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공장 한국타이어, 직업병 관련 요관찰자 701명 은폐 의혹.
한국타이어 집단 돌연사 사건의 핵심은 이들의 발병 원인이 이 회사 작업장에서 상시적으로 사용하는 벤젠과 톨루엔 등 유기화합물질 때문이냐 아니면 직무와 관련 없는 개인적인 질병일 뿐이냐를 가려내는데 있다. 언론은 그동안 노동청과 산업안전보건연구원 등의 조사결과를 인용해 아직까지는 직무 연관성이 밝혀진 바 없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 2년여 동안 15명의 노동자들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디어오늘이 확보한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 자료에 따르면 이 회사에 재직했거나 재직 중인 직원들 가운데 1992년부터 2006년까지 사망자가 무려 93명에 이르는데 이 가운데 양성 또는 악성 종양으로 숨진 사람이 30명, 순환기 질환으로 숨진 사람이 18명이나 된다. 한국타이어 의문사 대책위원회는 대전지방노동청 자료를 인용해 암 질환 및 중증환자가 108명, 유기화합물 중독 및 증증질환 추정환자가 650명에 이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노동청 보고서에는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실시한 건강진단 결과 전체 9789명 가운데 직업병 관련 요관찰자가 720명, 일반질병 요관찰자가 709명, 일반질병 유소견자는 381명으로 나타났다. 1998년부터 2007년까지 산업재해 관련 사망자가 11명, 이 가운데 유기화합물질 관련 사망자는 1명으로 기재돼 있다. “화학물질에 의한 질병 유소견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는 한겨레 등의 보도는 명백한 오보인 셈이다.
또한 산업재해 승인 현황을 살펴보면 최근 10년 동안 유아무개씨 등 6명이 유기화합물질과 관련, 급성골수성 백혈병 등으로 이미 산업재해 판정을 받고 치료 중이거나 숨진 사실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언론 보도와 달리 집단 돌연사와 유기화합물질의 상관관계가 이미 충분히 확인된 바 있다는 이야기다. 직무 관련성이 인정돼 산업재해 판정을 받는 경우가 극히 일부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실제 피해자는 훨씬 더 많을 수도 있다.
대책위 김홍남 부장은 “지난해 12월 노동부가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720명의 직업병 요관찰자들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고 당연히 어느 언론에도 보도되지 않았다”며 “한국타이어는 즉각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대대적인 특별 근로감독과 요관찰자 1810명에 대한 집단 역학조사와 과거 발병시기, 유해물질 노출과 사용 빈도 등을 추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부장은 “93명의 사망자들에 대해서도 진상조사와 적절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타이어 집단돌연사, 한겨레 왜곡보도 논란.
“화학물질 질병 유소견자 한명도 없어” 정정보도 요청에 묵묵부답.
한국타이어에는 화학물질에 의한 질병이 의심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한겨레의 한국타이어 집단 돌연사 관련 보도를 두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타이어는 최근 2년 남짓한 동안 최소 13명 이상의 노동자가 심장질환 등으로 숨져 직무 관련성과 작업장 환경 관련 여부를 두고 의혹이 집중되고 있는 기업이다. 지난 10일에는 대전공장 직원 김아무개씨가 지난 6일 폐결핵이 의심되는 증세로 숨지기도 했다.
한겨레는 지난달 13일 9면, “‘집단 돌연사’ 한국타이어 추가 역학조사 거부 ‘배짱'”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타이어가 추가 역학조사를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비중 있게 보도한 바 있다. 한겨레는 이 기사에서 직접적인 발병 원인을 밝히기 위해 추가 역학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도 집단 돌연사와 유기화합물질의 상관관계가 밝혀진 바 없다는 회사 쪽 주장을 비판 없이 그대로 인용했다.
한겨레는 이 기사에서 “산업재해의 부실한 예방체계도 문제라는 지적이 있다”면서 “집단 돌연사라는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지만 정작 한국타이어에서 2005년부터 3년 동안 실시한 특수 건강검진에선 화학물질에 의한 질병 유소견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한겨레는 14일 사설에서도 “구체적으로 작업장의 어떤 요인이 건강에 영향을 끼쳤는지 파악하진 못했고 이번 추가 조사를 통해 이 부분을 밝혀내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겨레의 기사와 달리 지난 6월 대전지방노동청이 작성한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노동자 1959명에 대한 건강진단 결과표에 따르면 질병 유소견자가 151명, 이 가운데 유기화합물과 관련된 질병 유소견자가 무려 138명에 이르는 것으로 타나났다. 8월에 작성한 금산공장 노동자 1176명에 대한 결과에서도 질병 유소견자가 62명, 이 가운데 37명이 유기화합물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타이어 유기용제 의문사 대책위원회 김홍남 부장은 “지난달 9일 기자회견을 했는데 한겨레 기자도 왔다”면서 “그 자리에서 이 자료를 모두 공개했는데 이를 못 봤을 리 없다”고 주장했다. 대책위 박응룡 위원장은 “한겨레의 기사는 회사 쪽 주장을 그대로 받아쓴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위원장은 “한겨레에 정정보도를 요구했지만 아직까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기사를 쓴 한겨레 최원형 기자는 “대전지방노동청에 확인 결과 화학물질에 의한 질병 유소견자가 단 한 명도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다. 사회팀장을 맡고 있는 이수범 기자도 “질병 유소견자가 있다는 건 대책위 쪽 주장일 뿐”이라면서 “의학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라 일방적으로 그쪽 말만 듣고 쓸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단정적인 표현을 쓴 것은 사실이지만 정식으로 정정보도 요청을 받은 바는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박 위원장은 “수많은 노동자들이 죽어나가고 있는데 노동청이나 회사는 아직 직무 관련성 등이 밝혀진 바 없다는 주장만 되풀이 하고 있고 언론이 이를 생각 없이 받아쓰면서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박 위원장은 “이미 숱하게 드러난 정황을 무시한 채 요식적인 역학조사로 직무 관련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면서 “언론이 그 들러리를 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대전지방노동청 산업안전과 관계자도 “유기화합물 취급 부서에서 일하는 직원들 가운데 질병 유소견자가 다수 있지만 직무와 관련성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한겨레의 기사에는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한국타이어 홍보팀 관계자도 “화학물질에 의한 질병 유소견자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들의 주장은 한결같이 일반적인 질병일 뿐 직업병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2월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역학조사에서는 유기화합물질이 문제가 아니라 연장근무 등 스트레스와 과로가 원인이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결론이 나오기도 했다. 대부분의 언론은 그나마도 아예 침묵했고 관심을 보이는 일부 언론도 이 조사결과에 아무런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박 위원장은 “스트레스와 과로로 심장병과 폐암에 걸려 죽는다는 게 말이나 되느냐”고 반문했다. 박 위원장은 “언론의 침묵도 문제지만 왜곡보도가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