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고구마 파는 늙은이’라고 부르는 한 네티즌의 글이 가뜩이나 뒤숭숭한 시국에 여론을 뒤흔들고 있다. ‘미네르바’라는 아이디로 포털 사이트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서 활동하는 이 네티즌은 일찌감치 리먼브러더스의 부실과 환율 폭등 등을 정확히 예견한데 이어 구제적인 통계와 직설적이고 명료한 경제 전망으로 거대한 추종자 그룹을 만들어냈다.


그가 24일 “이제 한국의 IMF(국제통화기금)은 거의 기정사실로 보인다”는 제목의 글을 올려 위기설에 불을 댕겼다. ‘온라인 경제 대통령’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그는 “한국이 IMF 긴급 구제금융 대상 그룹에 포함돼 이사회 심의 의결을 앞두고 있다”고 경고했다. “외국에서는 이미 한국이 IMF에 들어간다는 걸 기정사실로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논란이 확산되자 다음날인 25일 기획재정부는 아고라 게시판에 국제금융국 명의로 “IMF의 한국지원설은 사실이 아닙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미네르바의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기획재정부는 리처드 머레이 IMF 상임이사의 말을 인용, “현재 한국의 경제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와는 현저하게 다르며 그때보다 훨씬 튼튼하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10년 전과 달리 외환보유액이 넉넉하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라도 국가 부도사태에 이르는 일은 없을 거라고 반박했지만 논란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한국이 불안하다는 외신 보도도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특히 경상수지 적자와 과도한 단기외채, 부동산 시장 둔화 등이 불안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미네르바는 “근거 없는 낙관이 전체를 지옥으로 몰아넣었다”며 “해외에서 대규모 달러화 차입 없이는 결코 금융 불안을 벗어날 수 없고 최악의 경우 환율이 1500원을 넘어 1800원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부의 지급보증이나 달러 스왑 협정만으로는 효과가 없고 당장 달러화 수혈이 급박하다”는 이야기다.

그동안 정부와 언론, 금융 전문가들은 외환위기까지 갈 정도는 아니라며 위기설을 일축해 왔다. 단기외채 대비 외환보유액이 낮은 것이 우려스럽지만 금융권 재무건전성을 우려할만한 수준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가계 대출 연체율도 낮고 부동산 부실도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미네르바의 지적처럼 부동산 거품과 가계 부실 우려는 여전히 우리 경제의 치명적인 뇌관이고 해외에서도 이를 우려하고 있다. 미네르바는 일본 부동산 가격이 1990년 이후 15년에 걸쳐 70% 이상 폭락한 사실을 지적하면서 우리나라도 향후 2년 동안 15%, 5년 동안 27~35% 하락이 불가피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제도권 금융 전문가들의 의견도 첨예하게 엇갈린다. 하이투자증권 박상현 연구원은 “실제로 외환위기로 갈 가능성은 적다고 보는데 대외환경이 급속도로 악화된다면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일부 선진국을 제외한 모든 개발도상국이 한꺼번에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별히 우리나라만 더 취약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NH투자증권 김종수 연구원은 “재무 건전성과 별개로 우리나라의 외화 수급 여건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것은 사실”이라며 “세계적으로 신용 경색이 확산되면서 정상적인 상황에서라면 가능했을 외채 상환이 어렵게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외국인의 시각이 바뀌기 전까지는 국내 펀더멘털에 대한 우려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대부분 전문가들은 제2의 외환위기를 둘러싼 논란이 다분히 과장됐다는 입장이지만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게 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핵심은 우리 경제 상황이 외국인 투자자들은 물론이고 우리 내부에서도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와 언론의 막연한 낙관론에 대한 불신도 심각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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