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원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이 26일 전원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다. 공정위 전원회의는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비롯해 상임위원 3명, 비상임위원 4명 등 9명의 위원들이 기업의 불공정거래 혐의에 대해 위법 여부를 따지고 제재 수위를 정하는 자리다. 부위원장의 불참은 판사가 재판에 불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서 부위원장이 전원회의에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은 하필이면 이날 회의 안건이 시중 은행들 수수료 담합 관련 사건이었고 이들의 법률 대리인이 김앤장법률사무소였기 때문. 김앤장 출신 서 부위원장의 불참은 그래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서 부위원장은 임명 직후 김앤장과 관련된 안건의 회의에는 참석하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문제는 단순히 전원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것만으로 공정위가 서 부위원장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느냐는 것. 김앤장은 공정위 관련 사건을 가장 많이 맡는 법률회사다. 서 부위원장은 그 모든 사건들의 전원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그 배후에서 김앤장과 그 의뢰인들을 위해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줄 수 있을까.
28일 공정위 업무보고는 이런 우려를 더욱 가중시킨다. 공정위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의 돌격대를 자처하고 나섰다. 이명박 정부는 인수위 시절 공정위 폐지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기도 했다. 살아남은 영혼 없는 공정위 공무원들이 기꺼이 공정위 고유 업무를 뒤집는 계획을 쏟아내고 김앤장에서 기업 입장을 대변해 공정위와 맞섰던 서 부위원장이 변화된 공정위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공정위는 상호출자 및 채무보증제한 기업지단 지정 기준을 2조원에서 5조원까지 상향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지주회사 요건도 크게 완화할 계획이다. 서 부위원장은 업무보고 후 브리핑에서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공시제도를 강화하고 순환출자 현황과 계열사간 내부거래 정보도 포함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 부위원장은 또 상호출자금지제도와 지주회사 전환 요건, 채무보증제한제도, M&A 신고제도 등에 대해서도 “존속 타당성을 지속적으로 검토할 것이고, 빠른 시일 내에 결론을 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규제대상 대기업 집단은 현행 79개에서 41개로 줄어들게 된다. 현대산업개발과 동양화학, 한솔 등 21개 그룹이 상호출자와 채무보증 금지 대상에서 벗어나게 된다. 지주회사에 대한 부채비율 200% 제한 및 비계열회사 주식 5% 이상 보유금지도 폐지된다. 손자회사의 증손회사 소유제한도 완화돼 현재는 지분율이 100%인 경우에만 증손회사가 허용되지만 30% 이상 공동출자법인이면 허용된다.
이런 규제 완화는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의 요구를 전폭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특히 출총제 폐지나 금산분리 완화 등은 삼성이나 현대자동차 그룹 등의 지배구조 승계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돼 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명분을 내걸고 있지만 정작 핵심은 재벌 총수일가의 지배력 강화에 있다.
공정위는 상호출자제한제도와 관련, “기업의 저항이 크지 않고 실제 위반 사례도 많지 않다”고 밝혔으면서도 굳이 규제 완화를 단행했고 정작 순환출자에 대한 대안은 내놓지 않았다. 또 채무보증제한제도와 관련해서도 “채무 보증 관행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으면서도 규제 대상을 대폭 축소했다. 공정위는 또 “직권조사는 법위반 혐의가 크고 소비자 피해 등이 큰 경우에만 실시하고, 현장조사는 서면 조사로 부족한 경우에만 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