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이 기록적인 홍수 피해로 신음하고 있는데 정부는 이를 4대강 살리기 사업의 명분으로 활용하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 홍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4대강 살리기 사업을 꼭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조금만 들여다봐도 상식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이 많은데 주목할 부분은 상당수 언론이 4대강 살리기 사업의 경제 효과 논란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17일 대한민국 정책포털에 올린 “4대강 살리기 아직도 의구심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4대강 살리기 사업에 책정된 예산 22조2천억 원은 최근 5년간 연평균 홍수 피해액 2조7천억 원이나 복구비 4조3천억 원, 예방투자비 5천억 원 등을 감안하면 많다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상식적인 의문은 과연 4대강 살리기 사업만 잘 되면 홍수 피해가 사라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라디오 연설에서도 “지난 5년 간 평균으로 보면, 연간 홍수 피해가 2조7000억 원이고, 복구비가 4조3000억 원이나 들었다”면서 “수질 개선 비용 등 다른 비용을 다 빼더라도 매년 7조 원이 넘는 돈이 땜질식으로 강에 투입됐다”고 4대강 살리기 사업의 명분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렇게 들어간 3년치 정부 예산만 들이면, 미래를 보고 강을 종합적으로 살릴 수가 있다”는 게 정부의 일관된 레퍼토리다.
그러나 최근 부산 지역의 참혹한 침수 사태와 전국 곳곳에서 일어난 산사태와 도로 유실, 하천과 계곡 범람 등은 4대강 살리기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 해마다 가장 많은 피해를 입는 곳은 4대강 유역이 아닌 강원도 산간 지역이다. 4대강을 살리면 강원도 산간 지역의 홍수 피해가 줄어드나? 4대강 살리기 사업이 태풍 피해까지 줄여줄 수 있나? 이런 상식적인 질문을 던지는 언론은 많지 않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정부와 건설업 관련 유관기관들이 주요 언론에 4대강 살리기 사업 관련 광고를 쏟아 부으면서 노골적으로 홍보 기사를 주문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실제로 최근 주요 일간지 지면에는 잇달아 4대강 살리기 사업 관련 광고가 실리고 있다. 온갖 논란에는 침묵하면서 정부 입장을 일방적으로 대변하는 낯뜨거운 홍보성 기사를 쏟아내는 곳도 많다.
경향신문과 한겨레,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을 제외하고 4대강 살리기의 경제 효과를 비판하는 곳은 거의 없다. 지난달 26일 한겨레가 소방방재청 자료를 인용해 “지난 10년 (1998~2007년) 동안 홍수를 비롯한 모든 자연재해의 연평균 피해액은 2조2262억 원이며, 이 가운데 4대강 수계의 자연재해 피해액은 1조2781억 원”이라고 밝힌 뒤 국토해양부가 해명자료까지 냈는데 다른 언론에는 이 사실이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국토해양부는 해명자료에서 “예시된 피해액은 전국의 태풍과 호우 피해 규모를 모두 더한 것”이라고 밝혔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을 하면 전국의 태풍과 호우 피해까지 모두 해결할 수 있나? 터무니없이 과장된 논리라는 사실이 밝혀진 뒤에도 이 대통령은 이를 라디오 연설에서 다시 강조했고 정부 역시 여전히 이런 논리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마치 기록적인 홍수 피해가 4대강 살리기 사업의 정당성을 뒷받침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설령 일정 부분 4대강 살리기 사업이 홍수 피해를 줄여준다는 가정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본류를 정비해서 지류의 홍수 피해를 예방한다는 주장은 많은 논란거리를 안고 있다. 전문가들은 본류의 수위를 낮춘다고 해도 지류의 수위가 낮아지는 효과는 수킬로미터 정도에 그친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4대강 정비도 중요하지만 지류와 하천 정비가 더 시급하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정부는 정책포털에 올린 글에서 “일부에서 이에 대해 4대강이 아닌 전국 하천 피해액이라며 과장됐다고 하는데 4대강 유역 면적이 전 국토의 약 70퍼센트를 차지하고 나머지 하천도 단계적으로 정비할 계획이므로 전국 통계치를 사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태풍 피해에 강풍에 의한 피해가 포함됐다는 지적도 있는데 호우와 강풍에 의한 피해를 구분하기는 어렵다”고도 덧붙이기도 했다. 이미 거짓으로 드러난 변명을 태연하게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워낙 어이가 없는 논리라는 걸 알기 때문인지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암묵적으로 거들던 보수·경제지들도 4대강 살리기로 홍수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은 하지 않는다. 정부만 온갖 비판에 아랑곳 없이 같은 논리를 되풀이 하고 있을 뿐이다. 동아일보만 용감하게 선봉에 서 있다. 동아일보는 15일 사설에서 “4대강 살리기도 물 폭탄과 이상 가뭄에 대응하는 인프라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정부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