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으로 튀어’라는 책을 읽고 오쿠다 히데오를 알게 됐다. 나에게 그 책을 소개해 준 출판 기획자는 “너무너무 재미있다”고 했다. 소설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지만 한번 손에 잡으니 정말 앉은 자리에서 후딱 읽게 되는 그런 책이었다. ‘꿈의 도시’도 그런 책이었다. 책 읽다가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친 것도 정말 오랜 만이었다.


‘꿈의 도시’는 역설적으로 꿈이 없는 사람들의 답답한 일상과 그들이 사는 붕괴하는 도시 공동체를 적나라하고 참혹하게 드러낸다. 물론 오쿠다 히데오 스타일의 시니컬한 블랙 유머가 전반에 흐른다.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다섯 명의 주인공들의 삶이 조금씩 뒤엉키다가 마지막 장면에서 한꺼번에 교통사고를 당한다.

아이하라 도모노리는 시청 사회복지과의 공무원이다. 생활보호 수급자를 최대한 줄이는 게 그의 일이다. 신청이 들어오면 무조건 반려하는 것은 기본이고 수급자들의 집을 찾아가 트집을 잡아 사퇴를 종용하기도 한다. 지루하고 무기력한 일상, 도모노리는 유부녀들과 원조교제를 하던 도중 한 여자의 남편에게 살해 위협을 받게 된다.

구보 후미에는 유메노를 벗어나 도쿄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하는 게 꿈이다. 패배자와 낙오자들이 넘쳐나는 이런 시골 마을에서는 아무런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미에는 어느 날 하교 길에 게임 중독자인 ‘히키코모리’, 히노 노부히코에게 납치된다. 무사히 집으로 돌아간다고 한들 남들이 뭐라고 수근댈까. 후미에의 꿈은 산산조각이 난다.

가토 유야는 노인들을 상대로 사기 세일즈를 하는 회사에 다닌다. 폭주족 출신이 대부분인 이 회사 직원들은 전기 점검을 하러 나왔다면서 멀쩡한 배전기를 뜯어내고 새 배전기를 20배 이상 가격에 판다. 유야는 능력을 인정받아 임원으로 승진하기를 꿈꾸지만 폭주족 선배가 사장을 죽이면서 함께 쫓기는 신세가 된다.

호리베 다에코는 대형 마트에서 좀도둑을 잡는 보안 요원이다. 임금은 많지 않지만 이 시골 마을에서는 그나마 번듯한 일자리라고 할 수 있다. 다에코의 유일한 안식처는 사슈카이라는 신흥 종교인데 다른 종교와 갈등을 빚던 도중 누명을 쓰고 일자리를 잃게 된다. 병든 어머니까지 떠안게 된 다에코는 결국 자신이 다니던 마트에서 물건을 훔치다가 잡힌다.

야마모토 준이치는 건설회사 사장이면서 시 의원이다. 야쿠자들과 손을 잡고 온갖 지저분한 이권 사업에 개입하고 있으면서 비서와 바람을 피우는 걸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준이치는 막강한 권력과 부를 발판으로 현 의원에 출마할 계획인데 야쿠자들이 준이치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대표를 죽이면서 살인사건의 공범으로 말려들게 된다.

다섯 명의 주인공들은 이 ‘꿈의 도시’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지만 모두 엉망진창이 된다. 도모노리는 유부녀의 남편이 몰던 트럭에 부딪히고 그 차를 사장의 시체를 실은 유야의 차가 들이 받는다. 트렁크에 후미에를 싣고 가던 노부히코의 차와 시민단체 대표의 시체를 없애려고 소각로를 싣고 가던 준이치의 트럭이 그 차를 또 들이 받는다.

이들은 모두 유메노를 벗어나는 꿈을 꾸지만 현실은 오히려 끈적끈적 얽혀든다. 당장이라도 파국으로 치달을 것 같은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운 일상, 다들 외면하고 싶지만 그게 신자유주의 시대, 몰락해 가는 지방 중소 도시의 피폐한 삶이다. ‘꿈의 도시’라고 부르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정작 꿈이 없다.

꿈의 도시 / 오쿠다 히데오 지음 /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펴냄 / 1만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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