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그룹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배구조 왜곡 현상이 더욱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일부 언론이 이를 축소 보도하고 있어 주목된다.
6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28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의 지분 가운데 총수 일가가 직접 보유한 의결권 있는 지분은 지난 4월1일 기준 8.04%로 1년 전보다 0.01%포인트 증가하는데 그쳤다. 그러나 계열사와 임원 등의 내부 지분을 이용해 총수가 실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분은 40.51%로 0.78%포인트 늘어났다.
그 결과 보유 지분보다 얼마나 많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의결권 승수는 7.05배에서 7.39배로 높아졌다.
구체적으로는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일가의 지분이 3.57%인데 의결권은 28.88%로 의결권 승수는 8.09배나 됐다. 의결권 없는 우선주와 자사주 등을 포함한 전체 지분에서 총수 일가가 보유한 지분은 삼성이 0.84%로 가장 낮았고 SK 1.17%, 현대 2.04%, 금호아시아나 2.21%, 한화 2.29% 등의 순이었다.
상위 10대 그룹의 총수와 특수 관계인을 포함한 지분율은 1989년 13.1%에서 올해 3.6%로 줄어들었는데 계열사 지분율은 32.6%에서 43.9%로 늘어났다. 전체 내부 지분율도 45.7%에서 47.5%로 늘어났다.
이날 공정위 발표는 이른바 경제 민주화의 일환으로 논의돼 왔던 기업 지배구조 개선 작업이 오히려 후퇴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심각한 사안이다.
특히 이날 발표에서 주목할 부분은 금융 계열사가 지배권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향후 금산분리 논의와 관련해 정부의 정책 변화에 관심이 집중되는 대목이지만 대부분 언론이 이를 지적하지 않고 있다.
공정위에 따르면 17개 그룹이 56개의 금융회사를 거느리고 있으며 삼성(10개)과 한화, 동부, 동양(이상 각 7개)그룹이 많았다. 이 가운데 12개 그룹의 24개 금융회사가 68개 계열사(금융 30개, 비금융 38개)에 액면가 기준으로 총 1조5148억 원을 출자했고 이들 계열사에 대한 금융사의 평균 지분율은 9.74%였다. 금융 계열사를 통해, 고객들의 자산을 동원해 총수 일가의 의결권을 강화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먼저 중앙일보와 한국경제가 이 소식을 전혀 다루지 않은 것도 주목된다. 중앙일보는 여전히 삼성그룹의 위장 계열사라는 의혹을 받고 있고 한국경제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대 주주로 있어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동안 재벌 지배구조에 많은 관심을 가져왔던 경향신문과 한겨레의 논조도 비교된다. 경향신문이 2면 “재벌 총수 지분 8%로 의결권 40% 넘게 행사”와 19면 “총수 쥐꼬리 지분으로 그룹 맘대로 주무른다”에 걸쳐 이 소식을 비중있게 다룬 반면 한겨레는 상대적으로 적은 지면을 할애했다. 한겨레는 기사에서 삼성그룹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다른 신문들이 삼성그룹 총수 일가의 지분이 0.84%에 지나지 않으며 재계 서열이 높을수록 지배구조가 더 취약하다는 사실을 언급한 것과 대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