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0월부터 손해보험사의 실손형 개인의료보험의 보장 범위가 최대 90%로 제한된다. 실손보험이란 달마다 일정 금액의 보험료를 내는 대신 아파서 병원에 가게 되면 치료비를 대신 내주는 보험을 말한다. 건강보험공단에서 일부 비용을 대겠지만 그 나머지 본인부담금을 손보사에서 낸다는 이야기다. 입원치료비는 전액 손보사가 부담하고 외래진료비와 약값은 5천~1만원 정도만 내면 된다.


그런데 금융위원회가 병원비의 10%는 본인이 부담하게 하되 최대 200만원이 넘지 않도록 감독규정을 바꿨다. 그런데 그 이유가 석연치 않다. 첫 번째 이유는 병원비를 손보사가 100% 부담해주면 병원을 더 자주 가게 되고 그렇게 되면 건강보험의 재정이 약화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손보사 재정 역시 취약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위가 손보사들 주머니 사정까지 걱정해서 배려해주는 건데 손보사는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금융위의 주장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누가 그 10%가 있고 없고 때문에 일부러 병원을 더 자주 가게 될까? 게다가 건강보험 재정이 걱정된다고 환자들 부담을 더 늘려야 한다는 발상도 상식적이지 않다. 병원비가 공짜라고 한번 갈 병원을 두세번 가게 될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게 문제가 되나. 손보사가 손해보고 보험을 팔까봐 걱정된다고? 세상에 손해보고 하는 장사가 어디 있나. 그럼 아예 보험을 팔지 않거나 보험료를 더 올리거나 하겠지.

실손보험 논란의 이면에는 손보사들과 생명보험사들의 갈등이 있다. 생보사들은 보장범위가 80%인 보험을 팔고 있다. 그런데 손보사들이 100%인 보험을 팔고 있으니 따져보면 경쟁력이 떨어질 것은 당연한 이야기. 생보사들이 광범위한 개인 고객들을 확보하고 있는 반면 손보사들은 주로 기업 고객들이 많은데 손보사들이 실손보험 시장을 집어 삼키고 있으니 생보사들은 이를 경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보건복지부는 생보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금융위도 한때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침해한다며 반발하다가 갑자기 입장을 바꿔서 생보사들 편에 섰다. 엉뚱하게도 건강보험 재정 악화를 핑계로 내걸었지만 결국은 생보사들과 손보사들의 밥그릇 싸움이라는 게 업계의 지배적인 판단이다. 금융위가 개별 보험상품의 보장범위를 제한하고 나선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명박 정부가 강조하는 시장원리나 규제완화 기조에도 벗어난다.

논란의 중심에는 2007년에 작성된 한국개발연구원의 보고서가 있다. 해묵은 보고서지만 핵심은 민영의료보험에 가입했더라도 병원을 더 자주 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20대와 암 환자들의 경우 보험 가입자가 병원을 더 자주 찾는 것으로 분석되지만 다른 연령대나 일반 환자들은 오히려 반대였다. 이를 두고 손보사와 생보사들은 입맛대로 해석을 내놓고 있다. 업계 이익을 두고 논쟁을 벌이면서 애먼 건강보험 재정 걱정을 하고 있는 셈이다.

대부분의 언론은 어느 한쪽 편도 들지 않는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밥그릇 싸움으로 보는 견해도 많지만 본질을 미묘하게 빗겨나고 있다. 본질은 실손보험의 보장한도를 80%로 할 것이냐 100%로 할 것이냐가 아니라 건강보험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서 건강보험으로 100%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용 대비 효과로 보면 건강보험이 생보사나 손보사의 실손보험보다 훨씬 효율적인 것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아울러 허무맹랑한 이유로 생보사를 감싸고 도는 복지부나 금융위도 비판을 받아야 한다. 핵심은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이 아니다. 결국 건강보험이 보장하지 못한 나머지 40%를 누가 집어삼키느냐의 문제다. 금융위가 제 역할을 하려면 공정한 경쟁을 통해 합리적인 가격이 형성되도록 규제하고 감독해야 한다. 그런데 금융위는 가격 담합의 의혹이 있는 생보사들 손을 들어줬다.

복지부의 역할은 건강보험 재정이 구멍나지 않도록 하는 게 아니라 국민들이 병원비 부담 없이 병원을 찾을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100% 무상의료가 아닌 이상 부분적인 민영 의료보험은 불가피하겠지만 생보사나 손보사가 이런 시스템을 파고들어 폭리를 취하지 않는가 감시하는 게 복지부의 역할이다. 그런데 복지부는 거대 금융자본으로 성장한 생보사들 편에 서 있다. 언론은 핵심을 정확히 파고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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