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법과 질서만 제대로 지켜주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 올라간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법무부 업무보고 자리에서다. 사실 이 말은 새 정부 성장 정책의 핵심 이데올로기 가운데 하나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10일 내놓은 ‘7% 성장을 위한 세부 실천계획’에 따르면 4%의 잠재성장률에 더해 규제개혁과 감세, 정부 혁신과 인프라 확충, 그리고 법·질서 준수 등으로 성장률을 높이겠다는 계획이 포함돼 있다.


흥미로운 것은 대부분 언론이 이 대통령의 이 말을 아무런 비판없이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법과 질서만 제대로 지켜도 성장률이 올라간다? 그만큼 우리나라가 무법천지라는 말일까. 특히 언론의 비판은 노조의 불법 파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우리나라 준법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가운데 꼴찌에 가깝다는 보도도 나왔다. 파업 손실을 둘러싼 과장된 보도도 최근 부쩍 늘어났다.

먼저 이 대통령이 인용한 수치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해 1월 펴낸 ‘법·질서 준수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나온 것이다. 차문중 연구위원은 이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법·질서의 정비 및 준수 정도가 30개 OECD 나라 가운데 27위로 최하위권에 머물렀으며 이는 우리 경제의 효율성을 저해하고 성장 잠재력을 심각하게 훼손한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차 연구위원은 국가 위험을 분석하는 기관인 폴리티컬리스크서비스그룹(PRSG)의 2005년 자료를 인용하고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1991~2000년까지 10년 동안 OECD의 법·질서 지수 평균은 5.5인 반면 우리나라는 4.4에 그쳤다. 차 연구위원은 이 자료를 근거로 법·질서 지수와 1인당 국민소득(GNI)의 상관관계를 분석하고 선진국일수록 법·질서 준수 정도가 높다는 가정을 끌어낸다.

차 연구위원은 “다른 조건이 동일할 경우 1991~2000년까지 10년 동안 법·질서 지수가 한 단위 높은 나라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0.9%포인트 높았던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이를 근거로 “우리나라가 OECD 평균 법․질서 수준을 유지했을 경우 연 평균 0.99%포인트의 경제 성장을 추가적으로 이룰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결론을 끌어낸다. 잘 사는 나라들 법․질서 지수가 높았으니 우리도 법․질서만 지키면 잘 살게 될 거라는 단순한 논리다.

애초에 “다른 조건이 동일할 경우”라는 전제부터 문제가 있고 법과 질서만 제대로 지키면 다른 선진국처럼 성장률이 올라갈 거라는 가정도 논리적으로 문제가 많다. 게다가 PRSG의 국가 위험 등급은 법·질서 뿐만 아니라 정치적 안정과 민주주의 발달 정도 등 12개 항목으로 이뤄져 있다. 최 연구위원은 다른 항목을 모두 무시하고 입맛대로 필요한 항목만 골라서 임의로 가공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게다가 문제는 차 연구위원이 인용한 PRSG의 자료가 2005년 자료라는 것. 차 연구원은 1991~2000년 데이터를 비교해 우리나라 법․질서 지수가 4.4에 그쳐 OECD 꼴찌 수준이라고 지적했지만 2007년 자료에는 우리나라 법․질서 지수가 5.0으로 나와 있다. 6.0만점에 5.0이면 세계 공동 11위로 결코 낮다고 할 수 없는 수준이다. 애초에 언론 보도는 기본 전제부터 잘못돼 있다는 이야기다.

KDI는 2006년에도 불법 집회와 시위로 인한 사회 경제적 비용이 12조3190억원에 이른다는 보고서를 내놓은 바 있다. KDI는 생산 손실과 경찰력 관리 비용, 교통 지체, 집회 장소 부근 사업체의 영업 및 생산 손실, 일반 국민들의 심리적 부담감 등을 모두 반영했지만 모든 집회와 시위를 불법으로 간주한데다 정작 집회와 시위의 긍정적인 측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아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KDI는 심지어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한 차례 불법 시위를 벌일 경우 776억원의 손실이 생긴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구체적인 데이터가 없는 다분히 정성적인 주장에 지나지 않았지만 상당수 언론이 이를 최근까지 즐겨 인용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떼 쓰는 소수’들은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의 강자(强者)”라며 “학교뿐만 아니라 산업현장, 문화계, 시민 사회의 일부 소수파들이 ‘떼법’과 ‘정서법’으로 경쟁력을 허물고 있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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