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이 계획대로 내년 봄 상장하게 된다면 일등공신은 아이러니하게도 김용철 변호사라고 할 수 있다. 삼성그룹 사내 변호사였던 김 변호사가 2007년 삼성그룹 비자금 사건을 폭로하면서 삼성 특검이 시작됐고 수사 과정에서 이건희 전 회장의 차명자산이 드러났다. 이 전 회장의 삼성생명 지분은 4.54%였는데 차명자산을 더하자 20.76%로 불어났고 삼성생명의 최대주주가 됐다. 2대주주는 19.34%를 보유한 에버랜드였다.

결국 삼성 특검이 아니었다면 삼성생명의 상장은 불가능했을 거라는 이야기다. 에버랜드가 삼성생명의 대주주가 되면 금융지주회사가 되는데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라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7.21%를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전 회장 지분이 불어나고 에버랜드가 2대주주로 밀려나면서 이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됐다. 상장을 하더라도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을 그대로 보유할 수 있게 됐고 이 전 회장의 그룹 영향력도 그대로 유지된다.

변수는 있다. 삼성생명을 상장하면 1999년의 삼성자동차 부채 2조4500억원을 갚기로 약속이 돼 있기 때문인데 채권단은 여기에다 연체 이자까지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전 회장은 삼성생명 주식 350만주를 채권단에 담보로 제공하면서 이 주식을 모두 팔고도 부족하면 이 전 회장이 50만주를 추가로 내놓기로 했다. 만약 상장 이후 삼성생명 주가가 70만원에 못 미칠 경우 이 전 회장 지분이 줄어들게 된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이 전 회장 지분이 줄어들 경우 에버랜드가 다시 최대주주로 올라서게 된다는데 있다. 이 전 회장 입장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되는 셈인데 이 때문에 계열사들이 대신 이자를 분담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물론 여론의 눈치를 살펴야 하기 때문에 삼성으로서도 고심이 되는 대목일 수밖에 없다. 경제개혁연대 등은 “이 전 회장이 부담하는 게 맞다”는 입장인데 향후 이와 관련 격렬한 논란이 예고된다.

상장 차익의 배분 역시 논란거리다. 주가가 70만원이 된다면 이 전 회장의 지분은 3조1500억원에 이른다. 삼성그룹 계열사들 지분을 더하면 7조원이 넘는다. 논란의 핵심은 지금까지 삼성생명을 키운 것은 보험 계약자들인데 상장에 따른 이익을 주주들이 모두 챙기는 것이 옳으냐 하는 부분이다. 상장 이후 이익이 나면 주주들에게 배당으로 돌아갈 텐데 과연 계약자들은 보험회사의 이익에 아무런 권리도 없는 것인지도 논란이 될 전망이다.

그런데 보험회사들은 적어도 법적으로는 이미 2007년에 이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한 상태다. 보험회사들은 상장 차익을 계약자들에게 배분하지 않는 대신 향후 20년 동안 1조5천억원의 공익기금을 조성하기로 했다. 그러나 금융감독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년 동안 18개 보험회사들이 출연한 공익기금은 955억8344만원 밖에 안 됐다. 계약자들 돈으로 생색을 내면서 그나마도 당초 약속에 턱없이 못 미치는 규모라는 이야기다.

삼성생명의 상장 관련 언론 보도가 쏟아졌지만 이런 문제들을 제대로 짚고 있는 곳은 한겨레 정도밖에 없다. 상당수 신문들이 시민단체들의 반발을 소개하면서도 삼성생명에 면죄부를 주고 있고 경제지들은 낯 뜨거운 찬사를 늘어놓고 있다. 한국경제는 사설에서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글로벌 규모의 보험회사가 나와야 한다”면서 “삼성생명 상장의 발목을 잡는 불필요한 논란은 더 이상 없어야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겨레와 달리 경향신문의 비판의 칼날이 상대적으로 무뎌진 것도 눈길을 끈다. 이 신문은 “이 전 회장이 조 단위의 상장차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정작 계약자들 이익 배분 문제는 건드리지 않았다. “상장은 미래 성장동력 확보 및 글로벌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도 중요한 과제”라는 삼성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면서도 정작 시민단체들의 반발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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