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일이다. 세계 경제를 뒤흔들고 있는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는 과도한 부동산 거품과 금융기관 연쇄부실 우려, 그리고 내수 침체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미국의 전철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이른바 부동산 안정대책은 너무나도 파격적이라 현기증이 날 정도다. 정부는 우선 분양가 상한제를 대폭 완화해 건설회사들 분양가 책정에 재량을 넓혀준다는 계획이다. 구체적으로는 택지비의 매입원가를 인정해주고 소비자 만족도 우수 아파트의 경우 가산비를 추가 인정해주고 가산비용에 재량권을 확대시켜주는 등이다. 또 분양원가 공개와 후분양제에 대해서도 합리적인 예외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또 수도권 일대 아파트의 전매제한도 풀어줄 계획이다. 이른바 버블세븐 지역인 서울 강남권과 도심, 목동 일대, 그리고수도권 분당이나 판교 등 투기과열지구는 제외된다. 이밖에도 재건축 규제도 대폭 완화된다. 재건축 안전진단과 조합원 동의 절차를 간소화하고, 조합원 지위양도를 허용할 계획이다. 소형 평형 의무비율 완화나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도 검토되고 있다. 국토해양부는 이같은 내용을 21일 발표할 예정이다.
그야말로 내놓을 수 있는 대책은 대부분 내놓은 셈인데, 그동안 부동산 규제완화를 줄기차게 외쳐왔던 보수경제지들의 반응은 여전히 뜨뜻미지근하다.
조선일보의 20일 사설 제목은 “집 사야 할 사람 사고 팔아야 할 사람 팔게 해야”다. 이 신문은 건설회사 연쇄부도 사태를 거론하면서 “부동산발 위기를 막기 위해서라도 최소한 실수요자들이 집을 사고팔 수 있게는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엉뚱하게도 이 신문은 건설회사가 망하면 미국처럼 서브프라임 사태가 올 수도 있다는 주장을 편다.
한국판 서브프라임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면 건설회사들이 더 망하고 집값 거품이 더 빠져야 한다. 그런데 이 신문은 서브프라임 사태를 막기 위해 건설회사들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본말이 전도된 논리다.
집을 사야할 사람이 못 사고 팔아야 할 사람이 못 파는 건 과도한 규제 때문이 아니라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고 믿는 투기적 가수요 때문이다. 이 신문이 강조하는 위기는 건설회사들의 위기일 뿐이다. 건설회사들이 문을 좀 닫는다고 해서 경제 전반에 위기가 확산될까. 설령 그렇다고 해서 이들을 살리기 위해 부동산 거품을 방치하거나 조장해도 되는 것일까.
서울신문도 사설에서 “부자논리를 극복하자”고 거들고 나섰다. 2% 땅부자를 위한 정책이라며 공격하는 민주당을 무시하라는 이야기다. 이 신문은 “강부자 내각이라는 원죄를 안고 있는 이 정부는 이러한 이념공세에 좌고우면해 왔던 게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지금처럼 거래가 사라진 부동산 시장이 안정국면인 것은 아니지 않은가”라고 지적하고 있다.
매일경제는 “대출완화 등 알맹이 빠져 거래활성화 역부족”이라는 제목을 걸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이 신문은 “실수요자가 집을 마련하고 싶어도 대출규제 등에 묶여 집을 마련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따라서 수요 창출을 위해선 대출 규제완화가 가장 시급하다”는 업계 관계자의 말을 전하고 있다.
대출을 늘려서라도 부동산 경기를 살려야 한다는 매일경제의 주장은 특히 위험하다. 이 신문은 “대출금리가 높아졌고 담보인정비율이 유지되기 때문에 총부채상환비율을 없앤다 해도 투기과열 등의 부작용은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한국판 서브프라임 사태를 막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뒤흔들고 있는 셈이다.
한국경제도 사설에서 “지나친 반시장적 규제가 부동산 경기마저 실종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파이낸셜뉴스도 “최소한의 거래를 살릴 수 있는 수단인 대출규제가 풀리지 않는다면 시장 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이들이 주장하는 시장 활성화는 투기 활성화나 마찬가지다.
동아일보는 “수도권 전매제한 제도가 완화되면서 판교 신도시 등지에서 이미 분양한 아파트 계약자들도 당초보다 아파트를 빨리 팔 수 있게 됐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전매제한 제도를 두는 것은 시세보다 싼 값에 분양을 받은 당첨자들이 분양권을 팔아 이익을 챙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10년 이상 들어가 살 실수요자들만 분양을 받도록 하기 위한 제도다. 그런데 이를 완화한다는 건 당초 취지를 무시하고 판교=로또라는 등식을 정부가 다시 확인해주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