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17일 온라인 판 머리기사로 “한국인이 소득의 50%를 세금으로 낼 각오됐는지부터”라는 제목의 칼럼을 내걸었다. 김흥수 파리 특파원이 쓴 이 칼럼의 원래 제목은 “기왕이면 무(無)세금까지”다. 첫 화면에 걸린 제목과 원래 제목의 뉘앙스가 크게 다르다. 관련 기사로 “노무현 정부 때 시도한 무상의료, 2년도 못 버티고 폐기됐다”는 기사가 걸려있다.


김 기자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티아 센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에게 “한국이 모델로 삼을 만한 나라를 꼽아달라”고 물었더니 “우선 한국민들이 소득의 50%를 세금으로 기꺼이 내놓을 각오가 돼 있는지부터 자문해 봐라”고 답했다는 내용이다. 센 교수는 불평등과 빈곤 문제를 연구해 온 석학으로 ‘경제학계의 테레사 수녀’로 불리는 사람이다.

이 칼럼은 언뜻 “공짜 복지는 없다, 복지를 늘리는 건 좋지만 결국 재원 조달이 관건이고 소득 재분배 구조 확립과 사회적 합의가 우선돼야 한다”는 주장을 담아낸 것처럼 보인다. 김 기자는 “사회적 연대의식이 빈약한 한국인의 행태와 기존 복지 선진국의 문제점을 겹쳐서 보면 걱정이 앞선다”고 우려를 드러냈다.

그러나 이 칼럼의 진짜 의도는 “한국에선 유럽의 무상의료를 부러워하지만 정작 유럽에선 제도 개혁을 고심하고 있다”면서 “제도 설계 자체가 잘못된 탓에 복지 때문에 무너지는 나라들이 속출하고 있다”고 지적한 대목에서 드러난다. 프랑스의 무상의료가 “불필요한 과잉진료와 그로 인한 사회적 낭비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한 대목도 눈길을 끈다.

김 기자는 “한평생 복지 문제를 연구한 석학도 선뜻 답을 내놓지 못하는 난제가 복지인데, 한국 정치인들은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한국에서 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보육, 무상교육까지 경쟁적으로 난무하는 것을 보면서 이러다 언젠가는 ‘무(無)세금’으로 ‘완결판’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적고 있다.

결국 이 칼럼은 보편적 복지제도를 위해 세금을 더 낼 각오가 돼 있는지 묻고 있는 게 아니다. 조선일보는 소득의 50%를 세금으로 내더라도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최근 정치권의 복지 논쟁을 교묘하게 물타기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러다 ‘무세금’ 공약까지 나오는 것 아니냐며 비아냥거리는 걸로 칼럼을 끝낸다.

조선일보만 낚시질을 하는 건 아니지만 아마티아 센이 이 기사를 읽는다면 뒤로 까무라쳤을지도 모른다. 그를 제대로 인터뷰했다면, 그의 책을 한 권이라도 읽고 그의 철학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감히 이런 기사를 쓰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권위 있는 인물을 내세우되 그의 말을 입맛대로 적당히 골라 쓰면서 본질을 왜곡하는, 조악하고 비열한 낚시질이다.

아마티아 센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궁극적으로 사회적 공공적 복지를 담보하기는커녕 철저하게 무시하고 파괴해 왔다고 비판한다. 공리주의가 효용의 총합에 집중할 뿐 불평등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인타이틀먼트(entitlement)’라는 개념을 강조한다. 일본에서는 ‘권원(權原)’이라고 쓰는데 우리 말로는 ‘역량’ 정도의 의미가 된다.

인타이틀먼트는 “한 사회에서 정당한 방법으로 어떤 재화의 묶음을 손에 넣거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을 말한다. 센은 가뭄과 홍수로 기근이 발생할 때 가난한 사람들이 굶어죽는 건 식량 부족 때문이라기 보다는 임금 감소와 실업, 식량 가격 상승, 식량 배급 체계 미비 등 인타이틀먼트의 붕괴와 이로 인한 권리 박탈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센은 잠재능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한 상태를 빈곤으로 규정한다. 그래서 빈곤 국가에 물자를 원조하는데 그치지 말고 그들의 잠재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 교육, 건강, 영양상태, 선택을 위한 자유를 배려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사회적 취약 계층이 경제적 인타이틀먼트를 잃지 않도록 정치적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는 게 우선이라는 이야기다.

복지는 단순히 부자들의 돈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다. 센은 가난한 사람들을 시혜의 대상으로 보지 말고 적극적 행위 주체로 보라고 강조한다. 센의 주장에 따르면 불평등 구조를 해소하고 이들에게 경제적 인타이틀먼트를 부여하는 게 진짜 복지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복원을 근본 해법으로 제시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소득의 50%를 세금으로 낼 각오가 돼 있느냐는 질문은 말로만 복지를 외칠 게 아니라 그 정도의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수 있는지, 그 정도로 민주주의가 성숙해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이를 두고 한평생 복지를 연구한 석학도 답을 못 냈다며 소득의 50%를 낼 각오가 없으면 복지 하지 말자는 결론을 끌어내는 건 참으로 천박한 발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최근 민주당이 복지 공약을 남발하는 경향이 있지만 본격적인 복지 논쟁을 시작해야 할 시점인 건 맞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기꺼이 기득권을 포기할 준비가 돼 있는지를 자문해 볼 필요도 있다. 센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불평등을 만드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려는 구성원들의 의지와 사회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비용이 얼마나 드느냐,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를 넘어 약자에 대한 진정한 배려가 우선이라는 센의 주장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센은 ‘센코노믹스’에서 “인간은 타자의 존재에 관심을 갖고 타자와의 상호 관계를 자신의 가치관에 반영시켜 행동하는 사회적 ‘커미트먼트(commitment, 책무)’가 가능한 존재”라고 규정한다.

센이 말하는 책무는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직접 정의로운 행동으로 나서는 것을 말한다. 센은 “인간의 행동은 신고전학파에서 규정한 것처럼 이기적 동기에 의해서 지배받는 것이 아니라 윤리적 사고와 도덕적 가치에서 동기를 부여받는다”고 강조한다. 그런 사람의 주장을 돈 내기 싫으면 복지 포기하라고 둔갑시켰으니 이게 얼마나 어이 없는 일인가.

참고 : 기왕이면 ‘무세금’까지.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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