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증권과 대한투자증권이 부분적으로 합병될 전망이다. 금융기관들이 합병으로 몸집을 키우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지만 이 경우 문제는 합병이 매각의 사전단계가 아니냐는 의혹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현대 자본주의, 특히 주주 자본주의의 극단을 목격하고 있다. 기업이 더 많은 이익을 내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그 이익은 미래를 희생한 결과일 수도 있다.

주주들의 탐욕은 흔히 먼 미래를 고민하지 않는다.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이익을 내고 있지만 우리 기업들의 미래는 오히려 더 어둡다. 하나금융지주회사의 움직임을 주목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하나금융지주는 하나증권과 대한투자증권의 대주주, 이른바 금융지주회사다. 하나금융지주는 오래 전부터 이들 자회사들의 매각을 추진해 왔다.

먼저 하나금융지주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나금융지주의 뿌리는 하나은행이다. 1998년 충청은행을 인수합병한데 이어 1999년에는 보람은행을, 2002년에는 서울은행을 인수합병하는데 성공했다. 자회사로 하나증권과 하나생명, 하나캐피탈 등을 자회사나 손자회사로 두고 있고 2005년에는 대한투자증권과 대한투자신탁운용을 사들이기도 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하나금융지주는 지난해 12월, 자회사인 하나증권의 우선주를 전량 유상감자하기로 결정했다. 유상감자는 자본금을 줄이고 그 자본금을 주주들에게 돌려준다는 이야기다. 하나증권의 자본금은 3600억원, 이 가운데 우선주 물량은 369억원인데 이 돈이 고스란히 대주주인 하나금융지주로 건너가게 된다.

주주총회를 열기는 했지만 하나금융지주가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었다. 대주주가 자본금을 빼내가는 데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금융지주회사 제도의 한계와 폐해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하나금융지주는 부인하고 있지만 이번 유상감자는 하나증권을 매각하기 위한 사전 준비단계라고 보는 관측이 많다.

하나금융지주는 하나증권의 지분 30%를 외국계 증권사인 리만브러더스에 넘기는 방안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하나증권의 소매영업부문을 따로 떼어내 대투증권과 합병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또 대투증권의 100% 자회사인 대투운용의 지분 51%를 외국계 투자은행인 UBS에 매각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하나금융지주는 대투증권에 소매영업을 몰아주고 하나증권은 투자은행으로 키운다는 계획이지만 하나증권은 그 과정에서 대규모 구조조정을 거쳐 결국 리만브러더스 등에 매각될 가능성이 크다. 대투증권 역시 하나증권과 조직 통폐합 과정에서 혹독한 구조조정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11월에 설립된 하나GMG(글로벌마켓그룹)도 주목할 만하다. 하나금융지주의 100% 자회사인 하나GMG은 앞으로 은행과 증권, 보험 등 하나금융지주 자회사와 손자회사들이 내놓은 금융상품을 전담해서 판매하게 된다. 결국 하나금융지주의 지분법 평가이익은 늘어나겠지만 자회사와 손자회사들의 입지는 그만큼 좁아지게 된다.

한편, 대투운용의 매각도 문제가 많다. 하나금융지주가 대투증권과 대투운용을 인수한 때는 2005년 5월, 인수가격은 4750억원이었다. 구체적으로는 대투증권이 4570억원, 대투운용이 180억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목할 부분은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이후 대투증권과 대투운용에 투입된 공적자금이 무려 4조1500억원에 이른다는 것.

천문학적인 규모의 세금을 쏟아부어 살려낸 회사를 10분의 1 정도의 가격에 넘긴 것을 두고 그때도 헐값매각이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사들인 회사를 1년 반만에 다시 매각하려는 상황이다. 시세차익을 노렸을 뿐 애초에 경영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 아니냐는 비난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하나금융지주는 UBS에 대투운용의 지분을 넘기는 대가로 1500억원을 받기로 했다. 180억원에 사들인 회사의 지분 51%를 1500억원에 팔면 무려 16.7배의 시세차익을 남기게 된다. 지금은 8위까지 밀려났지만 한때 국내 최대 규모의 자산운용사였던 대투운용을 이렇게 서둘러 팔아치워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금융지주회사는 금융산업의 대형화와 계열화를 통해 경쟁력을 높이고 투명성을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2000년부터 허용됐다. 우리금융지주회사와 신한금융지주회사 등이 잇따라 인수합병과 계열사들끼리 지분 맞교환을 통해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하고 몸집을 불리고 있다. 하나금융지주는 국민은행과 우리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에 이어 업계 4위 규모다.

문제는 금융지주회사가 그 도입 취지와는 달리 주주들의 단기 이익을 극대화 하는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 때문이다. 금융지주회사 주주들 입장에서는 최선의 목표는 더 많은 이익을 내는 것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금융지주회사의 주주들과 자회사나 손자회사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이 다를 수 있다.

하나증권은 2000년부터 2005년까지 883억원의 현금배당 또는 주식배당을 실시했다. 이익이 늘어나는 만큼 주주들에게 더 많은 배당을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2004년의 경우 배당을 늘리려고 여의도 본사 사옥까지 매각한 전례도 있다. 금융지주회사 설립과 100% 자회사 편입 이후 이 배당은 고스란히 대주주인 하나금융지주로 흘러가게 된다.

이번 구조조정도 마찬가지다. 자회사와 손자회사의 잇따른 매각과 하나GMG 등 새로운 자설립, 그리고 업무 양수도, 이 모든 구조조정은 결국 대주주인 하나금융지주의 지분법 평가이익을 늘려나가는 과정이다. 금융지주회사는 이처럼 자회사들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하나증권이 하나금융지주의 손자회사에서 100% 자회사로 편입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이해가 쉽다. 하나증권의 대주주는 65.5%의 지분을 보유한 하나은행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하나금융지주는 하나증권의 주식 1주를 하나금융지주 주식 0.24주와 교환하는 방식으로 하나증권의 주식을 사들이고 상장폐지 절차를 밟았다.

하나금융지주가 과반수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지분매입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일부 반대하는 주주들은 하나증권이 나서서 주식을 사들였고 그 과정에서 487억원이 추가로 나갔다. 그리고 하나증권은 결국 100% 하나금융지주의 자회사가 됐다. 하나금융지주의 이해를 충실하게 반영하되, 아무런 반발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지분구조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하나금융지주의 외국인 지분비율은 80.2%에 이른다. 하나금융지주는 지난해 6월 주당 350원씩 중간배당을 실시한데 이어 올해 3월 주총에 맞물려 1천원 이상의 추가 배당을 실시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연간 배당규모가 3천억원을 훌쩍 넘어서고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 가운데 2500억원 이상을 챙기게 된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알짜배기 금융 계열사들을 모아 더 많은 이익을 만들고 그 이익을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갖다 바치는 꼴이 됐다는 이야기다. 이 이상한 시스템은 더 많은 배당을 만들기 위해 건물을 내다 팔거나 자본금을 빼내가기도 하고 심지어 자회사를 내다 팔기도 한다. 더 큰 문제는 누구도 이 시스템에 저항을 할 수 없게 됐다는데 있다.

금융지주회사는 주주 자본주의의 첨단 또는 극단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많은 이익을 내고 주가도 오르고 더 많은 배당을 받겠지만 주목할 부분은 그 이익이 과연 어디로 가는가, 그리고 그 이익이 과연 지속가능한가다. 금융지주회사의 효율성에 대해서도 다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변화는 이제 시작일 뿐이고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이정환 기자 top@journalismclass.mycafe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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