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은 민중의 가슴 속에서 피어나는 것이다. 촛불이 거센 횃불이 돼서 타오르고 있는데 광장을 봉쇄한다고 이 민중의 열망이 꺼질 것 같은가. 짓밟으려고 할수록 더 거세게 타오를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공안 탄압과 폭력 진압은 그만큼 이들이 궁지에 몰렸다는 반증이다. 이 정부는 결코 민중을 이길 수 없다.”


12일 저녁 서울 시청 인근 국가인권위원회 앞 시위 현장에서 만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의 말이다. 백 소장은 “썩은 고목도 발로 차야 넘어가는 것”이라며 “정통성을 상실한 이 정부를 발로 차서 넘어뜨릴 때”라고 힘줘 말했다. 원로 재야인사인 백 소장은 올해 76세. 당뇨병을 앓고 있다는데도 흰 두루마기 차람의 그는 여전히 결연하고 당당한 모습이었다.

이날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는 경찰이 시청 앞 광장을 원천 봉쇄하면서 오후 5시께부터 동아일보사 앞 청계 광장과 종각역 인근, 그리고 시청 인근 국가인권위원회 앞 도로 등에서 산발적으로 시작됐다. 시위대가 행진을 시작한 때는 오후 7시께. 시위대는 저녁 8시 현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출발해 명동 롯데백화점 앞과 종각역을 지나 안국동 방향으로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시위 참가 인원은 주최 측인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추산 2만여명. 촛불 집중의 날을 선언한 주최 측 예상에는 크게 못 미쳤지만 경찰이 시청 앞 광장을 원천 봉쇄하고 오후 3시께부터 폭우가 쏟아지는 악조건을 감안하면 결코 적지 않은 규모다. 당초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처음 행진을 시작할 때만해도 5천여명이었던 시위대는 계속 불어났다.

이날 집회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참여로 경찰과 충돌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지만 시위대는 경찰 저지선을 피해 평화행진을 시작했다. 시민 김세랑(37세)씨는 “집회 열기가 다소 수그러든 것도 사실이지만 마지막 한 명이라도 남아 광장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비폭력과 무저항은 다르다”며 “우리는 때리면 맞겠지만 맞고도 저항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집회에는 “닭장차 창살에 삼겹살을 굽고 물 대포에 상추를 씻는 미식가들의 모임”이라는 흥미로운 깃발이 등장했다. “긴 호흡 강한 걸음, 5년 내내 촛불이다”라는 피켓을 든 여학생도 있었고 “공주에서 청와대에 있는 쥐새끼 잡으러 왔시유~”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고 온 40대 남성도 눈길을 끌었다. 프레스센터 앞에서는 전국한우협회와 한우자조금관리위원회가 개최한 한우 시식회가 열리기도 했다.

청계광장에서 만난 김근태 전 국회의원은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묵묵히 촛불을 지키고 있었다. 김 전 의원은 “이명박 정부가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촛불 시위는 5년 내내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촛불시위는 이제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 표현의 자유, 그리고 우리 사회의 정의와 공공성를 지키는 싸움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랜드 일반노동조합 김경욱 위원장은 “국민들의 문제의식은 이미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넘어섰다”면서 “한미자유무역협정(FTA)과 공기업 민영화, 비정규직 문제 등 신자유주의 정책 전반에 대한 심판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시위가 두 달 이상 계속되면서 다소 관성화하는 느낌도 없지 않지만 시민들의 연대의식이 성숙하고 있다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우석균 보건의료연합 정책실장은 “정부는 수입 위생조건이 안전하다는 거짓말을 덮으려고 수많은 새로운 거짓말을 쏟아내고 있다”면서 “재협상 없이는 아무 것도 안 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당장 미국산 쇠고기 내장이 쏟아져 들어올 텐데 3500원짜리 내장 한 줄 조직검사를 하는데 15만원이 든다고 한다. 제대로 된 조직검사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최근 미국에서 O157 오염이 의심되는 쇠고기를 전량 리콜하고 있다. 문제는 이게 사전 검사 과정에서 걸러진 게 아니라 식중독 사건의 원인을 거꾸로 조사하는 과정에서 밝혀졌다는데 있다. 우리 정부도 이런 위험을 충분히 알고 있는데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쇠고기 제품은 미생물 검사를 거의 거치지 않는다. O157은 체내에서 독소를 만들어 출혈성 장염 등을 일으키는 대표적 병원성 대장균으로 면역력이 약한 노약자나 어린이의 경우 감염으로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더 어이 없는 건 이번에 문제가 된 작업장인 네브라스카 비프가 우리나라에 수출할 수 있도록 승인을 받았는데 정부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우 실장은 “미국산 쇠고기가 이미 들어오기 시작했지만 제대로 된 투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했다. 우 실장은 “이력추적이 안 되는데 원산지 표시를 해봐야 큰 실효성이 없고 1명의 공무원이 2천개 이상의 음식점을 단속한다는 것도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고 무엇보다도 정부의 책임을 음식점들에게 떠맡기는 무책임한 처사”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우 실장은 “일단 수입이 되고 나면 여러 경로를 거쳐 알게 모르게 국민 모두가 먹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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