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 법정관리인이 지난달 30일 협상 결렬을 선언하면서 밝힌 ‘청산을 전제로 한 회생 계획안’의 의도는 뭘까. 일단 청산형 회생계획은 회사의 자산을 처분해서 채권자들에게 분배한 뒤 청산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회사는 청산절차를 밟게 되는데 과거 대우자동차의 경우와 달리 쌍용차는 단일 공장이라 굿 컴퍼니와 배드 컴퍼니로 쪼개기가 쉽지 않은데다 세계적으로 자동차 회사 매물이 넘쳐나는 상황이라 인수 대상자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약간 긴데요. 석줄 요약 정리가 맨 아래 댓글에 있습니다.)
청산형 회생 계획안은 파산과 무엇이 다를까. 일단 청산형 회생 계획안은 청산이 목적이다. 그래서 해고를 하더라도 이를 정리해고로 보지 않는다. 이 경우 지금 공장에서 농성하고 있는 노조 조합원들 뿐만 아니라 모든 직원이 한꺼번에 고용관계가 종료된다. 결과적으로 보면 파산과 별 차이가 없다는 이야기다. 다만 매각 가격을 좀 더 높여 받을 수 있고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민주노총은 4일 성명을 내고 “사쪽이 밝힌 청산형 회생방안은 회생이란 단어만 붙어있을 뿐 사실상의 파산절차를 의미한다”면서 “파산은 법원이 정한 파산관재인에 의해 진행되는 반면, 청산형 회생절차는 법정관리인이 진행한다는 점만 다소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청산 도중 다시 일반회생 절차로 전환이 가능하지만 이는 파산절차 역시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다를 바 없다”고 덧붙였다.
민주노총은 또 “법정관리인의 파산입장 발표가 단지 스스로의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면서 “그간 끊임없이 제기돼온 정부의 쌍용차 기획파산설이 드디어 실행단계에 돌입한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애초에 쌍용차를 회생시킬 의지가 없었으면서 시간을 끌면서 교섭을 결렬시키고 파산으로 몰고 갈 명분을 쌓아왔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정부는 대외적으로는 개입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집하면서도 공공연히 파산 가능성을 언급해 왔다.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은 지난달 20일 “세계적으로 자동차 시장이 위축된 가운데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 중심의 쌍용차가 생존 가능성을 대단히 낮게 보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앞서 지난 3월에는 국내 5개 자동차 업체를 3개로 구조조정해야 한다는 지식경제부의 내부 문건이 공개되기도 했다. 지식경제부는 “실무 부서에서 초기 단계로 작성된 자료일 뿐 윗선에 보고되거나 검토된 바 없다”고 밝혔지만 논란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쌍용차 노동조합 이창근 기획부장은 “파산은 채권자인 산업은행, 즉 정부가 동의하지 않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에 법정관리인이 단독으로 결정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정부가 관여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 부장은 “하반기에 본격화 될 부실기업 정리를 앞두고 쌍용차 공적자금 투입이 선례가 되어선 안 된다고 보기 때문인 것 같다”면서 “원만하고 평화적인 해결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정부”라고 비난했다.
금속노조 이종탁 팀장은 “국민들에게 마치 파산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 위해 청산형 회생 계획안을 들고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리해고 대상자들 뿐만 아니라 사쪽 조합원들까지 모두 고용관계가 종료될 텐데 이런 사실이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 팀장은 특히 “파산이든 청산이든 법인이 해산되는 것이기 때문에 향후 상하이차가 쌍용차에서 유출한 기술을 이용하더라도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된다”고 덧붙였다.
향후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자산을 인수하거나, 둘째, 산업은행의 사모펀드에서 인수하거나, 셋째, 채권자들이 출자전환으로 자산을 인수하는 방안이 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방안인데 이 보다는 세 번째 방안이 유력하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 방안이 논란이 되는 건 우량자산만 모아서 별도 법인을 설립한 뒤 자연스럽게 고용관계를 종료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 때문이다.
이 경우 채권단은 손해볼 게 거의 없다. 특히 담보 채권자인 산업은행의 경우 2380억원에 이르는 평택공장 담보 채권이 1순위라서 전액을 회수하게 될 전망이다. 2순위인 직원들 임금채권 500억원을 변제하고 나면 무담보 후순위 채권인 협력업체들 매출채권 2670억원어치는 사실상 휴지조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채권단은 조기파산과 매각을 요구하고 있지만 채권단 공동 인수나 공기업화가 아니면 거의 건질 게 없는 상황이다.
민주노총과 쌍용차 노조는 여전히 기업 재건형, 그리고 고용 유지형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고집하고 있다. 상하이 자동차의 대주주 권리를 소각하고 노동자들 고용을 유지하면서 사회적 합의 아래 구조개혁이 진행된다면 회생이든 파산이든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법정관리인이 밝힌 청산형 회생계획은 애초에 매각과 고용관계 단절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이창근 부장은 “60% 정리해고라는 당초 입장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면서 일방적으로 교섭 결렬을 선언하고 단전·단수 및 청산형 회생계획안을 발표하는 일련의 과정은 잘 짜여진 시나리오였다”고 비판했다. 이종탁 팀장은 “청산형 회생계획안은 대주주와 금융 채권단의 이익만을 염두에 둔 막가파식 구조조정”이라면서 “채권단의 채권 회수가 목적이며 특히 매출 채권자보다 담보 채권자를 염두에 둔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노총 범국민 대책위는 이날 성명을 내고 “교섭결렬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면서 5000여 노동자 및 20만 연관 노동자들의 고용을 내팽개치고 채권단 이익만 챙기는 청산형 회생계획에는 분명히 반대한다”면서 는 청산형 회생절차에는 단호히 반대한다”면서 “사쪽과 경찰이 어떤 공세를 펼친다고 하더라도 파업 대오를 지키고 잘못된 구조조정을 막아내기 위한 연대 지원 활동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