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방송사들과 유선방송 사업자(SO)들의 치킨 게임이 벼랑 끝으로 치닫고 있다. 법원이 지난 8일 KBS와 MBC, SBS 등 지상파 방송사 3사가 티브로드강서방송과 CJ헬로비전, C&M, HCN서초방송, CMB한강방송 등 SO들을 상대로 낸 저작권 등 침해정지 및 예방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자 SO들은 지상파 재송신을 전면 중단하겠다며 맞서고 있다.


갈등의 핵심은 지상파 방송을 재전송하고 싶으면 전송료를 내라는 것이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한 채널에 320원씩 960원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유선방송 수신료의 10% 수준이다. 크고 작은 250개 유선방송 채널 사업자(PP)들이 수신료의 15%를 나눠갖는 상황이라는 걸 감안하면 지나치게 과도한 요구라는 게 SO와 PP들의 주장이다.

20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케이블TV협회는 추석 연휴 직후인 27일 지상파 재전송 중단 계획을 밝힐 예정인데 늦어도 다음달 2일 이전에 전송을 중단한다는 방침이다. 이달 안에 전격적인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1520만 가구에 지상파 재전송이 중단된다. 별도로 옥외 안테나나 공동 안테나를 설치하지 않으면 지상파 방송을 볼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지상파 방송사들의 공격에 SO들이 정면 맞대응을 하는 양상이지만 최종 승자가 누가 될 것인지는 아직 장담하기 어렵다. 결국 최종 쟁점은 전송료를 얼마로 책정할 것이냐가 될 것이기 때문에 사전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SO들은 아쉬울 게 없다는 입장이지만 실제로 지상파 재송신을 전면 중단을 감행하기는 쉽지 않을 거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우선 유선방송 채널을 포함해 전체 채널 가운데 지상파 채널의 시청 점유율이 지난해 말 기준으로 58.9%나 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파장도 크겠지만 당장 가입자들의 반발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라 지상파 재송신 전면 중단이라는 무리수를 두기는 쉽지 않을 거라는 관측도 많다.

지상파 방송사들도 지상파 재송신 전면 중단까지 가기에는 부담이 크다. SBS의 경우는 수도권 지역 난시청 비율이 16.6%, 지방은 29.3%에 이른다. 지상파를 직접 수신하는 가구는 10% 미만이고 고층빌딩이 많은 서울 도심에서도 직접 수신이 안 되는 지역이 많다. 당장 재송신이 중단될 경우 상당수 가구가 지상파 수신에 어려움을 겪게 될 거라는 이야기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공익적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동통신 회사들은 정부에 천문학적 규모의 주파수 대역 사용료를 내는데 지상파 방송사들은 한 푼도 내지 않는다. 이처럼 엄청난 혜택을 보고 있으면서 SO들에게 전송료까지 요구하고 결국 국민들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건 지나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SO들은 지상파 방송사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난시청 해소와 보편적 시청권 확보에 기여하는 수신보조 행위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KBS의 경우는 이미 월 2500원의 수신료를 받고 있기 때문에 SO들에게 추가로 전송료를 받을 경우 결국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이중 지출이 된다.

2013년으로 다가 온 아날로그 방송 종료도 변수가 될 수 있다. 지상파 방송사들뿐만 아니라 SO들도 천문학적인 규모의 비용을 들여 디지털 전환 작업을 서두르고 있는데 이 때문에 디지털 전환이 완료될 때까지만이라도 재송신 논쟁을 유예하거나 한시적 의무 재송신을 하자는 대안도 제시되고 있다.

양쪽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지만 해외 사례도 제각각이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는 유선방송 수신료의 0.2~0.6% 수준을 전송료로 책정하고 있고 영국에서는 SO들이 지상파 방송을 의무 재송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지상파의 동의를 얻어야 재송신을 할 수 있고 난시청 지역에서는 의무 재송신이 원칙이다.

유선방송 수신료가 인상될 경우 상대적으로 IPTV나 디지털 위성방송 등 다른 유료방송의 경쟁력이 높아질 거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수신료 차이도 얼마 나지 않으면서 실시간 지상파 재전송은 물론이고 주문형 비디오 등 차별화된 서비스가 많기 때문이다. 경영 상황이 열악한 군소 SO들의 인수합병이 늘어날 거라는 전망도 있다.

유선방송 수신료 인상→KBS 수신료 동결→IPTV 영향력 확대→종편·보도 사업자 정착 실패?

결국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SO들이 지상파 방송사에 일정 수준의 전송료를 지급하는 것으로 타협하는 것인데 이 경우 수신료 인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유선방송 수신료가 인상되면 KBS의 수신료 인상이 벽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고 올해 안에 선정될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전문채널 신규 사업자들까지 어려움을 겪는 나비효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지상파 방송사들과 SO들 사이에 협상이 원만하게 타결되지 않을 경우 방송통신위원회가 중재에 나설 수도 있지만 최악의 경우 한동안 지상파 재전송이 전면 중단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벼랑 끝을 향해 달려가는 치킨 게임, 누가 최종 승자가 될 것인지 관심이 집중되지만 결국 시청자들을 볼모로 하는 이권투쟁이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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