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럭 오바마가 대통령이 돼서 자동차가 안 팔리게 생겼다? 그렇다면 만약 존 매케인이 대통령이 됐다면 자동차가 더 잘 팔릴 수 있을까. 이 이상한 논란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조기 비준 논의와도 연결된다. 지금이라도 우리 먼저 비준을 해 놓고 오바마를 압박하자는 주장이 한나라당에서 흘러 나왔고 일부 언론이 맞장구를 치고 있다. 오바마가 망쳐놓기 전에 조지 부시 대통령과 체결한 한미 FTA에 못을 박자는 이야기다.
오바마는 당선 직후 첫 기자회견에서 자동차 산업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유세 때는 “한국은 수십만대의 자동차를 미국에 수출하는데 미국이 한국에 파는 자동차는 고작 5천대도 안 된다”며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오바마의 이런 강경 발언은 최근 미국 자동차 산업이 최악의 위기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동차 노조가 오바마에게 거액의 선거 자금을 지원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바마가 슬쩍 흘린 말에 국내 언론이 화들짝 놀래 호들갑을 떠는 것은 꼴불견이 아닐 수 없다. 세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오바마가 아무리 보호무역을 강화한들, 우리나라 자동차가 미국에서 안 팔리게 만들 방법이 없다. 또한 미국 자동차가 우리나라에서 더 많이 팔리게 만들 방법도 없다. 애초에 경쟁력이 떨어지는데 대통령이 나서서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미국 대통령이 막강한 권력을 가졌다고 하지만 갑자기 관세를 높이거나 힘없는 나라들에 강제로 할당을 매길 수도 없는 일이다.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는 3분기에 각각 25억달러와 13억달러(1조600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10월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달 대비 각각 45%와 30% 이상 줄어들었다. 특히 GM은 합병 소문에 이어 파산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GM과 포드, 크라이슬러 등 3대 자동차 회사가 모두 무너지면 300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오바마는 자동차 회사들에게 250억달러 가량을 단기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 자동차 산업의 몰락은 금융 위기가 실물 경제로 확산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오바마가 한국 자동차에 비난의 화살을 돌린 것은 구체적인 정책적 대안이 있다기 보다는 미국 국민들의 불안 심리를 노린 고도의 정치적 수사였을 가능성이 크다. 사실 우리나라 자동차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5%도 채 안 된다. 정작 40% 이상 미국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일본 자동차를 문제 삼지 않은 것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둘째, 이제 와서 오바마가 한미 FTA를 뒤집는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현재 우리나라 자동차가 미국에 수출할 때 관세는 2.5%인데 미국 자동차가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는 8%다. 만약 한미 FTA가 원안 대로 비준된다면 두 나라 모두 자동차를 관세 없이 수출하고 수입하게 된다. 이 경우 최종 소비자 가격 인하 폭은 미국 자동차 회사들이 훨씬 더 크다. 그런데 한미 FTA를 뒤집겠다? 정작 미국 자동차 산업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셋째, 오바마의 보호무역과 재정지출 확대 전략은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에 오히려 호재일 수 있다. 미국 자동차 산업의 침체는 경제 위기와 관련, 소비 심리가 급격히 얼어붙은 탓이다. 만약 오바마의 경제 정책이 성공한다면 소비 심리가 살아날 것이고 특히 소형차에 경쟁력이 있는 현대자동차 등은 수출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언론의 호들갑과 달리 오바마는 오히려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에 거의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또 하나 눈여겨 볼 부분은 우리나라 자동차 회사들이 미국 현지 생산을 늘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아자동차는 내년부터 미국 조지아주 공장에서 연간 30만대 이상을 생산할 계획이고 현대자동차는 이미 2005년부터 알라배마주에서 비슷한 규모의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미국 공장에서 생산하는 물량이 전체 미국 판매의 60%를 차지하는 상황이라 애초에 관세의 영향이 크지 않다는 이야기다.
결국 오바마의 한국 자동차 관련 발언은 단순한 립 서비스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국내 언론 보도는 꿈보다 해몽이 더 좋은 격이다. 특히 일부 언론이 자동차 산업이 위기에 직면했다며 한미 FTA를 조기 비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상식 밖이다. 최근에는 오바마 역시 FTA 조기 비준을 원하고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주장까지 흘러 나오고 있다.
중앙일보는 “오바마 정부가 한미 FTA 가운데 자동차 분야의 추가 협의 또는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한미 FTA를 조속히 비준해 우리 정책의 일관성을 세계에 보여야 한다”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이준규 팀장의 칼럼을 게재했다. 동아일보는 “미국 경제계 인사들과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주요 인사들이 한국이 먼저 FTA를 비준해 주면 도움이 되겠다는 메시지를 수차례 전달해 온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매일경제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자동차 산업에 격변이 예상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한겨레도 “민주당이 자동차 산업을 강력히 지원하기로 함에 따라 한미 FTA의 미국 의회 비준 가능성은 더 한층 불투명해졌다”고 전했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시장 만능주의자인 조지 부시 대통령과 달리 한미 FTA가 오바마 자신의 지지 기반인 저소득 계층의 삶을 피폐시킬 뿐이라는 현실을 꿰뚫어본 것”이라고 해석해 눈길을 끌었다. 경향신문은 “오바마가 그동안 자동차를 문제 삼았지만 그 핵심은 자동차 산업으로 대표되는 미국 제조업의 해외 유출과 고용 불안에 있다”면서 오바마를 변호하기까지 했다.
오바마가 FTA를 반대하는 것은 저소득 계층의 삶을 걱정해서라기 보다는 한미 FTA와 관련, 좀 더 유리한 조건으로 재협상을 끌어내기 위해서일 가능성이 크다. 오바마는 철저하게 미국의 이해, 특히 미국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사람이다. 한미 FTA 때문에 미국 자동차가 안 팔린다는 오바마의 주장도 사실과 다르지만 이를 핑계로 한미 FTA를 빨리 비준해야 한다는 보수·경제지들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억지와 왜곡이다.
(오바마에게 묻고 싶다. 안 팔리는 당신네 자동차를 우리 보고 어쩌란 말인가. 한미 FTA를 조기 비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부 언론에게 묻고 싶다. 오바마는 결국 미국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미국 대통령일 뿐이다. 오바마도 결국 한미 FTA를 찬성할 것이라고 예견하는 동아일보와 한국일보가 차라리 솔직해 보인다.)
왠만하면 덧글 잘 안다는데…완전 공감하네요. ^^
Obama는 미국의 이익을 대변합니다.
미국에서 잘 팔리는 Toyota, Honda 등 일본차에 대해서는 얘기도 꺼내지 못하고
애꿎은 한국산 자동차만 이야기 하네요.
현대,기아 등 한국 자동차가 미국시장 점유율을 더 높여야 저런 발언을 하지 않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