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ilout people. Not the banks. (국민들을 구제하라. 은행들만 구제하지 말고.)”, “No bailout for fat cats. (왜 우리가 세금으로 살찐 고양이들을 살려야 하는가.)” 월스트리트의 시위대가 들고 나온 피켓에 적힌 문구다. “월스트리트가 살아야 미국이 살고 미국이 살아야 세계가 산다”는 이 거대한 도그마에 맞서는 사람들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다른 대안이 있나? 그냥 내버려 두면 투자은행이 몇 군데 더 문을 닫고 주가가 좀 더 빠지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집과 일자리를 잃는 정도로 이 위기가 끝날 수 있을까.

일부에서는 비난 여론을 의식한 죄수의 딜레마 탓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지만 미국 하원은 우여곡절 끝에 7천억달러의 구제금융 법안을 부결시켰고 세계 금융시장은 요동을 쳤다. 그러나 그 다음 날은 어떻게든 구제금융 법안이 다시 상정될 것이고 이를 다시 부결시키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면서 어렵사리 반등에 성공했다.

대부분의 언론이 구제금융이 유일한 해법인 것처럼 몰아가고 있지만 미국 여론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은 것 같다. 7천억달러를 쏟아붓더라도 당장 위기가 해소되는 게 아닐 수 있다는 절망감 때문이기도 하고 파산한 리먼브러더스나 국유화된 아메리칸인터내셔널그룹(AIG) 등의 경영진들이 고액의 퇴직금을 받고 떠났다는 사실에 배신감을 느낀 때문이기도 하다.

금융시장의 지나친 탐욕이 불러온 위기를 국민들 세금으로 보완한다는데 대한 거부감이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도 크게 작용을 했다. 낮은 금리에 끌려 턱없이 비싼 집을 사고 결국 쫓겨나게 된 저소득 계층에게도 책임이 있겠지만 이를 조장한 시스템의 책임이 더 크다는 건 상식적인 반응이다. 그런데 미국 정부는 이 시스템을 폐기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국내 언론은 스포츠 경기 중계를 하듯 미국 금융시장의 혼란 상황을 숨 가쁘게 전하고 있지만 본질을 정확히 짚고 있지는 않다. 특히 조선일보와 한국경제의 논조가 흥미롭다. 조선일보는 1일 1면 머리기사에서 하원의 구제금융 법안 부결을 “워싱턴의 반란”이라고 평가했고 한국경제는 “포퓰리즘(대중 영합주의)”이라고 평가했다.

대부분 언론이 미국 주류 언론을 맹목적으로 받아쓰기 하고 있는 탓에 월스트리트와 금융시장의 관점에서 이들의 혼란을 단순 중계하고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을 계산하는데 골몰할 뿐 정작 미국 국민들의 분노와 절망을 세심하게 들여다보지 않고 있다. 발등의 불을 끄기에 바쁜 우리 언론은 구제금융을 반대하는 목소리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다.

이런 맥락에서 ‘세계 사회주의자 웹사이트 (www.wsws.org)’가 최근 논평에서 제안한 대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 경제를 위기에 빠뜨리고 수백만명의 국민들을 가난으로 몰아넣은 금융회사들을 국유화하고 그들의 경영진과 대주주들은 퇴출돼야 한다. 이 금융회사들은 공기업으로 전환하고 민주적으로 운영돼야 한다. 이들의 자원은 부자들을 위해 이윤을 창출하는 목적이 아니라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대출을 갚지 못해 쫓겨나는 사람들을 구제하고 교육과 헬스케어와 기타 필수적인 사회적 인프라스트럭쳐를 재건하는 생산적인 목적으로 활용돼야 한다.”

이번에 부결된 구제금융 법안은 부실 금융회사들을 정리하지 않고 이들의 부실자산을 사들여 파국을 늦추는 미봉책일 뿐이다. 부실의 확산을 멈추기 위한 궁여지책이라지만 만약 부동산 가격이 추가로 폭락하거나 드러나지 않은 부실이 추가로 드러날 경우 미국 국민들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계속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누가 이익을 보게 될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당장 부도 위기에 직면한 금융회사 주주들의 손실이 줄어들 것은 분명하다.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이유로 머니게임의 실패를 국민들 세금으로 보상해주는 셈인데, 이는 이들이 신봉해 왔던 시장의 원리에도 위배된다. 이들이 살리려는 경제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경제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애초에 시장의 원리라는 게 철저하게 자본의 이해를 극대화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미국 정부의 시장 개입은 사실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미국 경제 또는 세계 경제라는 획일화된 프레임을 벗어나 자본과 노동의 대결구도로 세계 경제를 보고 자본에 종속된 정부를 비판할 필요도 있다.

이윤은 사유화되고 손실은 사회화를 넘어 이제 세계화된다. 몰락해 가는 신자유주의 시스템을 구제하려는 미국 정부의 필사적인 노력에 과연 우리가 동조할 필요가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우리’라는 범주부터 다시 설정할 필요도 있다. ‘우리’는 월스트리트의 자본가들과 이해를 같이 하는가, 대출금을 못 갚아 쫓겨날 미국 국민들과 이해를 같이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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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Comment

  1. 거 참 월가가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당국은 뭘 했는지 그것도 궁금하고 앞으로 이를 어찌 할지도 궁금합니다. 일단 사회주의자 웹사이트가 내놓은 대안이 흥미롭습니다만, 정부가 이를 그래도 실행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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