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이외의 대안은 가능한가. 23일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연맹 대회의실에서 열린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 주최 국제학술대회에서는 국내 최초로 대안 세계화 운동에 대한 발전적인 논의가 진행됐다. 그동안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문제점에 대한 논의는 쏟아졌지만 정작 그 대안에 대한 논의는 없었고 반 세계화 운동의 논의 대부분이 위로부터의 정책 개발을 통한 관료적 해법이었다면 이날 논의는 좀 더 적극적으로 아래로부터의 진정한 세계화를 모색한다는 점에서 한층 발전된 것이었다.


정성진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안 세계화 운동은 단지 ‘세계화에 대한 불만’의 돌발적 표출을 넘어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대체하는 ‘대항 헤게모니’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사적 의의를 갖는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특히 “대안 세계화 운동의 주요 이론가들이 오늘날 세계화의 특징 및 문제점을 상품화 혹은 상품 물신성에서 찾고 있는데 상품화와 상품 물신성의 핵심이 강탈에 의한 축적, 즉 본원적 축적이라는 점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의 개념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특히 대안 세계화 운동의 주류 이론으로 자리잡았지만 국가 권력의 문제를 회피하고 있는 자율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정 교수는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의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말을 인용, “기존의 국가 권력에 도전하고 이를 분쇄하지 않고서는 근본적인 사회 변혁은 불가능하다”는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입장을 지지했다. “자본주의 국가는 사회적 관계의 물신화된 형태인 동시에 세계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운동을 가로막는 엄혹한 물질적 현실”로 “노동자 계급과의 대결이 불가피하다”는 이야기다.

장시복 교수는 “자율주의는 한때 21세기 공산당 선언이라는 칭송을 받으면서 패배주의와 방어주의에 빠져있는 좌파에게 과감한 낙관론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변화의 구체적 현실에서 너무 먼 궤도를 선회하고 있어 별다른 볼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자율주의를 주창한 안토니오 네그리 등은 노동운동과 좌파정당을 부정하면서 정작 제국에 대항하는 이른바 ‘다중’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빠뜨리고 있다. 절대적 민주주의의 개념을 제안하고 있지만 역시 다중과 민주주의 사이의 매개가 없다는 점에서 불완전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대안 세계화 운동의 한 분파로서의 지역주의의 가능성도 제기됐다. 김창근 교수는 1980년대 IMF(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 등 세계 기구들이 개발도상국에 강요한 구조조정 과정을 ‘재식민지화’ 과정으로 간주한다. “2차 세계대전 이전 신식민지 또는 반식민지 상태에 처해 있던 개발도상국들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정치적 독립을 획득했지만 여전히 선진국 수출에 의존하게 됐고 1980년대 외채 위기를 계기로 국제 기구들 구조조정 프로그램에 사로잡혀 경제적 식민지로 전락했다”는 것이 지역주의 핵심 문제의식이다.

지역주의는 세계적인 노동조건 악화와 환경 파괴의 원인을 ‘대량 생산’에서 찾고 그 대안으로 “지역을 위한 지역의 생산”을 제시한다. 김 교수는 지역화가 외부 세계와 담을 쌓는 것이 아니라는 전제 아래 “지역 자원을 지속가능하게 하고 지역 노동자를 인간다운 임금에 고용하며 기업 소비자들에게 봉사하는 지역적으로 소유된 기업을 양성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구체적으로는 무역과 금융에 대한 철저한 통제가 필요하고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없는 제품 이외에는 수입을 금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역주의는 단기 금융자본의 부정적 영향을 집중적으로 강조하는 반면, 장기적관점의 무역과 해외 직접 투자는 성장과 고용에 기여한다고 믿는 등 근본적인 모순을 안고 있다. 김 교수는 “지역주의에는 자본과 국가 권력이라는 장애물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비전이 결여돼 있어 자본주의의 논리에 필연적으로 종속될 수밖에 없고 반 생태적인 추동을 변화시킬 어떤 일도 할 수 없다”고 지역주의의 한계를 지적했다. “세계적인 불평등은 자본과 정면 대결 없이는 해답을 찾을 수 없는 계급적인 문제”라는 이야기다.

김의동 교수는 케인즈주의적 글로벌 거버넌스 개편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케인즈주의자들은 반 세계화 전략의 핵심으로 국가의 회복을 강조한다. 세계화 과정에서 빚어지는 세계 경제 위기와 세계적 양극화 같은 문제를 케인즈주의적 정책 규제나 금융 억압을 부활시킴으로서 해결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그러나 “자본주의의 틀을 유지하면서 금융의 투기적 기생적 성격을 규제하고 기술진보와 자본축적을 진보적 방향으로 양립하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승협 교수는 “노동운동과 좌파 정당이 처해 있는 대중적 위기와 관련해 대안 세계화 운동의 주체로서 노동자 계급 및 대중을 조직화할 대안으로 평의회 운동이 주목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집단적 협상력을 통해 고용주와의 협상을 목적으로 하는 노동조합과 달리 평의회는 작업장에 대한 실제적 통제력을 행사하기 위한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조직이다. 공장이나 학교, 농장과 같은 단일 작업작이 작업장에 소속된 노동자와 구성원들에 의해 집단적으로 통제되고 사실상 관리자가 존재하지 않는 시스템을 말한다.

자본의 탈 국가화에 맞서는 유럽 종업원평의회의 사례도 관심을 집중시켰다. 핵심은 초국적 자본에 맞서 일국 단위의 제도화된 노조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2년 이후 유럽 전역으로 확산된 구조조정 과정에서 127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진 반면 신규 창출된 일자리는 58만개에 그쳤다. 초국적 자본의 생산기지 재 배치와 아웃소싱, 하청 관계의 재 구조화 및 인수합병은 자유롭게 국경을 넘으면서 이뤄지는 반면, 노동자와 노조는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1994년 유럽위원회에 의해 제안된 종업원평의회는 1천명 이상의 대기업이면서 2개국 이상에 걸쳐 각각 150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는 기업에 해당된다. 유럽 전역에 걸쳐 800개 이상의 종업원 평의회가 구성돼 있지만 실질적인 공동 결정권이 없어 형식적인 제도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정진상 교수는 “종업원 평의회가 노조와 조직적으로 분리돼 존재하면서 동시에 기존의 단체 교섭 역할을 수행하게 되면 교섭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고 지적한다. 그만큼 노동조합과 연계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세계사회포럼과 국제주의에 대한 비판도 쏟아졌다. 이승협 한국노동교육원 교수는 “세계사회포럼이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것 이상으로 진전하지 못하고 있고 아직까지 대안이 무엇인지 정확히 말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초국적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격이 개별 국가 차원에서 전개되기 때문에 그 대응 전략도 분산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 근본적인 한계로 거론됐다. 반 세계화 운동이 WTO 같은 국제기구 반대 투쟁이나 보편적 의제로서 반전투쟁에 집중된 것도 이런 한계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정성진 교수는 “최근 우리나라 진보 싱크탱크들이 내놓는 신자유주의의 대안은 공공성과 공공재 확대를 위한 대안에 머물러 있다”면서 “이런 공공성 담론은 사회적 자유주의나 포스트 워싱턴 컨센서스 만큼이나 한계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21세기 대안 사회를 아래로부터 새롭게 건설하려는 대안 세계화 운동과 결합하지 않으면 공허한 모델링 작업 이상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정 교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대체하는 대항 헤게모니로서의 아래로부터의 진정한 세계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Similar Posts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