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전쟁은 일단락된 것일까. 언론의 떠들썩한 호들갑과 달리 시장의 평가는 유보적이다. 벼랑 끝으로 치닫던 치킨게임에 제동을 건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지만 종전이 아니라 휴전 상태일 뿐이며 언제라도 다시 확전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언론 보도에서는 장밋빛 전망만 넘쳐날 뿐 냉정한 평가와 전망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 22∼23일 경주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참가국 대표들은 시장결정적 환율제도를 도입하고 경쟁적인 통화절하를 자제하기로 합의했다. 경상수지 목표제를 도입하자는 제안도 나왔지만 과도한 대외불균형을 줄이고 경상수지를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하기로 노력한다는 수준에서 합의를 끌어냈다.

그런데 세계일보는 “‘환율 갈등’ 한국 중재력 빛났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기대 이상의 모든 타결이 거의 다 됐다”는 준비위원회 관계자의 말을 인용했고 조선일보는 “‘막힌 곳 어디냐’ ‘누구에게 전화하면 되나’ 이 대통령 ‘멀리 보고 일하라’ 직접 챙겨”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 대통령의 적극적인 개입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서울경제는 사설에서 “이번 합의로 갈수록 심화돼 온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과 불안전성이 크게 개선되는 효과와 함께 우리의 글로벌 위상이 한층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서울신문은 “의장국인 우리 정부의 지적 리더쉽과 공멸을 막기 위한 회원국의 양보가 맞물려 서울 정상회의를 환율 수렁에서 건져내는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찬사 일색인 언론보도와 달리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시장결정적 환율제도의 기준이 모호하고 경상수지 목표도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은데다 강제력 있는 수단도 합의되지 않아 결국 선언적인 수준에 그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해외 언론 반응도 덤덤한 수준이고 금융시장에서도 크게 달라진 것 없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경주 회의는 ‘분열(disunity)의 전시장이었다”면서 “구체적 목표를 설정하는 데 실패했다”고 평가절하했다. AFP통신도 “언젠가 적대감이 되살아나는 불씨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의 신화통신도 “20개국 재무장관이 악수를 한 것은 표면적인 타협일 뿐이며, 본질적인 이견은 남았다”고 유보적인 평가를 내렸다.

대우증권 고유선 연구원은 “강제성이 없다는 점에 한계가 있다”면서 “환율 갈등이 재차 부각될 가능성도 여전히 높다”고 지적했다. 미래에셋증권 박희찬 연구원도 “앞으로 경상수지 가이드라인 도출 및 이행 중국의 시장결정적 환율제도 이행속도, 그리고 본질적으로 세계경제 회복 강도 등에 따라 환율 갈등은 반복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향신문도 “미국과 중국의 이 같은 화해 분위기는 그동안 양적완화의 불가피성을 강조해왔던 미국이 다음달 초 양적완화 추가 조치를 어떻게 취하느냐에 따라 다시 한 번 중대한 고비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환율전쟁의 종전을 위한 공이 중국에서 미국으로 넘어갔다”고 평가했다.

한겨레도 “당장의 갈등이 봉합됐다고 장차의 일을 낙관하기에는 이르다”면서 다른 논조를 펼쳤다. 한겨레는 “시장결정적 환율제도로 이행하겠다는 선언만으로 외환시장 개입이 없어지진 않을 것”이며 “중국 등 상당수 나라가 고정환율제를 유지하는 터에 그런 선언은 말의 성찬에 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일보도 “시장결정적 환율제도로 이행한다는 문구를 담기는 했지만 실천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딱히 없는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일보는 “환율을 시장에 맡기자면서 경상수지는 통제한다는 건 이율배반”이라면서 “세계 각국이 정책 목표보다 훨씬 통제가 어려운 경상수지 목표를 이행할지는 매우 회의적”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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