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상장기업 3분의 1이 적대적 M&A(인수합병)의 위협에 취약하다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발표를 8일 대부분 언론이 인용 보도했다. 전경련이 코스피와 코스닥 상장기업 300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이 가운데 31.1%가 ‘적대적 M&A 위협에 노출돼 있다’고 응답했다. 또 27.5%는 경영권 공격에 방어할 수단이 없다고 응답했다. 전경련이 늘 반복해서 늘어놓는 새로울 것 없는 주장이지만 그때마다 언론은 이를 비중있게 기사에 반영해 왔다.


조선일보는 전경련 관계자의 말을 인용, “국내 상장기업들 상당수가 경영권 안정을 위한 막대한 현금 부담 때문에 투자가 위축되고 있다”며 “포이즌 필 같은 저비용 경영권 방어수단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포이즌 필은 적대적 M&A 시도가 있을 때 이사회 결정만으로 M&A를 시도하는 측을 제외한 모든 주주에 시가의 절반 이하로 살 수 있도록 함으로써 M&A를 저지하는 경영권 방어수단이다.

중앙일보는 전경련 자료 가운데 “조사기업의 54.8%가 법적제도적 방어수단을 허용하기 바랐다”는 부분을 인용 보도했다. 또 “신주의 제3자 배정을 도입하자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고 전했다. “방어수단 남용 소지에 대해서는 상장 기준 및 지침을 통한 자율규제로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전경련은 기업들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막대한 현금을 쏟아부어 자사주를 사들이고 있는 현실도 문제로 지적했다. 실제로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내 기업들이 배당과 자사주에 쏟아부은 자금은 69조원에 이른다. 반면 기업들이 주식시장에서 조달한 자금은 30조원에 지나지 않았다. 경영권 위협이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여력을 갉아먹고 단기이익을 좇도록 만든다는 이야기다.

한국경제는 사설에서 외국 자본의 공격에 맞서야 한다는 해묵은 논리를 다시 꺼냈다. “우리 기업들만 무장해제된 상태로 외국 자본의 경영권 위협에 내몰리다가는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적대적 M&A의 위협을 둘러싼 해묵은 논쟁은 여전히 명확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전경련을 비롯한 기업들은 경영권 방어수단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하고 있고 참여연대와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등은 지나친 경영권 방어가 자칫 소액주주의 권익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맞서고 있다.

그동안 언론의 입장은 전경련 등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수준에서 그쳤다. 국내 자본의 적대적 M&A 시도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주로 관심은 외국 자본의 공격에 맞춰졌고 논쟁은 다분히 국수주의적인 방향으로 흐르기도 했다. 외국 자본에게 국내 기업을 뺏길 수 없다는 논리에서다. 외환은행 매각 등에서 정작 금융 공공성 문제나 대주주 적격성 문제가 깊이 논의되지 않았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처럼 한편에서는 주주이익의 극대화를 외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경영권 보호를 외치는 이런 상반된 입장을 보이는 것은 기업과 기업 오너를 혼동하기 때문이다. 경영권 방어수단을 만들어야 한다는 전경련의 주장은 기업의 입장이 아니라 기업 오너의 입장에서 나온 주장이다. 엄밀히 말하면 주주의 입장에서는 기업의 경영진이나 최대주주가 누가 되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기업 오너가 낮은 지분으로 기업을 지배한다거나 경영 실패로 주가가 터무니없이 낮다면 적대적 M&A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과거 소버린펀드의 공격을 받았던 SK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소버린은 SK의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했고 SK는 이를 상당부분 받아들였다. 주가가 크게 뛰어올랐고 소버린은 상당한 규모의 이익을 챙기고 떠났다. 물론 SK의 주주들도 소버린이 챙긴만큼 시세차익을 챙겼다.

분명한 것은 시장의 룰을 바꾸지 않는 이상 현실적으로 소버린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사실이다. SK가 소버린에 질질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던 것은 주주총회에서 표결이 벌어질 경우 우호 지분을 모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SK의 지배구조에는 분명히 문제가 많았고 주가도 저평가 된 상태였고 당연히 주주들의 불만도 많았다. 적대적 M&A는 성공할 확신이 있고 시세차익의 가능성이 있을 때만 일어난다.

적대적 M&A를 피하려면 주가를 충분히 끌어올리거나 투명하고 효율적인 경영으로 우호 지분을 확보하는 게 최선이다. 경영권 방어수단을 제도적으로 도입할 경우 적대적 M&A를 방어하는 것을 넘어 기업 오너의 경영권을 필요이상으로 강화시키게 될 우려도 있다.

국내 최대의 기업 삼성전자 역시 적대적 M&A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도 자주 나오지만 절대 다수의 주주들이 이건희 회장 일가가 경영을 맡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동안 그 위협은 현실화하지 않는다. 경영진은 결국 주주의 대리인일 뿐이다. 그 이상의 다른 제도적인 경영권 방어수단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논의를 외국 투기자본과 이건희 회장의 구도로 몰아가는 것은 정직하지 못한 문제인식이다.

다시 정리하면 단기 이익에 매몰되는 주주 자본주의의 폐해를 경계하는 것과 기업 오너의 경영권 방어수단을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언론은 이익집단인 전경련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받아쓰기 보다는 주주 자본주의의 비판과 감시에 좀 더 많은 고민을 담아내야 한다. 주주 이익 극대화의 논리가 경영권을 위협하고 성장 잠재력을 잠식하는 현실에 대해 좀 더 정확한 문제제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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