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 홍콩법인인 이랜드패션차이나홀딩스(衣念時裝中國)가 홍콩 증시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이 회사의 100% 주주인 이랜드월드는 당초 7일까지 공모 청약을 끝내고 오는 16일 공식 상장해 4천억원 가량을 조달할 계획이었지만 공모 가격이 기대에 못 미치자 일단 6개월 정도 연기하기로 했다.


비정규직 부당 해고에 맞서 1년 가까이 파업을 벌여온 이랜드 일반노조와 뉴코아 노조는 홍콩 원정투쟁에 나섰다. 원정투쟁단은 증시 상장 업무를 대행하는 UBS와 이랜드 홍콩 지사 등을 항의 방문하고 삼보일배와 단식농성을 강행해 왔다. 원정투쟁단의 요구는 명확하다. 부당하게 해고된 1천여명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을 복직시키고 정규직으로 전환해 달라는 것. 이들의 집회에는 홍콩노동조합연맹과 국제사무직노동자네트워크 등이 참석했다.

홍콩 언론도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둥펑르바오와 홍콩이코노믹타임 등 홍콩 언론은 이들의 입국 배경과 파업 경위 등에 대해 자세한 기사를 내보냈다. 원정투쟁단은 인터뷰에서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이런 부도덕한 기업이 증시에 상장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국내 언론은 이들의 원정투쟁을 기업 발목잡기로 몰아가는 분위기다. 매일경제는 7일 “자금 조달을 위한 기업공개마저 노조가 방해하는 것은 도를 넘어선 것”이라는 이랜드 관계자의 말을 인용했다. 파업 1년이 다 돼 가는 상황에서 대부분 언론은 아예 관심조차 없거나 일방적으로 회사측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노조는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미 100억원에 이르는 손해배상이 청구된 상태고 회사측은 아예 교섭조차 거부하고 있다. 상당수 조합원들이 생계유지 조차도 곤란한 상황에서 벼랑끝 투쟁을 벌이고 있지만 정부는 노사자율에 맡긴다며 한발 물러나 있다. 김경욱 노조 위원장은 한겨레 인터뷰에서 “노조가 죽거나 회사가 죽어야 끝날 것”이라는 답답한 심경도 털어놓기도 했다.

이랜드 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는 이랜드월드는 자사 지분이 53.2%에 박성수 회장이 33.6%, 부인인 곽숙재씨가 6.5%를 소유하고 있다. 이 회사는 이랜드와 뉴코아, 이랜드개발, 프란시아, 이랜드시스템스, 데코 등의 최대주주고 뉴코아가 킴스클럽마트와 이랜드리테일, 이랜드레저비스 등을 지배하는 구조다. 비정규직 대량 해고로 논란의 대상이 됐던 홈에버(옛 한국까르푸)가 바로 이랜드리테일이다.

주목할 부분은 이랜드그룹 계열사들의 지난해 실적이 매우 좋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랜드리테일은 무려 1939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고 뉴코아가 916억원, 이랜드가 218억원, 네티션닷컴이 20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한국기업평가는 최근 신용평가 보고서에서 “이랜드그룹의 재무적 부담이 과중한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이랜드리테일의 부실한 실적은 2006년 한국까르푸를 1조7100억원에 사들이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많은 외부 자금을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한기평 집계에 따르면 2006년 말 기준으로 이랜드 그룹의 4개 주력 계열사인 이랜드월드와 이랜드, 뉴코아, 이랜드리테일의 단순합산 총차입금 및 순차입금 규모는 각각 2조4442억원과 2조1202억원로 불어났다. 만약 홈에버의 실적이 올해 크게 개선되지 않는다면 그룹 전체가 부실화할 우려도 있다.

이랜드패션차이나홀딩스의 홍콩 증시 상장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랜드패션차이나홀딩스를 비롯해 이랜드그룹의 해외 법인은 대부분 이랜드월드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이 주식시장에 상장하면 이랜드월드는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게 된다. 문제는 이렇게 벌어들인 이익이 고스란히 이랜드월드의 부채 상환에 흘러들어가고 결과적으로 지주회사 이랜드월드의 최대주주인 박 회장 부부의 몫이 된다는 것이다.

이랜드 그룹 계열사들은 여러 차례 대형 인수합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력 계열사들에 부채를 나누어 떠넘겼고 그 결과 그룹 전체가 막대한 이자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이랜드리테일만 해도 지난해 1939억원의 당기순손실 가운데 이자비용이 1016억원에 이른다. 7개 계열사의 이자비용 합계는 무려 2100억원에 이른다.

이랜드그룹이 2006년 4월, 1조7500억원 규모의 한국까르푸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들인 돈은 3천억원 밖에 안 됐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뉴코아가 2천억원, 이랜드월드가 1천억원을 대고 36.3%와 14.6%의 지분을 확보했고 나머지 지분은 한국개발금융 등 전략적 투자자들에게 쪼게 팔았다. 부족한 1조500억원은 모두 부채로 해결했다. 2005년 7월 이랜드월드가 킴스클럽마트(옛 해태유통)을 인수할 때도 주식 382억원어치를 사들이고 회사채 254억원어치를 함께 인수하는 방법으로 비용 부담을 덜었다.

이랜드그룹은 부채 부담을 덜어내기 위해 주력 계열사들의 유상증자와 함께 자회사들의 해외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이랜드리테일은 최근 대주주인 이랜드월드 등의 지분과 홈에버 매장 등을 담보로 1조원을 추가 대출하기도 했다. 머니투데이에 따르면 하나은행 등 채권단은 대출 조건으로 영업실적이 꾸준히 흑자를 유지해야 하고 재무상황이 크게 악화될 경우 채권단 주도하에 인수합병을 추진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만약 홈에버의 경영상황이 크게 개선되지 않는다면 자칫 다시 매물로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편 홈에버 인수에 참여했던 컨소시엄 가운데 일부는 조기 상환을 요구했다. 이 컨소시엄은 우선주와 전환사채에 각각 1700억원과 3400억원을 투자해 1314억원과 4451억원을 받게 된다. 수익률은 13% 수준, 2년의 투자기간을 감안하면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투자 위험이 커져 발을 빼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가뜩이나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이랜드그룹에 또 하나의 악재가 터진 셈이다.

이랜드월그룹은 이번에 추가로 끌어들인 1조원의 차입금 만기가 도래하는 2011년 이전에 뉴코아와 홈에버를 합병해 상장하고 늘어난 자기자본으로 차입금을 상환한다는 계획이지만 현재로서는 쉽지 않은 시나리오다. 당장 6월에 채권 만기가 돌아오고 상반기 신용등급 평가에서 투기등급으로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이랜드그룹 주요 계열사들의 신용등급은 BBB-. 여기에서 한 등급만 떨어지면 바로 투기등급이 된다.

결국 이랜드그룹의 의욕적인 인수합병 행진이 최종 성공하려면 그룹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이랜드리테일(홈에버)의 흑자 전환이 필수적이라는 이야기다. 홈에버가 사회적 지탄을 무릅쓰고 직원들에게 가혹한 노동조건을 강요하는 것도 결국 이런 무리한 인수합병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머니게임에 발목이 잡힌 박 회장으로서는 살아남기 위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셈이다.

이남신 이랜드 일반노조 부위원장은 “이랜드그룹은 무리한 인수합병을 계속하면서 투기자본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개별 계열사들은 충분히 생존 여력이 있었는데 대규모 부채를 끌어들여 계열사로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그룹 전체가 동반 부실화됐다는 이야기다. 이 부위원장은 “과연 이런 문어발식 확장 전략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고 반문한다.

이 부위원장은 “그룹 생존전략 차원에서라도 박 회장이 노조와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재무적 위험 뿐만 아니라 노사 갈등도 심각한 투자 악재가 된다. 향후 유상증자나 해외 상장 등을 통해 추가 투자를 끌어내려면 노사관계를 정상화시키고 대외 이미지를 개선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이야기다.

Similar Posts

4 Comments

  1. 국제상사 부분은 잘못되어 있네요. 지금 이랜드개발은 국제상사를 가지고 있지 않죠. 국제상사는 몇년의 분쟁끝에 결국 E1쪽으로 넘어갔잖아요. 작년에 넘겼던가 소각했던가 듣긴 했던데 말이죠. 아무튼 이랜드개발은 국제상사 지분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국제상사도 ls네트웍스로 이름이 바뀌었더라고요.

  2. 근데 홈에버는 꼭 노사문제가 아니더라도 어정쩡하긴 하더라고요.
    뭐 노사문제이후 서비스 질은 더 악화된것도 문제고, 서비스 지연도 심각해진건 사실이지만. 그것보다도.. 이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할인점과 아울렛의 통합 매장을 표방했던 홈에버는 패션 판매는 점점 특색없어지고, 가장 중요한 식료품은 처음 홈에버 나왔을때보다 가짓수도 줄고.. 메리트도 없어지고.

    마치 2000년대 초반 킴스클럽을 보는것 같아요.

  3. 아 이런 문제가 있었군요. 기업주가 부도덕하거나 고집이 세서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군요. 자본주의 특히 주식회사들은 너무 무섭습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