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의 발단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무현이 탄핵돼 길거리로 나앉았을 때 국민들은 들고 일어나 그를 다시 청와대로 돌려 보냈다. 언뜻 그것은 민주주의의 승리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노무현은 줄곧 참담한 실패를 겪었고 국민들은 그에 대한 실망을 실용주의를 표방한 이명박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로 표출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사실 실패한 것은 노무현이 아니라 국민들이었을지도 모른다. 노무현은 김대중의 유업을 이어받아 신자유주의 개혁을 착실하게 추진했고 충분히 성과도 이뤘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과 최근 논란이 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역시 절반 이상이 노무현의 작품이다. 이명박은 노무현을 계승한 훨씬 더 능숙한 노무현이라고 할 수 있다.
노무현의 실패를 이명박으로 넘어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은 것이었다. 석달도 지나지 않아 대부분의 국민이 이를 깨닫게 됐다. 자,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다. 이명박을 몰아내면 우리 국민들에게 다른 어떤 대안이 있나. 노무현도 대안이 아니고 이명박도 대안이 아니라면 박근혜? 손학규? 문국현? 심상정? 노회찬? 아니면 다른 누구?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는 다시 고민하게 된다. 광장의 시민들은 과연 늘 옳은가. 축제 같은 집회, 성숙한 시위 문화를 만들어 낸 이들은 이명박 정부에 맞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을 끌어내는 이상의 다른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들은 미국산 쇠고기 이외의 아무런 공통된 관심사도 없는데 말이다.
시위대는 거리를 지나면서 “이명박 물러가라”고 외친다. 그런데 동시에 이들은 스스로 철저하게 정치색을 배제한다. 청와대로 진격할 것을 주장하거나 경찰 버스 위로 뛰어오르는 사람들에게 “우리들의 순수한 촛불집회를 왜곡하지 말라”며 “비폭력”을 외치기도 한다. 언론은 그런 이들을 “위대하다”고 치켜세운다.
언론은 시민들의 색깔없음이 이들의 힘이라고 말한다. 유모차를 앞세운 젊은 엄마들, 아이를 무등 태운 아빠들, 하이힐을 신은 예쁜 언니들, 당차고 똑똑한 10대들, 씩씩하고 정의감 넘치는 20대들, 믿음직한 예비군들, 이들은 어울려 노래부르고 춤추고 김밥과 생수를 나눠먹고 거대한 다수가 만들어내는 소속감에 감격하고 광장에서 배제된 권력을 마음껏 조롱한다.
그러나 이들이 조롱하는 권력은 실체가 없다. 광장의 동력은 상당 부분 이명박 개인에 대한 감정적인 분노에서 출발하지만 이 정부의 이데올로기와 정면으로 맞서는 데까지는 나가지 못한다. 이들은 미국산 쇠고기를 반대하면서도 여전히 한미FTA를 찬성하고 여전히 공공부문 민영화가 필요하다고 믿으며 여전히 이명박의 실용주의에 막연한 기대를 걸고 있다.
이들은 과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절한 투쟁에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시장 개방에 반대하는 농민들의 절규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사회 양극화와 시장의 실패에도 둔감했고 적자생존의 논리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지금 광장은 “나와 내 가족에게 광우병 쇠고기를 먹일 수 없다”는 철저하게 이기적이고 현실적인 동기에서 움직인다.
이들은 이명박에 반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명박 이외의 아무런 다른 대안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이명박이 물러나면 결국 또 다른 이명박을 지지할 가능성이 크다. 노무현의 대안으로 이명박을 지지했던 것과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그래서 이 광장은 기쁨 넘치는 감격스러운 축제 이상을 넘어서지 못한다.
이를테면 이 광장은 이명박을 부정하고 있지만 정작 심상정이나 노회찬을 이해하는 데까지 나가지 못하고 그렇다고 손학규나 정동영과 타협할 수도 없는, 어정쩡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촛불집회의 순수성이란 다른 말로 하면 이들이 이명박을 부정하는 것을 넘어 더 이상의 아무런 대안도 찾지 못했거나 여전히 의도적으로 부정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들이 광장에서 “비폭력”을 외칠 때 이명박에게 이들은 거의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 “비폭력”은 형식이지 그것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 정작 이들의 주장이 아무런 구심점이나 방향도 없고 단순히 이명박을 부정하는 것을 넘어 좀 더 적극적인 대안을 심는 데까지 나가지 못한다면 “이명박은 물러가라”는 구호는 그냥 구호일 뿐이다.
“비폭력”이나 “광장의 순수성” 등을 강조하는 시민들 상당수는 광장에 나온 다른 시민들의 이탈을 우려한다. 이들은 함께 어울리고 권력을 조롱하면서 광장을 가로지르는 꿈 같은 축제를 즐기고 있을 뿐 정작 권력에 맞서거나 권력을 대체할 치열한 싸움을 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이명박은 결코 쉽게 물러나지 않는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변혁은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 축제처럼 즐기면서 아무와도 부딪히지 않고 머릿수만 채워 해결하는 그런 혁명은 없다. “대한민국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자위하는 것만으로 빼앗긴 권력이 돌아오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헌법 1조와 2조는 인류의 오랜 역사에 걸친 투쟁의 산물이었고 여전히 투쟁의 결과로서만 유지된다. 지금 광장은 충분히 놀랍고 감동적이지만 2002년 월드컵 때의 광장이나 2004년 노무현 탄핵 때의 광장과 매우 닮았다. 광장의 에너지는 소비되기만 할 뿐 이들을 광장으로 내몬 현실을 거의 건드리지 않는다.
우리는 더 늦기 전에 어떤 민주주의를 만들 것이냐를 놓고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처럼 구호만 남은 민주주의를 우리는 극복할 수 없다. 폭력을 거부하고 피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는 현실과 맹렬히 맞서 싸워야 한다. 지금 광장에 팽배한 낙관주의는 충분히 근거가 있는 것이지만 이제는 좀 더 적극적인 목표가 제시돼야 할 때다.
광장의 시민들이 이명박 없는 대한민국을 구체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할 때 이명박은 그때 비로소 광장을 두려워할 것이다.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할 것은 애꿎은 경찰들이 아니라 우리의 빈약한 정치적 상상력이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광장의 순수성이 아니라 우리 내면 깊숙이 자리잡은 옳은 것에 대한 열정과 연대에 대한 믿음이다.
2008년 6월10일의 광장은 축제를 넘어 민중봉기나 항쟁으로 가는 과도기에 있다. 향후 전망을 낙관할 수 있는 것은 시민들이 현실을 스스로 깨우치고 변혁의 주체로 나서는 일이 결국 가능할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광장의 진짜 힘이라고 나는 믿는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비록 또다른 이명박이 등장할 지라도, 지금의 브레이크 고장난 이명박만큼은 세워야한다는 생각이죠. 현시점에 당장은 대안이 보이지 않을 지라도, 영웅은 등장합니다. 우리가 지금 모르고 있을 뿐이지요.
공감가는 글 잘봤습니다. 과연 대안은 무엇일까요?
모두가 고민해야할 문제인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