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이 되고 있는 최시중의 여론조사 결과 유출 관련 문건을 받아서 읽어봤습니다. 최씨는 부인하고 있지만 이 문건에는 분명히 “최씨가 공표가 금지된 여론조사 결과를 알려줬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보다 더 흥미를 끄는 건 최씨와 관련 동석자들의 여러 발언인데요. 미국의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시각을 엿볼 수도 있고요. 미국의 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그것도 이렇게 공식적으로 미국 정부에 보고되는 정보라인 관계자에게 이런 발언이 오가고 또 그게 유의미한 사실로 받아들여진다는 것 자체가 놀랍습니다. 이게 이명박 정부의 실체라면 정말 놀랄 일이죠.


이명박 대통령과 친분이 두터울 수도 있고 또 재산이 많을 수도 있습니다. 합법적이라면 부동산 투기만으로 문제를 삼기 어려운 부분도 있고요. 그렇지만 이 정도 도덕성과 직업 윤리를 가진 사람이 방송통신위원회라는 막강한 권력을 쥐고 흔들어도 괜찮은 것일까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내정자의 여론조사 결과 유출 의혹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KBS가 5일 밤 9시 뉴스에서 1997년 12월 주한 미국 대사관이 미국 국무부로 보낸 3급 비밀 문서를 공개하면서부터다. 이 문서에는 당시 갤럽회장이었던 최 내정자가 그해 대선 직전인 12월 10일 실시한 대선후보 여론조사 결과를 스티븐 보스워스 당시 미국 대사에게 알려줬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문제는 당시 공직 선거법에 따라 선거를 22일 앞둔 11월 26일부터 선거 당일인 12월18일까지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할 수 없도록 돼 있다는 것이다. 최 내정자가 보스워스 전 대사를 만난 때는 여론조사를 실시한 이틀 뒤인 12월 12일이었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에 그 경위와 결과를 공표하거나 인용, 보도하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4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돼 있다.

미디어오늘이 7일 KBS로부터 입수한 A4용지 7페이지 분량의 이 문건에 따르면 “최 회장이 10일 실시했던 가장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를 12일에 알려줬다”고 명시돼 있다. 이 문건에 따르면 최 내정자는 보스워스 대사 등과 점심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김대중 후보와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졌다는 사실을 공개한 것으로 적혀 있다.

최 내정자는 이와 관련, KBS와 한겨레 등과의 인터뷰에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 전에 한 여론조사와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일반적인 수준에서 이야기를 했을 것”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그러나 이 문건에는 “11월27일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된 이후 여론조사는 가능하지만 공표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면서 “최 회장이 알려준 내용은 12월10일에 실시한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Choi’s lastest poll, taken on December 10)”라는 사실이 정확히 명시돼 있다.

이날 오찬에는 최 내정자와 함께 ‘언론인 박권상’, ‘갤럽 여론조사팀장인 정아무개’ 등이 함께 한 것으로 적혀있다. 이 자리에서 정씨는 “김대중 후보는 위험한 친 평양정책을 추진할 공산당 지지자(He is a communist sympahthizer who once in power would promote dangerously pro-Pyongyang policies”라고 한 말도 기록돼 있다.

이밖에도 정씨 등은 “이회창 후보가 경상도 지역에서 일주일 안에 20%를 추가로 얻는다면 승리할 수도 있다”거나 “전라도 지역 유권자들은 이번 선거에서는 이길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는 등의 구체적인 판세 분석까지 했다. 문건에는 “정씨는 김대중 후보가 이기지 못할 경우 전라도 지역에서 폭동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보스워스 전 대사는 “한국에서 여론조사는 부정확하기로 악명이 높다”고 지적하고 “갤럽은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민간 여론조사기관으로 이번 조사결과는 다른 여론조사들이 보여준 3~6% 보다 대체로 더 높게 나왔다”고 적고 있다.

최 내정자는 완강하게 사실을 부인하고 있지만 문건에 따르면 최 내정자의 여론조사 결과 유출 의혹은 기정사실로 드러났다. 공직선거법의 공소시효 6개월은 이미 소멸됐지만 여론조사기관의 대표가 외부인에게 공표가 금지된 여론조사결과를 유출한 행위는 고위 공직 후보자의 도덕성과 자질에 심각한 흠결이 될 수 있다. 갤럽 사규에도 내부 직원이 조사 자료를 무단으로 외부에 유출할 경우 최고 파면까지 받을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이날 자리에 함께 한 것으로 알려진 박권상 전KBS 사장은 미디어오늘과의 전화통화에서 “당시 미 대사관 쪽에 친분이 있는 이가 있어 종종 만나 현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것은 맞다”며 “그러나 10년 전일이고 내 나이가 70이 넘었기 때문에 기억이 희미하다”고 말했다.

언론노조는 최 내정자의 여론조사 결과 유출 의혹과 관련, “한끼 밥과 돈 몇 푼에 양심을 파는 인물이 어떻게 방송 독립을 지킬 수 있겠냐”면서 “최씨는 지난 날을 속죄하고 자신 사퇴해야 하며 대통령도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Similar Posts

One Comment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