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19일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수많은 시위대가 죽창을 휘두르는 장면이 전 세계에 보도돼 한국 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었다”고 폭력시위에 엄정 대처할 것을 주문했다. 추모집회의 만장 깃대로 쓰였던 이 대나무 막대를 경찰도 “죽봉”이라고 불렀는데 대통령이 굳이 “죽창”이라고 고쳐 부르는 걸 보면 추모집회의 본질은 간과하고 폭력시위만 부각시킨 보수 언론의 프레임이 성공적으로 작동했다고 볼 수 있다.
이날 국무회의에서 이 대통령은 또 깜짝 놀랄만한 발언을 했는데 “금융기관이란 용어가 관치금융시대의 느낌이 나는데 이를 금융회사 등으로 용어를 변경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한 것이다. 이에 이석연 법제처장이 금융기관을 대체할 용어가 있는지 검토해 보라고 지시하면서 공무원들 사이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단순히 용어만 바꾼다고 될 일이 아니라 수많은 법조문을 모두 뜯어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과거 금융이 정부 소유였을 때 금융기관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지금 시대에 적합한 용어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는데 이 자리가 처음이 아니라 과거 대통령 후보자 시절에도 “일개 회사를 어떻게 기관으로 봐주느냐”고 말한 적이 있고 지난해 금융위원회 업무 보고 때는 “한국의 금융산업은 수십년 동안 금융기관으로 불리며 권력기관 역할을 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의 일련의 발언은 금융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에 대한 낮은 인식 수준을 드러낸다고 볼 수밖에 없다. 국립국어원이 펴낸 국어대사전에는 “기관”의 뜻을 “사회생활의 영역에서 일정한 역할과 목적을 위하여 설치한 기구나 조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회사”는 “상행위 또는 그 밖의 영리 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사단 법인”을 말한다. 그런데 우리의 대통령은 금융은 기관이 아니라 회사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일보는 “기관이란 단어 자체가 공적 조직만 뜻하지 않는데다 영어의 파이낸셜 인스티튜션을 번역하기로 금융기관만 한 대안이 없다”고 지적했다. 머니투데이는 “단순히 용어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금융기관을 바라보는 이 대통령의 시선 자체가 곱지 않다는 게 청와대 안팎의 중론”이라면서 “정확히는 권력기관화된 금융기관, 그리고 이를 조정해 온 이른바 모피아에 대한 반감을 이 대통령은 숨기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헤럴드경제는 “한때 은행들이 정부 주도였던 건 사실이지만 지금은 정부 개입이나 간섭이 없어졌기에 은행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 같다”는 청와대 관계자의 설명을 덧붙였다. “은행도 회사 개념으로 가야 경쟁력이 확보되고 경제 살리기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게 대통령의 생각인 것 같다”는 이야기다. 이 신문은 “딱딱한 금융기관이라는 용어가 사라지고 금융회사란 말로 대체될 전망”이라고 치고 나가기도 했다.
지난해부터 불어닥친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와 세계적으로 확산된 금융 불안은 이와 관련, 중요한 시사점을 안겨준다. 금융기관 또는 금융회사들의 영리적 활동이 시스템의 안정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정부는 이를 방치하지 못한다. 세금을 풀어 자금을 지원하고 부실자산을 사주기도 하고 보증도 해주고 최악의 경우에는 금융기관을 통째로 정부 소유로 바꾸기도 한다.
금융산업이라는 게 중세시대 고리대금업자들의 돈 놓고 돈 먹기 수준이라면 굳이 정부가 개입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현대의 금융산업은 신용을 창출한다. 특히 은행은 예금보다 훨씬 많은 돈을 대출해 줄 수 있기 때문에 엄격한 규제가 따르지 않으면 무분별한 자산운용이 지급불능 사태로 이어져 자칫 시스템 자체가 붕괴될 수도 있다. 그래서 철저하게 진입을 제한하고 사회적 책임을 부과하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관치금융의 시대가 끝났다는 전제 아래 금융의 공공성과 금융에 대한 사회적 통제조차도 부정하고 있다. 기업 CEO 시절 기억을 되살려 권력화한 금융기관에 대한 반감이 작용한 탓일 수도 있다. 정부가 금융기관을 쥐고 흔들어서도 안 되고 금융기관이 기업들에 부당한 권력을 행사해서도 안 된다는 이야긴데 결국 관치의 대안은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시장원리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정경유착으로 얼룩져 재벌 대기업에 특혜를 베풀었던 과거 관치금융의 폐해를 되풀이 해서는 안 되겠지만 금융산업을 시장원리에 맡겨두겠다는 발상은 금융기관을 잇달아 국유화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사례와 견줘서도 답답하기 짝이 없다. 문제는 관치 자체가 아니라 ‘관’이 어떻게 ‘치’하느냐다. 금융이 ‘기관’이라서 문제가 아니라 ‘기관’으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한갓 ‘회사’처럼 행동하는 게 문제다.
이런 맥락에서 “일개 회사를 어떻게 기관으로 봐주느냐”는 이 대통령의 수준 낮은 현실 인식은 ‘죽창’을 휘두르는 폭력집회보다도 더 부끄러운 일이다. 금융은 지금 ‘관치’가 문제가 아니라 ‘방치’가 더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