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규모 도심 재개발 임박… 제2 용산참사 올 것.”
용산참사 1주년이 다가오고 있다. 뜨거운 불길에 비명횡사한 희생자 5명은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채 차가운 시신으로 지난 11개월을 버텼다. 검찰은 수사기록 공개를 거부했고 여전히 책임공방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법원이 농성 참가자 9명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유가족들을 비롯해 철거민들은 생계가 막막한 상황이다. 계절이 네 번 바뀌어 다시 겨울이 됐지만 용산의 시계는 1월20일에 그대로 멈춰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이들을 보상금 몇 푼 더 받아내려고 망루에 오른 탐욕스러운 사람들로 매도한다. 이런 오해는 용산참사를 도심 재개발 과정에서 벌어지는 어쩔 수 없는 충돌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당신들이 화염병을 던지지 않았다면 끔찍한 참사로 이어지지 않았을 거 아니냐는 이야기다. “살기 위해 망루에 올랐다”는 이들에게 우리 사회는 “당신들만 힘드냐”고 묻는다. 용산은 서울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받아들여진다.
용산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는 철거될 걸 알면서도 보상금을 받으려고 위장 입주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철거민 문제를 볼 때 주거 세입자와 상가 세입자를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는데 이번 용산 철거민들은 대부분 상가 세입자들이다. 보상금을 노리고 철거 직전에 주거 세입자가 늘어난 정황이 발견되지만 이들은 대부분 보상을 받고 나갔고 상가 세입자의 경우는 아예 있을 수가 없다는 게 용산참사 범국민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범대위에서 활동하고 있는 빈곤사회연대 이원호 교육위원은 “주거 세입자의 권리는 지속적으로 개선돼 왔지만 상가 세입자들은 여전히 쫓겨나면 갈 곳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한다. 주거 세입자들은 4인 가족 기준으로 1200만원의 주거 이전비를 받거나 완공 후 임대주택 분양권을 받는 등의 다양한 선택의 여지가 있지만 상가 세입자들은 3개월의 휴업 보상금이 전부다. 이 정도로는 어디 가서도 같은 영업을 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다.
주거 세입자들이 최소 철거 1년 전에 철거 사실을 알게 되는 것과 달리 상가 세입자들은 관리처분 인가를 받고 나면 1~2개월 안에 곧바로 철거가 시작된다. 이들은 감정평가가 끝나기 전까지 휴업 보상금을 얼마나 받을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더더욱 무방비 상태일 수밖에 없다. 휴업 보상금의 기준이 모호한 경우도 많고 대개는 총액이 미리 결정돼 있는데다 감정평가 기준과 내역이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불만이 없을 수가 없다.
용산 철거민들의 요구는 단순히 보상금을 더 많이 달라는 것이 아니다. 보상금 몇 푼 더 받겠다고 목숨을 걸고 망루에 오를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이들의 요구는 재개발 사업이 끝날 때까지 공원부지 등에 임시로 장사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고 재개발이 끝나면 임대상가를 분양해 달라는 것이다. 고작 3개월의 휴업 보상금으로는 아무데도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게 과연 터무니없이 지나친 요구일까.
권리금 역시 핵심 쟁점이지만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제도인데다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없는 세입자들끼리의 거래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지만 상가의 무형의 가치와 건물주가 얻게 되는 개발이익에 세입자들이 조성한 상권의 가치가 포함돼 있다는 주장도 있다. 세입자들이 권리금을 송두리째 잃게 되는 반면 건물주들이 개발이익을 독차지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이야기다.
“용산 재개발 사업은 민간개발이지만 민영사업이 아니라 공익사업입니다.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관리하고 감독할 책임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있다는 겁니다. 건설회사와 땅주인들의 개발이익을 최대한 환수해야 하고 필요하다면 정부가 재정을 지출해서 공공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세입자들에게도 충분한 보상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땅따먹기 하라고 금만 그어주고 있는 상황이죠.” 이 위원의 이야기다.
용산참사 범대위의 요구사항은 크게 다섯 가지다. 첫째, 정부의 사과, 둘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셋째, 유가족들의 피해보상, 넷째, 철거민들의 생존권 보장, 다섯째, 구속자들의 석방과 수배자들의 수배 해제 등이다. 유가족들의 문제는 당장이라도 해결 가능하지만 결국 철거민들의 생존권 보장이라는 근본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또 다른 용산참사가 재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위원은 “용산에서부터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당장 내년과 2011년에는 서울 전역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도심 재개발 사업이 예정돼 있다. 서울시민의 15%가 영향을 받게 된다. 정부가 용산참사 이후 휴업 보상금을 3개월에서 4개월로 늘리는 등 세입자 보호대책을 일부 개선했지만 철거민들의 상황은 큰 차이가 없다. 지금 용산을 해결하지 못하면 제2, 제3의 훨씬 더 끔찍한 용산참사가 서울 곳곳에서 벌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토지정의시민연대 이태경 사무처장은 “정부가 용산 문제를 방치하고 있는 진짜 이유는 민간개발에 정부가 개입한 전례를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내년부터 예정된 대규모 도심 재개발 사업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서라는 이야기다. 정부는 재개발 사업을 철저하게 민간의 영역으로 규정하고 개입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정부나 철거민 운동이나 용산을 마지노선으로 삼고 있는 셈이다.
세종대 도시부동산대학원 김수현 교수는 “불량한 도시환경을 개선하면서 우량주택 공급을 늘리고 주민과 정부 모두 돈을 들이지 않는 그런 꿈같은 사업은 없다”고 지적한다. 김 교수는 “따라서 도시 재생사업은 서민들을 보호하되 우량주택 공급에 중점을 두는 사업과 서민들의 생활에 적합한 수준으로 개발하되 공공이 지원하는 사업으로 이원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근본대책은 공공의 책임을 명확히 하는데서 출발한다”는 이야기다.
김 교수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첫째,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려는 정부와 둘째, 소유 주택의 가격 상승을 기대하는 건물주, 셋째, 사업물량을 확보하려는 건설업체, 넷째, 공급확대를 외치는 시장만능주의자와 보수언론, 다섯째, 욕망의 정치를 통해 이득을 보려는 정치행태 등이 결합된 때문”이라면서 “공공의 비용 분담과 책임있는 조정이 핵심이며 이것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어떤 문제도 근본적으로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