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S는 명실공히 국내 최대의 정보기술(IT) 기업이다. 국내 최대의 SI(시스템통합) 업체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회사가 돈을 버는 방법은 약간 석연치 않다. 일단 삼성그룹 계열사 SI물량을 거의 독차지하다시피 한다. 전체 매출 가운데 계열사에서 나오는 매출이 무려 65%에 이른다. 2위인 LGCNS는 42%, 3위인 SKC&C는 72%에 이른다.
흔히 SI를 인건비 따먹기 장사라고들 하는데 일단 수주를 받으면 다른 중소 SI업체들에게 더 낮은 가격에 하청을 주고 마진을 챙겨 빠지는 방식으로 이익을 내기 때문이다. 내부 인력으로는 인건비 부담이 크기 때문에 낮은 가격이라도 일단 수주를 받고 하청을 주는 방식이 더 많은 이익을 안겨준다. 오죽하면 SI는 유통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SI업계에서는 하청에 하청을 거듭하면서 갑을 관계를 넘어 병정무기까지 내려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재벌 계열 SI업체들이 헐값에 수주를 받고 이를 하청업체에 넘기면서 영세한 SI업체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일은 병정무기에서 하는데 이익은 을인 삼성SDS가 챙기는 방식이다. 중소 SI 업체의 열악한 노동조건은 참담할 정도다.
왜곡된 SI업계의 수주와 하청 관행은 정부와 공공부문 프로젝트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할 수 있는 곳은 삼성SDS를 비롯해 재벌 계열 SI업체들밖에 없다. 매출의 상당부분을 계열사에 의존하는 이들 재벌 계열 SI업체들은 당연히 정부와 공공부문 프로젝트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고 터무니없는 헐값에 후려치게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소 SI업체들은 갈수록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대형 물량은 재벌 계열 SI업체들이 싹쓸이하고 그나마 공공부문 프로젝트는 제값을 못 받는다. 결국 대부분 SI업체들이 재벌 계열 SI업체들의 하청업체로 전락하게 된다. 1천개에 이른다는 SI업체들 가운데 90%가 연 매출액 30억원 이하, 영업이익률도 5% 이하 수준이다.
놀랍게도 이런 사실은 일반인들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삼성SDS 등 재벌 계열 SI업체들의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거의 없다. 삼성SDS는 광고를 많이 하는 기업은 아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언론이 재벌 계열 SI업체들의 횡포와 시장질서 왜곡에 침묵하고 있다.
30일 아침 일부 신문에 실린 KDI(한국개발연구원) 보고서는 재벌 계열사들의 이런 내부거래가 삼성SDS나 IT업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임경묵·조성빈 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기업집단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있지만 계열사간 내부 거래를 통해 지배주주의 사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이른바 터널링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1995~2005년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을 대상으로 상품과 서비스 내부거래와 재무제표 등을 분석한 결과, 거래가 이뤄진 두 계열사에 대한 지배주주의 현금흐름권(직간접 소유 지분) 차이가 1%포인트 클수록 현금흐름권이 높은 기업과 낮은 기업의 매출액영업이익률(일반기업 대비 초과분) 격차가 0.2%포인트 더 벌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두 기업간 이익률 격차는 지배주주의 현금흐름권(지분)이 많은 기업의 전체 매출에서 내부거래가 차지하는 비중과도 비례했다. 쉽게 풀어말하면 재벌 총수일가가 계열사간 내부거래로 외형을 늘리면서 총수일가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총수 일가의 지분이 낮은 계열사의 수익성을 희생시킨다는 의미다.
임 연구위원 등은 “통제권과 현금흐름권의 괴리 등으로 지배주주와 소액주주 사이에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 소액주주로부터 지배주주로 부의 이전이 일어난다”며 “기업 의사 결정에 대한 권리인 통제권은 지배대주주가 순환출자 또는 상호출자 등에 의해 현금흐름권을 초과해 행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30일 이 보고서를 인용한 곳은 경향신문과 서울신문, 세계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등 5곳 밖에 없었다.
경향신문은 쉽게 풀어서 “똑같은 100원의 이익이 발생하더라도 계열사 보유 지분이 2%인 경우는 몫이 2원밖에 안 되고 지분이 50%라면 50원에 이르러 재벌 총수 입장에서는 보유 지분이 높은 계열사에 이익을 몰아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서울신문은 “SK그룹의 경우 최태원 회장 등 지배주주의 배당권이 높은 SKC&C로 부가 이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SK텔레콤과 SKC&C의 지배주주 배당권은 2%와 56%다. 세계일보는 “우리나라와 같은 순환출자와 피라미드식 출자구조는 내부 거래를 통해 총수일가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경쟁당국의 규제로 부당한 내부거래 등이 약화됐으리란 기대와 달리 최근 이런 거래가 더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조 연구위원의 말을 인용했다.
대부분 언론이 간과하고 있지만 삼성SDS의 경우도 비슷한 해석을 적용할 수 있다. 이건희 회장 일가의 삼성SDS 지분은 27.4%에 이른다. 여기에다 삼성전자가 21.3%를 보유하고 있고 삼성화재가 18%, 삼성전기가 8.3%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내부 지분율이 무려 75%에 이른다. 총수 일가 입장에서는 다른 계열사들보다 삼성SDS에 이익을 몰아주는 것이 훨씬 이익이라는 이야기다.
삼성SDS의 성장은 아이러니하게도 국내 SI업계에는 재앙이 됐다. KDI의 보고서는 삼성SDS가 삼성그룹 총수일가의 이익을 불려주는 전진기지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삼성그룹의 부당 내부거래가 삼성그룹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 역시 의미심장한 시사점이다. 보수·경제지들이 일제히 이 보고서에 침묵한 이유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