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너마저.” 한겨레의 주식 기사 하나가 충격을 안겨 준다.
한겨레는 지난 21일 18면 <'3각 균형' 이룬 지주회사 지지력도 탄탄>에서 “지주회사가 주식시장의 새로운 총아로 떠오르고 있다”고 잔뜩 추켜세웠다. 한겨레는 “대주주가 추가 비용지출 없이 경영권을 효과적으로 강화할 수 있고, 지배구조도 비교적 투명해지기 때문”에 “투자자들로부터 주목받고 있다”며 투자요령까지 소개했다.
주식시장의 관점에서 쓴 기사라서 그렇겠지만 한겨레의 이 기사는 진보를 표방하면서도 시장의 논리를 배격하지 못하는 이 신문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한겨레의 경제면은 다른 보수·경제지들과 차별점이 없다는 지적이 많다.
지주회사는 신자유주의 축적구조의 가장 진화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정부가 지주회사 전환을 장려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순환출자로 복잡하게 얽힌 일부 재벌 대기업과 달리 대주주가 소수의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흔드는 일이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정부는 지주회사로 전환하면 지배구조가 투명해지고 그만큼 경영 효율성도 높일 수 있다고 선전한다.
“지주회사는 신자유주의 축적 구조의 가장 진화된 형태다.”
그러나 지주회사는 재벌 일가의 지배력을 더욱 높이는 역할을 한다는 지적도 있다.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단기 실적에 매몰될 위험도 있다. 단기 실적을 노리고 장기적인 성장을 희생할 우려도 있고 상시적인 구조조정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정부의 주장과 달리 주주의 이해와 경영 효율성이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지주회사는 다른 회사를 소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다. 자회사에서 받는 배당과 브랜드 로열티, 임대료 등이 수익이 된다. 지주회사는 철저하게 더 많은 배당을 받는데 목표를 두고 자회사와 손자회사들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를테면 LG그룹의 지주회사 LG는 LG전자의 지분을 34.8%, LG화학을 39.2%, LG데이콤을 30.5%, LG텔레콤을 37.4%, LG생활건강을 34.0%씩 보유하고 있다. LG는 15개 자회사를 두고 있고 이 자회사들은 16개의 손자회사를 거느리는 피라미드 구조를 이루고 있다.
LG 뿐만 아니라 GS홀딩스와 두산, 한화, CJ, 한진중공업홀딩스, STX, 금호산업 등이 지주회사 개편에 성공한 경우다. 금융지주회사로는 하나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등이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8월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지주회사는 36개, 금융지주회사는 4개, 더해서 40개다.
공정거래법은 지주회사를 자산총액 1000억원 이상으로서 자회사의 주식가액 합계액이 자산총액의 50%를 넘는 회사로 규정하고 있다. 당초 규정은 부채비율 한도가 100% 미만이고 자회사나 손자회사의 지분이 30% 이상일 것을 내걸었지만 지난해 법이 개정되면서 부채비율은 200%로 올라가고 지분 요건은 20%로 줄어들었다. 비상장사일 경우는 50%에서 40%로 낮아졌다. 그만큼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지주회사로 전환할 수 있게 됐다는 이야기다.
완화된 규제 덕분에 지주회사 전환이 부쩍 늘어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제 20%의 지분만 확보하면 한 기업을 지배할 수 있게 된다. 지주회사를 설립하고 이 회사의 지분을 보유하면 그룹 전체를 흔들 수 있게 된다. 재벌 일가와 지주회사 주주들의 이해가 일치하기 때문에 재벌 일가가 나머지 주주들의 권한을 대리 행사하는 일도 가능하게 된다.
지주회사는 제3자… 노조 교섭 대상 없어.
지주회사의 폐해는 이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해 2월 하나금융지주가 하나증권의 소매 영업부문을 하나대투증권에 양수도 하는 과정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나증권 노조는 고용 불안과 경쟁력 약화를 내세워 거세게 반발했지만 정작 교섭 대상 자체가 없었다. 지주회사법에 따르면 지주회사는 노사관계에서 제3자일 뿐이다.
지주회사는 흔히 자회사들의 인사와 재무, 경영전략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미친다. 낙하산 인사로 경영진을 내려 보내기도 하고 자회사와 영업부문을 통폐합하거나 축소하고 또 매각하기도 한다. 모든 결정은 철저하게 모기업인 지주회사 차원에서, 지주회사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이뤄진다. 지주회사를 신자유주의 축적구조와 주주 자본주의의 가장 진화된 형태라고 규정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삼성이나 현대자동차 그룹의 경우는 시가총액이 너무 커서 지주회사 전환이 여의치 않지만 이미 3위 이하 재벌 대기업 집단은 빠른 속도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을 모색하고 있거나 마무리한 상태다. 30%까지 지분을 확보하기는 부담스럽지만 20%라면 충분히 투자 가치가 있다는 판단을 한 때문이다.
지주회사는 결국 투자자 집단이다. 더 많은 이익을 내고 더 많은 배당을 안겨줄 수는 있겠지만 긍정적인 측면 못지않게 부정적인 측면도 많다. 지주회사는 주주 자본주의의 한계를 그대로 안고 갈 수밖에 없다. 경영의 효율성이라고 선전하지만 결국은 수익구조의 효율성일 뿐이다. 이 둘은 같지 않을 수도 있다. IMF 이후 한국 경제의 변화가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다른 신문이라면 모르지만 신자유주의 금융 세계화와 주주 자본주의를 비판해왔던 한겨레가 지주회사를 추켜세우는 것은 모순이다. 시장의 변화를 제대로 따라 잡지 못하고 있거나 비판의 문제의식이 그만큼 깊지 못하다는 증거다. 시장은 당연히 지주회사에 열광하겠지만 시장의 투기적인 선호가 반드시 경제 전반에 긍정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익만 많이 내면 최선일까.
한겨레는 “지주회사는 불필요한 회사를 분리 매각하는 것이 쉬운 만큼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거나 퇴출 결정을 내리는 것도 상대적으로 쉽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자회사에 대한 지분율을 끌어올림으로써 적대적 인수합병(M&A) 세력으로부터 적극적으로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지주회사 입장에서 불필요하다는 건 철저하게 배당 이익의 관점일 가능성이 크다. 또한 적대적 인수합병 세력으로부터 방어한다는 경영권은 지주회사의 대주주, 재벌 일가의 경영권을 의미할 가능성이 크다. 한겨레는 이런 주장이 그동안 한겨레의 스탠스와 앞뒤가 맞지 않다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