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티스토리는 일단 무료인데다 다른 무료 블로그 서비스보다 훨씬 자유도가 높아 많은 인기를 끌었다. 광고도 붙지 않고 스킨도 얼마든지 바꿀 수 있고 배너광고를 붙여 용돈을 벌 수도 있다. 원한다면 별도의 도메인으로 접속할 수도 있다. 이 정도면 굳이 독립 호스팅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얼마 전에 블로거들이 ‘레진 사태’이라고 부르는 사건이 터졌다. “생각이 없는 블로그”라는 약간 음란하고 엽기적이면서 재기발랄한 사진과 글을 올리는 블로그였는데 꽤나 인기가 있었다. 누가 뒤에서 들여다보면 민망할 내용이지만 그래도 몰래몰래 심심찮게 찾게 되는 그런 블로그였다. 그가 포스팅을 하면 순위 놀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다음이 어느 날 갑자기 이 블로그를 차단시켰다. 이유도 없었다. 그냥 접근이 제한됐다는 메시지만 떴을 뿐이다. 꽤나 뒷북이 됐지만 이 사건을 다시 언급하는 것은 민노씨가 내준 숙제도 있고 그게 아니라도 한번쯤 짚고 넘어갈 문제라고 생각해서다. 그래서 궁금한 것도 물어볼 겸, 다음 티스토리 관계자와 통화를 했다.
일단 이 관계자 말로는 자기네들은 14세 이용 기준으로 콘텐츠를 관리하고 있으며 문제가 되는 콘텐츠는 접근제한 조치에 앞서 세 차례에 걸쳐 경고 메일을 보낸다는 것이다. 그런데 레진님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메일을 수신 거부해 놓고 비공개 처리된 게시물을 다시 공개로 바꿔놓았다는 것.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접근 제한조치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그동안 블로고스피어에서 익히 알려진 바와 같다. 다만 이 관계자는 “이용자들이 무엇을 쓰든 마냥 내버려둘 수는 없는 것이고 최소한의 합리적인 규제는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판단이 어려운 사안에 대해서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심의를 의뢰하는 것이 그나마 합리적이고 공정한 절차라는 이야기다.
나는 “다음의 입장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애초에 영리기업이고 이들의 지속적인 이윤창출을 위협하지 않는 선에서만 이용자들에게 자유를 허용한다. 그게 다음의 한계다. 모든 블로그를 꼼꼼히 읽고 14세 이용가 여부를 결정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겠지만 그렇다고 마냥 방치할 수도 없는 일이다.
나로서는 다음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을 것 같지 않다. 다음 역시 온갖 규제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다음더러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맞서 싸우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에 앞서, 좀 더 세련된 방식으로 레진님과 합의점을 찾는 것이 가능했을까. 결국 핵심은 문제가 된 콘텐츠를 차단하느냐 마느냐였고 합의는 애초에 불가능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만님이 전선을 명확히 하자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다음을 백날 탓해봐야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레진님이 이글루스에서 티스토리로 옮겨온 것처럼, 티스토리를 떠나 네이버나 엠파스 블로그 또는 심지어 독립형 블로그로 옮겨간다고 해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다음이 알아서 기느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이 직접 나서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레진님이 독립형 블로그를 운영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다. 범주는 조금 다르겠지만 이정환닷컴 역시 사전 또는 사후 검열의 시스템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일부에서 독립형 또는 설치형 블로그가 대안이라고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민노씨는 “당신의 동료 블로거도 지키지 못하면서 참여니 개방이니 떠들지 말라”고 했지만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레진님이라는 동료 블로거 뿐만 아니라 지금도 날마다 차단되고 있는 다른 많은 레진님들과 그들의 음란한 블로그들을 모두 포함해야 한다. 영화 “래리 플린트”를 인용하자면, 레진님보다 훨씬 쓰레기 같은 블로그와 블로거들까지 함께 지켜야 한다.
시대착오적인 선거법을 둘러싼 논란. 여전히 존재하는 18세 이상 관람가 또는 등급 보류라는 장벽, 그리고 이명박 정부 들어 되살아나고 있는 엄혹한 국가보안법. 지금도 수많은 레진님이 표현의 자유를 박탈 당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레진님이나 김연수님이나 장선우 감독이나 오세철 교수 등을 동일선 위에서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굳이 볼테르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내가 이들에게 동의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좀 더 나가면 자본이 장악한 우리 사회의 의사소통 구조에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블로고스피어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면 다만 레진 일병 구하기에 그칠 것이 아니라 이 전쟁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만님이 전선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해 놓고는 자기 콘텐츠의 자기 통제권이 필요하다는 엉뚱한 결론을 내린 것은 아쉽다. 레진 사태의 경우, 통제의 주체는 포털 사이트가 아니라 국가 권력, 그리고 이를 움직이는 자본 권력이다. 독립형 블로그가 이런 여론 통제와 준거 기준의 강요에서 자유롭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일 뿐이다.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니다.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면서도 초등학생 아들에게 레진님의 블로그를 보여주기는 쉽지 않다. 무제한의 표현의 자유를 요구할 것인가 적절하고 합리적인 수준의 규제를 요구할 것인가 하는 것도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레진 사태는 다분히 감정적으로 소비되는 측면이 있다.)
다음은 우리다 / 마르틴 니묄러. (언젠가 이 시를 인용할 기회를 기다렸는데, 약간 뜬금없긴 하지만.)
나치는 우선 공산당을 숙청했다.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유태인을 숙청했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노동조합원을 숙청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가톨릭교도를 숙청했다. 나는 개신교도였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나에게 왔다. 그 순간에 이르자, 나서줄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았다.
Als die Nazis die Kommunisten holten,
habe ich geschwiegen;
ich war ja kein Kommunist.
Als sie die Sozialdemokraten einsperrten,
habe ich geschwiegen;
ich war ja kein Sozialdemokrat.
Als sie die Gewerkschafter holten,
habe ich nicht protestiert;
ich war ja kein Gewerkschafter.
Als sie die Juden holten,
habe ich geschwiegen;
ich war ja kein Jude.
Als sie mich holten,
gab es keinen mehr, der protestieren konnte.
마냥 자유롭게 놀때는 좋은데, 규제란 꼬리가 달리면 규제로 몰렸다가. 법이 또 낙인하면 법으로 몰렸다가.. 마땅찮은 기준 싸움에 너무 밋밋한 기준을 세우려하니,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듯. 시간이 지나면 아이가 어른이 되고, 아이들의 감성도 바뀌는데, 왜 법은 지독하게 그 감정 그대로 그 자리에 머무르는지 아이러니. // 감상 잘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