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은 높이 1915m의 우리나라에서 한라산 다음으로 가장 높은 산입니다. 건물 1층을 2.5m로 잡으면 무려 762층 높이입니다. 걷다가 내려다보면 저 밑에 구름이 흘러가는 게 보입니다. 결코 만만하게 볼 산이 아니란 말이죠. 크고 작은 사고도 끊이지 않습니다. 처음 지리산 종주에 도전하는 분들에게 간단히 몇가지 도움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잘 정리된 자료를 찾기 쉽지 않은 것 같아서요.
흔히 지리산 종주라고 하면 성삼재에서 천왕봉까지 가는 코스를 말하는데 성삼재까지는 도로가 뚫려 있어서 버스나 택시로 올라가기 때문에 훨씬 수월합니다. 성삼재가 이미 1090m나 되기 때문이죠. 정확하게는 화엄사부터 천왕봉을 지나 대원사 유평리로 내려가는 코스를 제대로 된 종주 코스라고 부릅니다. 화대종주라고도 하고요. 모두 47.6km, 산행시간만 최소 14시간30분이 걸립니다. 여기에 쉬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 자는 시간을 더해야죠.
화엄사-성삼재-노고단산장-삼도봉-화개재-연하천산장-벽소령산장-세석산장-장터목산장-천왕봉-치밭목산장-유평리.
이게 종주 풀 코스입니다. 성삼재까지 차로 올라가는 방법이 있고 천왕봉에서 중산리로 내려가거나 다시 장터목으로 돌아와 백무동으로 내려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중간중간 샛길로 올라가거나 내려올 수도 있습니다. 지리산은 다른 산과 마찬가지로 취사가 전면 금지돼 있지만 산장에는 취사장이 마련돼 있어서 불을 피우고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습니다. 숙박은 7천원, 모포가 1천원씩입니다.
서울 용산역에서 구례구에 가는 마지막 기차가 저녁 10시50분에 출발해서 다음날 새벽 3시23분에 도착합니다. 이 기차를 타고 내려가 택시를 타고 성삼재로 올라가면 4시 무렵부터 산행을 시작할 수 있는데 굉장히 피곤합니다. 오후가 되면 졸려서 걷기 어려울 정도가 됩니다. 저도 늘 이렇게 가곤 했는데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차라리 조금 더 일찍 와서 노고단에서 자고 출발하는 게 훨씬 몸이 가볍습니다.
산장은 15일 전에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예약을 해야 합니다. 오전 10시에 예약 메뉴가 뜨는데 경쟁률이 심해서 거의 10초 만에 예약이 끝납니다. 예약을 못하면 일찍 도착해서 대기표를 받거나 아니면 산장 근처에서 비박을 해야 합니다. 침낭을 뒤집어 쓰고 자야 한단 말이죠. 예약을 하지 않고 가면 아무래도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면 아예 비박할 준비를 하고 가거나 말이죠.
저는 이번에 노고단산장에서 1박, 세석산장에서 2박을 하고 백무동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선택했는데 결코 만만한 코스가 아닙니다. 12시간 동안 산길 20km 가까이를 걷는 셈인데요. 특히 벽소령에서 세석으로 넘어가는 길이 몹시 힘이 듭니다. 물론 산을 잘 타는 사람들은 새벽에 노고단에서 출발해 거의 쉬지 않고 천왕봉을 거쳐 중산리까지 가기도 하지만 웬만큼 전문가가 아니라면 아예 엄두도 내지 않는게 좋습니다.
드리고 싶은 말씀은 결코 무리해서 산행 일정을 잡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리산 종주의 경우 산장과 산장의 거리가 꽤나 먼데다 해가 지기 전에 예약한 산장까지 가야하기 때문에 시간이 빠듯하기도 하고 마음도 조급해지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쉽게 지치기도 하고 좀 걷다 보면 주변 경치는 안 들어오고 자꾸 시계만 보고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확인하면서 조바심을 내게 됩니다.
제 생각에는 화대종주를 하려면 아침 일찍 출발해서 점심 전에 오르기 시작해서 노고단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은 넉넉히 벽소령까지만 가고 셋쨋날은 장터목까지 가서 다음날 새벽에천왕봉에 올라 일출을 보고 유평리로 내려가는 코스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연하천산장은 따로 사전 예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예약을 따로 안 했거나 첫날 여유가 있으면 연하천까지 가서 자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굳이 화대종주가 아니라 성삼재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노고단에서 한번에 세석이나 장터목까지 가는 것은 매우 벅찹니다. 결코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기로 가려면 못 갈 것도 없지만 그렇게 다녀오고 나면 종주 한번 했다는 것 말고는 남는 게 없습니다. 첫날 여유있게 벽소령까지만 가도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기만 하면 세석과 장터목을 지나 천왕봉을 찍고 중산리나 백무동으로 내려오는데 충분합니다.
그리고 장비를 제대로 갖춰야 합니다. 지팡이 2개는 필수. 무릎이 안 좋은 사람은 무릎 보호대도 필요하고요.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 반복되기 때문에 무릎과 발목이 많은 충격을 받게 됩니다. 언제 비가 쏟아질지 모르니 비옷도 있어야 합니다. 이른 새벽이나 해가 진 뒤에도 걸어야 할 수 있으니 헤드랜턴도 반드시 준비해야 합니다. 방수방풍이 되는 재킷도 꼭 필요합니다. 땀에 젖어도 쉽게 마르는 쿨맥스 소재의 셔츠를 입어야 하고요.
지리산은 워낙 등산로가 잘 관리돼 있기 때문에 길을 잃을 염려는 거의 없습니다. 다만 산장 사이 거리가 길게는 7km 가까이 되고 한여름에도 저체온증으로 죽는 사람이 있을만큼 언제라도 돌발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걸 염두해야 합니다. 갈아입을 여벌 옷도 준비해야 하고 배낭도 방수커버가 있는 걸로 준비하고 안쪽에 비닐을 깔아두는 것도 좋습니다. 초콜릿 같은 열량이 높은 음식도 충분히 준비해야 합니다.
걸으면서 힘을 내게 해줄 행동식으로는 육포와 땅콩이나 아몬드 같은 견과류, 오이도 좋습니다. 지리산에는 중간중간 샘터가 있기 때문에 물은 생수통 2개 정도면 충분합니다. 배낭이 너무 무거우면 아무래도 몸이 둔해집니다. 훨씬 쉽게 지치게 되고요. 꼭 필요한 장비들이 있겠지만 최대한 짐을 가볍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웬만한 먹을거리는 약간 비싸긴 하지만 산장에서 구입할 수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