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역시 노회했다.

6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기획재정부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감에서 강 장관은 의원들의 빗발치는 질의를 정면으로 맞받아쳤고 의원들에게 밀린다 싶으면 오히려 호통을 치면서 기를 꺾기도 했다. 반면 의원들은 원론적이고 식상한 질문으로 일관해 맥이 풀렸다. 과거 재정경제위 국감 때 첨예한 이슈를 끄집어 내 장관과 공무원들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박영선 민주당 의원이나 심상정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 같은 스타 의원도 이날은 없었다.

이날 기획재정부 국감의 핵심 질의는 무모한 환율 개입이 초래한 물가 급등과 금융 불안에 강 장관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강 장관이 취임 초기 고환율 정책을 천명하면서 외환보유액을 동원해 환율을 끌어올렸다가 미국 경제가 심각한 위기 국면으로 치닫고 국제 유가가 급등하는 등 불안 요인이 확산되자 뒤늦게 환율을 끌어내리는 등 일관성 없는 정책으로 시장에 혼란을 가중시켰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최중경 차관을 대리 경질한 것도 도마에 올랐다.

민주당 강성종 의원은 “환율 정책이 오락가락하면서 일관성을 잃어버렸고 정부의 뒷북성 위기대응 속에 투기세력만 배를 불렸다”면서 “강 장관의 사퇴가 신뢰를 잃은 시장과 환투기 세력에게 주는 가장 강력하고도 확실한 경고이며 이 문제를 푸는 시작이 될 것”이라고 거세게 몰아붙였다.

그러나 강 장관은 “(국회 개원이 늦춰진 것을 거론하며) 석달 동안 내내 싸우다가 아무것도 못했고 제대로 일도 해보지 못했다”면서 “아직 정책의 성과를 말하기에는 이르다”고 반박했다.

여당 내 야당 의원이라는 평가를 받는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이 강 장관의 인수위 시절 “경상수지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높은 환율이 좋다”고 한 발언을 문제삼자 강 장관은 “그런 언론 보도는 기억이 없어 답변하기 어렵다”면서 “인수위 시절은 사람이 많아 어수선했고 상당수 기자들은 나와 직접 대화도 안 해보고 마음대로 왜곡해서 그런 기사를 썼다”고 발뺌했다.

다음은 김 의원이 문제로 지적한 강 장관의 발언들이다.

– 2007.12.26, 인수위 경제1분과 간사 임명
“경제성장의 제1법칙은 저세율과 저금리”
– 2.29일, 기자간담회
“‘환율이라는 것은 경제적 주권을 방어하는 수단이고, 일종의 전쟁이구나’, ‘환율은 시장에 맡기고 하는 그런 사항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
– 3.25일, 매경 이코노미스트클럽 초청 강연
“경상수지는 악화되는데 원화 가치는 절상되면서 우리 경제가 외환위기를 맞이했는데 지금 우리 경제는 (그때와 유사한 수준) … 대외균형과 대내균형이 상치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대외균형이며, 이는 견해가 아니라 팩트의 문제이며, 팩트는 두가지가 있을 수 없다”

– 7.2, 하반기 경제운용방향 모두발언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경제를 흔들고 있는 사회적 불안은 중단되어야 한다”
– 7.8, 기자간담회
“위기를 위기라고 하는 것은 국민의 협력을 얻기 위해 필요한 조치”
– 7.10, 기자간담회
“지금 당장을 위기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전반적인 경제 흐름이 위기국면으로 가고 있다”

– 3.25일, 매경 이코노미스트클럽 초청 강연
“금리정책은 중앙은행 소관이지만 환율과 경상수지 적자 추이를 감안할 때 어떤 대응을 해야할지 자명하다 … 통화금융정책과 관련해 재정부장관은 금융통화위원회의 기준금리 결정에 대해 거부권을 갖고 있다”
– 6.8일, SBS 라디오
“유가가 급등하는 등 새로운 환경을 감안해서 금리와 환율을 운영하겠다”

김 의원이 계속해서 언론 보도를 인용해서 공격하자 강 장관은 다소 격앙된 어조로 “경기 상황을 봐 가면서 고환율 정책을 쓰기도 하고 저환율 정책을 쓰기도 하는 것”이라면서 “이는 경제학 원론에도 나오는 상식적인 이야기”라고 맞받아쳤다.

이에 서병수 기획재정위원장이 “장관이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시장이 그렇게 받아들였다면 그때 그때 오해를 풀어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팩트 위주로 사실에 입각해서 답변해 달라”고 지적했지만 강 장관은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는 눈치였다. 강 장관은 “외환보유고를 아껴야겠지만 필요할 때는 써야 한다”면서 “오늘도 50억달러의 유동성을 지원했는데 타이밍이 적절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강 장관은 집권 초기 고환율 정책을 탄력적 운용의 일환이라고 설명했고 나중에 환율을 인위적으로 끌어내린 것도 시의적절했다는 입장을 고수했는데 의원들은 이를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천문학적인 손실을 입지 않았느냐는 비판도 있었지만 실증적인 근거 자료가 없는 이상 입장이 맞서기만 할 뿐 강 장관의 주장을 반박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김효석 민주당 의원은 오전 국감 직후 기자실을 찾은 자리에서 강 장관이 자신의 발언과 관련, 기억이 나지 않거나 사실과 다르다고 답변한데 대해 “기자들 전체를 모욕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사실과 다르다면 그때그때 바로잡아야 할 텐데 그때는 가만 있다가 이제 와서 뒤늦게 오리발을 내미는 것은 경제 수장으로서 책임있는 태도라고 볼 수 없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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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Comment

  1. “…(전략)… 이는 경제학 원론에도 나오는 상식적인…(후략)…”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경제학원론을 가르치는 교수들에게 질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실런지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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