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돌발영상을 둘러싼 소동은 이명박 정부의 실체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단면이다.
소동의 전말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7일 오후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이 떡값 명단을 발표하기 1시간 전이었다. 청와대 기자실에서 몇몇 방송기자들이 떡값 명단에 대한 청와대의 입장을 밝혀줄 걸 요청했고 이동관 대변인이 사제단의 발표 이후로 보도를 유예(엠바고)하는 것을 전제로 성명을 발표했다. “조사 결과 거론된 분들이 떡값을 받았다는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는 것.
아직 발표하지도 않은 명단에 대해 입장을 밝혀줄 것을 요청하는 방송기자들도 어처구니가 없지만 뻔뻔하게 아무렇게나 둘러대고 엠바고까지 거는 청와대의 몰지각한 태도는 그야말로 한심해서 할 말을 잃을 정도다.
YTN은 이를 편집해 돌발영상으로 내보냈다가 청와대의 요청을 받고 삭제했다. YTN은 청와대의 요청이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문제의 동영상은 엠바고를 어긴 것으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삭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동영상은 YTN은 물론이고 주요 포털 사이트에 모두 삭제되고 없는 상태다. 다행히도 미국의 유튜브에 복사본이 올라있다.
검찰이나 경찰은 수사에 지장이 있을 것을 우려해 사건이 종결될 때까지 엠바고를 거는 경우가 많다. 정부 기관이나 일반 기업들도 특정 언론에만 정보가 미리 새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한 군데만 나가면 다른 언론이 아예 무시하고 기사를 안 써줄지도 모르기 때문에) 엠바고를 걸어 보도자료를 뿌리는 경우가 많다. 기자들도 괜히 다른데 다 쓰는데 혼자만 물을 먹지 않을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민감한 현안이 아닌 경우 엠바고 준칙을 최대한 따른다. 엠바고를 어겨서 특정 기자실에 출입 정지를 당하는 일도 가끔 벌어진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사안이 좀 다르다. 엠바고라기 보다는 청와대 대변인실과 출입 기자들의 팩트 왜곡이고 담합이라고 보는 게 맞다. 이동관 대변인의 반박 성명은 사제단이 명단을 발표하기도 전에 나왔다. 애초에 조사도 하지 않고 근거가 없다고 발표를 한 셈인데 그 자리에 있었던 수많은 기자들은 아무런 문제제기도 하지 않았다.
주목할 부분은 반박 성명의 시점 보다는 청와대의 태도다. 아마 사제단의 발표 이후에 성명을 발표했더라도 (아무런 조사도 없이) “조사 결과 거론된 분들이 떡값을 받았다는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얼렁설렁 주워 넘겼을 것이다. 애초에 사제단과 국민들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그까짓 명단 발표, 근거 없다고 하면 되지.” 청와대는 이미 답변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새 정부 내각의 핵심 인사들이 사상 최대의 뇌물 스캔들에 연루돼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황에서 너무나도 무책임하고 뻔뻔한 태도다.
정말 놀라운 것은 대부분의 언론이 이에 일제히 침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제단의 발표에 대한 입장을 사전에 밝혀줄 것을 요청하고 청와대가 발표 이후에 인용할 것을 전제로 거짓말을 늘어놓았을 때 그 자리에 있었던 기자들은 모두 공범이 됐다. 충분히 기사거리가 될만한 이슈지만 모두가 침묵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암묵적인 엠바고를 형성하고 있는 상황이다.
몇가지 추가.
– YTN은 3일간 청와대 기자실 출입 정지 처분을 받았다.
– 이날 성명은 백그라운드 브리핑이었다고. 방송 기자들 편의와 마감시간을 고려해 이런 식의 사전 멘트를 요청하는 일이 일상화 돼 있다는 이야기.
– 출입 정지 처분의 이유는 엠바고 파기가 아니라 실명 비 보도 원칙을 깼기 때문. 애초에 이런 성명은 ‘청와대 관계자’의 멘트로 인용하는 게 관행인데 이를 어겼다는 이유.
– YTN에 따르면 청와대 출입 기자들은 이미 사제단의 명단을 오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한다. 청와대 역시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고 발언 시점에 논란이 있을 뿐 “조사 결과 거론된 분들이 떡값을 받았다는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는 성명에는 문제가 없다는 주장.
궁금한 대목.
– 명단은 어떻게 사전 유출된 것일까.
흥미로운 사실.
– (사전 유출된 것이 맞다면)사제단의 명단이 사전 유출돼 청와대에 흘러들어가고 청와대의 사전 브리핑이 다시 사제단에 흘러들어가고. 사제단이나 청와대나 숨길 수 없는 정보를 숨기고 언론을 통해 그 효과를 극대화하려고 한다.
제목만 봐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글입니다.
절대다수의 국민들은 자신들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언론통제에 대해
한 푼의 위기감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답답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