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이 “투기와 투자는 다르지 않다”며 장관 인사 파동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한경은 29일 1면 <투자와 투기 간격은 1mm>에서 “부동산 투기와 투자는 학문적으로 구분하기 어렵다”며 “불법 탈법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지만 부동산이 많다는 사실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곤란하다”는 김경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의 말을 인용했다. 한경은 또 국세청 관계자의 말을 인용, “정당한 자금으로 부동산을 사고 팔고 또 세금을 제대로 냈을 경우에는 투기 혐의자로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한경의 주장에 따르면 투기와 투자는 결국 차이가 없고 정당한 절차를 밟고 세금을 제대로 냈다면 투기나 투자나 처벌할 수 없다는 결론이 된다. 한경은 “(미국의 경우)부동산이 아무리 많아도 적법한 절차에 따른 것이라면 크게 문제 삼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한경은 장관들이 부동산 투기를 했다고 한들 그게 왜 문제되느냐고 주장한다. 투기와 투자가 무슨 차이냐는 반문에 우리 사회는 제대로 된 반박을 내놓지 못한다. 다만 국민들이 감정적으로 반발하기 때문에, 그리고 이들이 집 없는 서민들을 이해하고 대변할 수 없을 거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부동산을 투자 대상으로 보고 부동산을 시장에 맡겨두라고 주장해 왔던 보수·경제지들이 이들 부동산 부자들은 두둔하고 나선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한경이 차라리 솔직하다면 보수 성향의 일간지들은 교묘하게 논점을 피해간다.
특히 중앙일보는 “성직자를 공직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면 “도덕과 경력, 재산에 하자가 있어도 장관직 수행을 위협할 정도가 아니라면 그 사람의 능력을 믿고 일을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고 조선일보는 “개인의 윤리적 잣대, 사덕의 잣대만으로는 올바른 일꾼을 가려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일부 언론은 이번 인사 파동을 정치적 공방으로 몰아가기도 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 등 진보 성향의 언론 역시 이런 맥락에서 솔직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언론이 재산이 많다는 것을 부각시켜 감정적인 반발을 끌어냈고 우리 사회에서 이런 공격은 아직 유효하다. 특히 “땅을 사랑한다”느니 “축하 선물로 오피스텔을 받았다”느니 하는 궁색한 변명은 공직자들의 다른 어떤 비리보다 더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차라리 “내 돈 내고 땅 좀 샀기로서니 뭐가 문제냐”고 말하고 싶었겠지만 에둘러 말하고 엉뚱한 소리를 한다. 이에 대한 대중의 비난은 다분히 감정적이고 그래서 부자들은 이를 수용하지 못한다.
보수·경제지들과 부동산 부자들은 “투기와 투자가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부동산 투기 뿐만 아니라 투자도 문제라고, 애초에 부동산을 돈 벌이 수단으로 보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하는 목소리는 없다. 부동산 투자로 부자가 된 사람들을 비난하고 이에 대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는 쉽다. 그러나 정작 부동산 투자 자체를 비판하기는 쉽지 않다. 부동산 부자들은 소수지만 부동산 부자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훨씬 많기 때문이다. 경향신문과 한겨레 입장에서도 이 이중적 욕망을 비판하는 것은 상당수의 독자들과 거리를 두는 일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경향신문과 한겨레 역시 적당히 대중을 자극하는 선까지만 나간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개혁이 좌초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누구나 부동산 부자들을 비난하지만 결국 그들처럼 부동산 부자가 되고 싶어하는 모순된 욕망, 그래서 종합부동산세를 내지 않으고 대부분 평생 가도 낼 일이 없을 가능성이 크지만 이에 반발하고 정부의 시장 개입을 비판하고 거품이 심각하다는 걸 알면서도 거품이 꺼지지 않기를 바라고 기꺼이 이에 동참하는 다분히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한경의 주장처럼 결국 투기와 투자는 1mm 차이 밖에 안 된다. 한경은 투기든 투자든 이게 왜 문제 되느냐고 반문한다. 부자 장관들에 대한 반쪽짜리 비판은 우리 사회의 이중적 욕망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불법 행위가 있다면 당연히 문제되겠지만, 논쟁의 핵심은 합법적인 투기 또는 투자를 어떻게 볼 것이냐다. 합법적인 투기 또는 투자를 대중은 왜 용납할 수 없는 것일까.
잘보고 갑니다.
와닿네요 제게서 뭔가 부족했던 논지를 좀 끌어다 쓰도록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