가 대주주 자격이 안 된다는 사실을 늦게라도 알았다면 그때라도 주식 매각 명령을 내리고 내쫓았어야 했다. 그런데 금융위원회는 외환카드 주가조작 등의 재판이 남아있다는 이유로 매각 명령을 내리기는커녕 떠나겠다는 론스타의 발목을 잡았다. 외환카드 사건과 별개로 이미 론스타가 산업자본이라는 사실이 확인됐고 당장이라도 퇴출시킬 수 있었지만 한국 정부는 론스타가 떠날까봐 안절부절하는 것처럼 비춰졌다.

론스타는 알았을 것이다. 세계 어디에서도 불가능하지만 한국에서 사모펀드가 은행을 인수하려면 변양호를 통하면 된다는 사실을. 변양호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변양호를 움직이면 시스템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칼라일이 한미은행을 인수할 때도, 뉴브리지가 제일은행을 인수할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지루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영화와 달리 현실에서는 악당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블랙머니’는 시스템의 문제를 폭로하기 보다는 손쉽게 음모론으로 흘렀다.

영화에서는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노들과 정의로운 열혈 검사의 대립 구도를 만들었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서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판단을 미루고 실수를 은폐하기에 급급했던 무능한 공무원들이 일을 키웠다. 이들이 작당해서 외환은행을 팔아 먹었다기 보다는 아는 사람 밀어주고 당겨주는 그들만의 이너써클, 검은 머리 외국인들과 손잡은 기득권 네트워크에 놀아났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외자 유치에 목을 맸던 시절이니 지금의 가치 판단으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 많다. 악당을 상정하고 음모론으로 내달리면 차라리 마음이 편하겠지만 실제로는 한국 정부의 귀책이 없다고 보기 어렵다.

IMF와 굴욕적인 협상을 하고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명분으로 신자유주의 구조 개혁을 밀어붙이면서 외국 자본 유치에 목을 맸던 그 시절. 이제 막 IMF를 졸업했는데 다시 금융 위기를 맞기 보다는 론스타가 내민 달콤한 달러를 받아들이고 약간의 불법은 묵인해도 된다는 오케이 사인을 누가 줬는지 늦게라도 밝혀야 한다. 약간의 불법이 아니라 법의 근간을 흔들고 금융 감독 정책과 정부의 시스템을 농락한 심각한 범죄였다. 한국 정부와 법원이 이를 묵인하는 순간 우리는 론스타에게 책임을 묻기 어렵게 됐다.

이게 나라를 살리는 길이라고 믿었던 모피아 관료들과 합법적으로 눈 먼 돈을 쓸어 담는 검은 머리 외국인들, 판단을 내려야 할 때 경제 논리에 물러섰던 무능한 정치인들, 원칙도 철학도 없었던 IMF 모범생 국가가 빠진 함정이었다.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 뿐만 아니라 청와대 행정관까지 함께 한 자리에서 공공연하게 ‘도장 값’이 논의됐고 이들은 명백히 불법이란 걸 알면서도 매각을 강행했다. ‘부실 금융기관 정리 등 특별한 사유’라는 예외 조항을 끌어들였지만 론스타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 법원이 변양호를 처벌하지 않고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변양호 뿐만 아니라 론스타도 면죄부를 받게 됐다. 인수 과정에 불법이 없었다는 결론이 나온 만큼 한국 정부는 론스타가 불법으로 외환은행을 인수했다고 주장할 수 없게 됐고 외환은행 매각을 고의로 지연시킨 데 대한 명분을 잃게 된 것이다.

론스타의 ISD 소송과 별개로 한국 정부는 이 사건을 다시 조사해야 한다. 미국의 7대 대통령 앤드류 잭슨이 말한 것처럼 은행은 군대보다 무서운 무기다. 그래서 은행이 부실하면 공적 자금을 투입해서 살리고 엄격하게 대주주 자격 요건을 규정하고 관리·감독한다. 이 사건은 단순히 은행 하나가 팔려나간 사건이 아니고 재정경제부 국장의 개인적인 일탈로 볼 문제도 아니다. 변양호와 하종선, 엘리어트 박, 그 뒤의 김앤장, 모건스탠리, 씨티그룹, 그리고 모피아 관료들과 검은 머리 외국인들, 그들만의 이너서클에서 벌어지는 담합과 결탁. 한국 사회는 한 번도 이 사건을 제대로 반성하거나 평가하지 않았다.

이제라도 한국 정부는 2003년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 치명적인 불법 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론스타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론스타가 대주주 자격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격을 박탈하지 않았고 국민들 눈치를 보느라 질질 끌면서 5조 원 소송의 빌미를 줬다는 사실을 고백해야 한다. 그래야 문제가 풀리고 그래야 이길 수 있다.

 

(다섯 줄 평가. 조진웅과 이하늬가 살린 영화라고 본다. 조진웅이 아니었으면 마지막 장면은 정말 손발이 오그라들었을 텐데, 캐릭터로 밀고 나갔다. 이하늬의 변절이 오히려 이 영화의 주제와 맞닿아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만의 이너 써클과 기득권 동맹. 우리 편인줄 알았는데 우리 편이더라는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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