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편법 승계 혐의로 파기 환송심 재판을 받고 있는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지난해 7월 1심 판결 직전에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의 손해액을 변제하고 양도소득세 등의 세금을 납부한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경제개혁연대는 14일 이 전 회장과 에버랜드·삼성SDS 대표이사, 그리고 서울중앙지법의 날인이 된 양형 참고자료를 공개하고 1심 법원에 이와 관련, 사실확인 요청을 했다고 밝혔다.
경제개혁연대가 의혹을 제기하는 대목은 이 자료에 포함된 변론 요지서에 이 전 회장이 에버랜드와 삼성SDS에 각각 969억원과 1539억원을 지급했다고 나와 있으나 이 회사들 감사 보고서에는 이 사실이 기록돼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에버랜드의 경우 지난해 영업외 수익은 323억원을 조금 넘는 정도다. 삼성SDS도 영업외 수익이 624억원에 그쳤다. 이 전 회장이 줬다는 돈은 어디로 간 것일까.
변론 요지서에는 이 전 회장이 양도소득세 포탈 금액인 1830억원을 이미 납부했고, 증여세액 4800억원을 납부할 예정이라고 기록돼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과연 이 전 회장이 이 약속을 지켰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경제개혁연대에 따르면 이 전 회장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쓴 손해 변제액과 뒤늦게 낸 세금을 모두 더하면 9139억원에 이른다. 과연 이 돈은 어디에서 어떻게 조달했을까. 실제로 내기는 한 것일까.
삼성특검은 삼성그룹 전현직 임원 명의로 된 차명자산이 2007년 말 기준으로 4조5373억원에 이른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실명전환된 것은 삼성생명 주식 2조3119억원어치와 삼성전자 보통주 224만주, 삼성SDI 보통주 39만주 정도, 이를 모두 더하면 2007년 말 시가 기준으로 3조5923억원에 지나지 않는다. 5천억원 이상 차명자산이 아직 실명전환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다는 이야기다.
한성대 김상조 교수는 “이 전 회장이 1심 판결 직전에 계열사들의 손해액과 양도소득세 포탈액 등을 변제·납부하고 증여세 납부 계획까지 밝힌 것은 재판부에 선처를 기대하기 위한 것으로 추측된다”면서 “이는 피고인으로서 자신의 방어권을 충분히 이용한 헌법적 권리행사라고 할 수 있지만 거액의 손해변제 및 세금납부 자금의 출처 및 차명재산의 처리 내역이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