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 회생이 결정됐다. 법원이 17일 쌍용차 법정관리인이 제출한 회생계획 수정안을 강제인가 결정을 내리면서 청산 위기를 모면하게 됐다. 18일 대부분 언론이 이 소식을 비중있게 전하고 있는데 주목할 부분은 해외 매각을 유력한 대안으로 꼽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 상하이자동차에 팔려갔다가 4년 만에 법정관리 신세로 전락한 전철을 되풀이할 우려는 없을까. 상하이차라서 문제였지만 다른 회사는 괜찮을까.
법원이 인가한 회생계획안에 따르면 쌍용차는 출자전환과 감자를 거쳐 상하이차가 11%, 일반주주가 17%, 채권자가 72%의 지분을 확보하게 된다. 문제는 현재 개발 중인 C200이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향후 신차 개발에 필요한 투자비용을 확보할 방안이 없다는데 있다. 법정관리인과 채권단이 해외 매각을 유일한 대안으로 꼽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대 채권자인 산업은행은 추가 출자는 없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한 바 있다.
대부분 언론이 조심스럽게 쌍용차의 정상화 가능성을 내다보고 자생력 확보를 주문하면서도 결국 매각이 해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자가당착적이다. 이미 천문학적인 규모의 공적자금이 들어가 있다. 그런데 자생력을 갖춘 다음 해외에 내다 판다? 일부 언론에서는 벌써부터 매각주체로 이탈리아 피아트 등을 거론하고 있다. 소형차에 경쟁력을 갖고 있는데다 아시아 지역에 진출하지 않아 쌍용차를 인수할 경우 시너지 효과가 클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세계일보는 “쌍용차 회생의 열쇠는 소비자 신뢰회복을 통한 판매확대와 M&A 성패에 달려 있다”고 평가했고 서울신문은 “채권 금융단이 신규 자금조달의 전제조건으로 회생계획안 인가와 인수합병을 내걸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유일 쌍용차 공동관리인은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3자 매각을 위해 해외의 몇몇 업체와 접촉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경향신문도 “결국 막대한 투자비를 댈 새 주인을 찾는 게 궁극적인 해결책”이라고 진단했다.
쌍용차가 다시 해외에 매각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그 전제조건이 있다. 독자생존을 하더라도 연구개발 비용을 조달하기 어려운 경우, 그리고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추가 자금지원을 거부하는 경우, 국내에서 마땅한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 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쌍용차의 해외 매각은 현재로서는 성급한 판단이다. 새로운 인수자가 상하이차처럼 ‘먹튀’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금호아시아나그룹에 팔려갔다가 다시 매물로 나온 대우건설이나 민영화를 앞두고 있는 우리은행이나 산업은행 역시 마찬가지다. 대부분 언론이 이들 기업들을 단순히 시세차익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얼마에 팔 것인가가 언론의 유일한 관심이다. 대우건설은 아랍에미리트연합의 자금지원을 받는 사모펀드 자베즈파트너스에 매각이 임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은행이나 산업은행도 쪼개팔기나 합병 후 매각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논의되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대안은 없을까. 지난 10일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 등 주최로 국회도서관에서 열렸던 “바람직한 기업매각의 해법”이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김석연 정책위원은 “기업의 구조조정과 관련하여 기업의 중요한 이해관계자인 노동조합의 의견을 반영시킬 통로가 없다”면서 “종업원 1천명 이상 대기업인 경우 기업의 전체 이사의 3분의 1 이상을 노조가 추천하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은 또 “노동자기금제도를 도입해 노동자들이 자사주 형태로 기업의 일정 지분을 장기간 보유하면서 기업의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구체적으로는 노사 공동부담으로 재단법인 성격의 기금을 조성하여 자사주에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방안도 가능하다. 자사주의 처분 및 관리에 관한 권한을 노조가 행사하면서 퇴직금의 출연을 가능하게 하고 정부가 세제지원을 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김욱동 대우건설 노동조합 위원장은 “한국 기업문화에서 가장 큰 문제는 최대주주가 경영권을 좌지우지하는데 있다”면서 “기업매각에서도 최대주주가 경영권 프리미엄을 독차지하면서 매각단가가 올라가고 인수자 쪽에서는 투자대금 환수를 위해 고액배당과 ‘먹튀’를 선택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공정가격을 상회하는 차액에 고율의 증여세를 부과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우건설 인수와 관련 가장 큰 문제는 재무적 투자자들에게 보장된 풋백옵션이었다”면서 “주가가 하락할 경우 우발채무가 되는데 이런 위험이 재무제표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대우건설의 경우 풋백옵션이 명백하게 차입금 성격이었는데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에 반영되지 않았다. 쌍용차와 대우건설 재매각에 이런 이면계약이 없다고 장담할 수 있느냐는 이야기다.
김 위원장은 “매입한 지분의 보호예수를 비롯해 인수자금의 상환계획이나 재무구조 개선계획과 그 이행여부에 대한 감독당국의 사후보고 등의 규제를 신설해서 투기적인 기업인수 수요를 억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특히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후에는 인수 대상자의 자본구성 등을 공표해서 시장에서 이를 판단하도록 하고 정보의 비대칭을 이용한 부당이익의 가능성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 정용건 위원장은 “과거 기업 인수합병의 주요 목적이 수직적·수평적 다각화와 미래 성장 동력 확보 차원의 신사업 진출이었다면 신자유주의 금융주도적 축적체제에서는 자본이득이 주된 목표로 변질됐다”고 지적했다.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이종탁 부소장은 “무작정 해외매각을 반대할 것이 아니라 국민의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사회적 운영구조를 확보하는 적극적인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적자금 회수 또는 매각차익 극대화를 최우선 목표로 두기 보다는 고용 안정과 사회적 가치를 함께 고민하자는 이야기다. 필요하다면 사회적으로 비용을 분담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경실련 김석연 위원은 “공적자금을 투입한 기업을 매각할 때 고용 계획을 평가하거나 일정 기간 동안 고용유지를 의무화하는 등 원칙을 추가하자”고 제안했다. 쌍용차의 해외매각을 기정사실화하면서 거간꾼 행세를 하는 언론의 조급증이 우려스러운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