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이 첫 기자회견을 했던 지난 10월29일 아침,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분주했다. 시사인과 한겨레21이 김용철 변호사의 인터뷰를 이미 커버스토리로 내보낸 다음날 아침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홍보팀과 광고팀이 번갈아 가면서 언론사마다 전화를 돌려 사태의 사전 진화에 나섰다.


“김용철 변호사라고 우리 회사에 있다가 나간 사람이 오늘 오전에 기자회견을 한다는데 이 사람이 삼성에서 7년 동안 102억원을 받았던 사람이다. 그리고 퇴직 후 지난달까지 3년 동안 달마다 2200만원을 받던 사람이다. 이제 와서 이러는 이유를 모르겠다.” 퇴직 임원에 대한 예우가 끝나는 시점에 하필 삼성에 등을 돌렸다는 이야기다.

그날 기자회견에 김 변호사는 나오지 않았다. 사제단은 “삼성이 김 변호사의 명의로 우리은행 삼성센터지점에 거액의 비자금을 은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김 변호사의 이자 소득세 내역을 공개했다. 지난해 김 변호사가 낸 이자 종합소득세는 1억8천만원. 정기예금 이율 연 4.5%로 계산하면 예금액은 50억 원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시사인과 한겨레21의 커버스토리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삼성의 비자금이야 이미 X파일 사건 때 공개되기도 했지만 삼성의 법무팀장 출신인 김 변호사의 양심선언은 상상 이상이었다. 김 변호사는 에버랜드 편법증여 사건의 증인과 증거가 모두 조작됐다고 털어놓았다. 검찰에 정기적으로 떡값을 받는 ‘삼성 장학생’이 있다고도 했다.

삼성은 즉각 해명에 나섰다. 김 변호사의 계좌에 들어있는 돈은 재무팀의 한 임원이 김 변호사의 동의를 얻어 개설한 것으로 당초 7억원이 들어있었는데 주식투자 등을 통해 50억원으로 불어났다는 것이다. 삼성은 김 변호사의 차명계좌를 부인하지는 않았다. 다만 비자금이 아니라 삼성과는 무관한 한 임원의 사적인 거래였을 뿐이라는 설명이었다.

“김 변호사 정신 상태 불안한 것 같다.”

삼성은 이날 김 변호사의 부인이 세 차례나 구조본에 협박 편지를 보냈다고 밝혔다. 일부 언론사에는 직접 이 편지를 들고 찾아와 보여주고 바로 회수해가기도 했다. 삼성은 편지의 내용을 일부만 공개했다.

“성실하게 살고자 했던 남편이 삼성에 들어가 망가졌다”거나 “삼성에 관한 좋지 않은 정보들을 공개해서 (삼성 간부들의) 명예를 우리가 당한 만큼 밟아 줘야 한다면 그건 내가 할 것”이라는 등의 내용이었다. 편지의 내용은 분명히 협박성이라고 할만 했다.

흥미로운 것은 언론의 반응이었다. 한겨레가 다음날부터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한 반면, 다른 언론은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대부분 사회면 기사로 처리했고 아예 기사를 내보내지 않은 곳도 많았다. “김 변호사의 정신상태가 불안한 것 같다”는 삼성의 주장을 그대로 기사에 내보낸 곳도 있었다. 포털 사이트 등에 삼성 비자금 관련 기사가 주요 뉴스로 뜨긴 했지만 대부분 한겨레의 기사였다. 다른 언론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0월31일 매일경제의 칼럼은 이들이 침묵하고 있는 배경을 설명해준다. 이동주 사회부장은 “하루가 멀다하고 꼬리를 무는 폭로와 해명 속에 한국 사회는 온통 난장판이 됐다”면서 “자기 침실과 욕실에 CCTV를 설치할 용기가 없다면 진실을 모조리 다 밝히라고 떠벌리길 삼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부장은 “젊은 아가씨 치맛자락을 허락 없이 들춰보는 듯한 재미에 빠져 어느 것이 가치 있는 진실이고, 어느 것이 묻어 둘 진실인지를 혼동해선 안 된다”는 궤변을 늘어놓기도 했다. 이 부장은 “때론 사회의 흠집처럼 보이더라도 불완전한 인간이 모여사는 곳엔 ‘합리적 무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날 다른 경제지들은 뜬금없게도 삼성전자 주우식 상무와의 오찬 간담회 소식을 비중있게 실었다. 삼성전자가 6대 신성장 엔진 육성 계획을 발표했으며 2012년에는 매출 120조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대부분 언론에서 비자금 관련 기사는 사라졌다. 한겨레와 조선일보, 경향신문만 관심을 보였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재무담당 임원이 회사와 관계도 없는 외부인의 재테크를 도와주기 위해 동료 임원의 이름까지 빌려 차명계좌를 만들었다”는 삼성의 주장이 석연치 않다고 지적했다. 또 비밀계좌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의 편의를 위해 은행으로부터 이런 협조를 받을 수 있느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중앙일보가 시종일관 삼성에 편향된 기사를 내보낸 반면, 조선일보는 삼성 비자금 사건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보도했다. 방송도 비중있게 반영했다. 대다수의 일간지들은 김 변호사의 폭로를 공방이나 진실게임 등으로 보도했다. 일부 언론은 김 변호사를 폭로 전문가로 매도하기도 했다. 도둑 잡으라고 외쳤더니 시끄럽다고 나무라는 꼴이다.

한겨레, 경향, 조선만 비중있게 보도.

‘회장 지시사항’이라는 문건이 공개된 것은 11월2일이었다. 당초 사제단이 2차 기자회견에 공개하기로 했던 문건이 경향신문과 한겨레를 통해 흘러나왔다. 2003년 11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작성된 이 문건에는 “돈을 안 받는 사람에게는 호텔 할인권이나 와인을 주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거나 “악감정을 가지고 기사를 쓴 한겨레 등의 광고를 조정할 것” 등의 이건희 회장 지시사항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었다. 구체적으로 돈을 안 받는 추미애 전 민주당 의원을 지적하기도 했다. 삼성의 광범위한 로비의 정황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한 건 사제단의 2차 기자회견이 예정된 11월5일부터다. 이날은 김 변호사가 나와 문건을 추가 공개할 계획이라고 했고 이들 언론에서도 언제까지나 마냥 덮어둘 수는 없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날 김 변호사는 문건을 공개하지 않았다. 추가 폭로도 없었다. 대신 삼성이 장문의 해명자료를 냈다.

삼성은 비자금 조성이나 뇌물 공여 등 김 변호사의 주장을 전면 반박했다. 김 변호사가 공개한 문건과 관련해서도 “단순한 메모 사항일 뿐 이행되지 않고 검토 단계에서 폐기된 것도 많다”고 밝혔다. 일단 문건의 존재를 시인했고 그 내용을 전면 부인하지는 않았다. 폐기된 것도 많지만 시행된 것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날 삼성의 반박은 장황했지만 정작 핵심이 빠져 있었다. 삼성은 김 변호사의 명의를 빌려차명계좌를 개설한 임원의 신상이나 이 계좌의 잔고와 사용 내역 등은 밝히지 않았다. 뇌물 공여 의혹도 마찬가지다. 문건에서 이 회장은 돈을 받지 않는 사람에게 호텔 할인권이나 와인을 주라고 지시했다. 주지 않았는데 돈을 안 받아서 문제가 생길 수는 없는 일이고 이 말은 곧 돈을 안 받는 사람이 일부고 받는 사람이 많았다는 이야기도 된다.

삼성은 김 변호사가 돈 때문에 삼성에 등을 돌렸다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해명자료에서 삼성은 “김 변호사가 삼성 근무 중이나 퇴직 후 3년 간 고문 변호사로 고문료를 받을 때는 아무 말도 없었다”면서 “고문계약이 끝난 시점에 이처럼 근거없는 주장을 하는 것을 과연 양심의 움직임으로 볼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사생활까지 공격하는 삼성의 물밑 작업.

해명자료에는 김 변호사의 부인이 보낸 편지의 내용도 일부 들어있었다. 삼성은 “내용 자체가 워낙 근거가 없고 많은 사람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어 공개 여부에 대해서는 신중히 검토 중”이라고 밝혔으면서도 김 변호사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김 변호사 부인의 주장을 그대로 공개했다. 이 해명자료는 홈페이지를 통해 일반에게도 공개됐다.

시사인은 11월4일 이학수 삼성 구조본 실장이 김 변호사에게 보낸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 화면을 표지에 실었다. 삼성이 그만큼 다급했다는 이야기다. “김 변호사, 우리 서로 좋았을 때를 생각해봅시다. 나는 김 변호사와 이렇게 될 만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나서 뭐든지 풀어보면 서로 유익할 것입니다. 긍정적인 판단을 기대합니다.”

삼성은 이날 이 실장이 보낸 문자 메시지 6건을 그대로 해명자료에 실었다. “전직 임원인 김 변호사가 사실무근인 내용을 폭로하려고 하는데 경영진이 이를 수습하기 위해 찾아간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다. 부끄러운 걸 숨기려고 찾아간 게 아니라는, 정면 반박인 셈이다. 삼성의 세련된 언론 플레이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삼성의 이런 적극적인 대응은 효과적이었다. 다음날인 11월6일 많은 언론은 김 변호사의 주장과 삼성의 반박을 동일한 크기로 게재했다. “공방”이나 “진실게임”, “누구 말이 맞나”는 등의 중립적인 제목이 대부분이었고 한국경제 등은 “양심고백? 개인분풀이?”라는 제목을 달기도 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 등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언론이 김 변호사의 동기의 불순성을 지적했고 정작 삼성의 해명자료에 드러난 허점에는 아예 눈을 감았다.

미디어오늘이 사제단의 첫 기자회견 이후 1주일 동안 언론의 삼성 비자금 관련 보도를 분석한 결과 보도 건수는 한겨레가 43건으로 가장 많았고 경향신문이 18건, 조선일보가 14건으로 그 뒤를 이었다. 서울신문과 한국일보가 각각 10건씩이었고 중앙일보는 4건에 그쳤다.

기사 면적 역시 한겨레가 1만9141.6㎠으로 단연 많은 지면을 할애했고 경향신문과 서울신문이 각각 6935.2㎠와 6546.2㎠의 지면을 할애했다. 조선일보는 기사 건수는 많았지만 상대적으로 지면 비중은 적었다. 기사의 논조와 방향이 천차만별인만큼 기사의 분량과 비중에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지만 중앙일보와 경제지 등의 소극적인 보도 태도가 주목된다.

특히 경제지들은 노골적으로 삼성의 입장을 대변하고 나섰다. 헤럴드경제는 데스크칼럼에서 “7년 동안 삼성에서 일하면서 100억원대의 보수를 받았고 퇴직한 뒤에도 3년이나 월 220만원씩 챙긴 사람이 하필 지금 ‘배신의 결론’을 내렸는지를 놓고 많은 말들이 오간다”고 지적했다. 유근석 산업1부장은 이 칼럼에서 “불신에서 비롯되는 배신은 또 거대하고 음험한 딜, 음모를 염두에 둔 행동과도 무관치 않다”고 김 변호사를 협잡꾼 수준으로 매도했다.

경제지들은 이 와중에 노골적인 ‘삼비어천가’.

머니투데이는 어처구니없게도 “폭로문건 속 눈에 띄는 이건희식 경영”이라는 제목을 달고 김 변호사가 폭로한 문건이 “이건희 회장의 세심한 경영 스타일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머니투데이는 “현장을 중시하고, 작은 일까지 배려하는 모습이 새롭다”면서 “인재 육성에 대한 관심과 먼 미래를 준비하는 태도, 한 가지 문제를 끝까지 확인할 만큼 철두철미한 모습 등도 인상적”이라고 평가했다.

머니투데이 박종면 편집국장은 칼럼에서 김 변호사를 겨냥, “그의 얼굴 위로 헤어지자마자 과거 사랑한 남자들의 치부를 온 세상에 까발리고 있는 어느 여자 연예인의 얼굴이 자꾸 오버랩 되는 것은 왜 일까”라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박 국장은 “제가 변태인가요?”라는 말로 칼럼을 마무리했다.

사제단의 총무를 맡고 있는 김인국 신부는 언론의 이런 편파적인 보도와 관련, “신정아 사건 때 미친 듯이 달려들던 언론이 하나같이 입을 닫았다”며 개탄했다. 김 신부는 2차 기자회견에서도 “국가 대사를 마치 연예인 추문다루 듯한다”면서 “언론이 제 역할을 했으면 한국 경제가 이런 상황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사제단 대표 전종훈 신부도 “언론이 지엽적인 문제에만 관심을 갖고 드러난 의혹에 대해서는 제대로 쓰지 않는 것 같다”면서 불신을 드러냈다.

이광철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은 11월2일 문화관광부 국정감사에서 “신정아 누드 사건에 열광하고 기자실 문제로 언론자유를 주장하는 언론이 삼성 비자금 문제는 신문 1면에 쓰지도 않는다”며 “군부 권력에 굴복하듯 삼성이라는 경제 권력에 굴복하는데 부끄러움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 의원은 “삼성 비자금 문제는 정권, 언론, 재판부까지 관련돼 국가 근간을 뒤흔드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삼성 X파일을 폭로했던 MBC 이상호 기자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기자실 하나 빼는 것을 두고 국민의 알 권리 침해라며 핏대를 세웠던 언론이 이번 사건을 이런 식으로 보도하고 있는 것을 보면 과연 국민들이 기자들의 주장을 진정성 있게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 문제를 신중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는 반박도 있다. 김 변호사의 주장을 아직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삼성을 출입하는 한 경제지 기자는 “삼성은 국내 대표기업 아니냐”면서 “일방적인 주장을 그대로 받아써서 발칵 뒤집어 놓으면 삼성의 신인도만 문제 되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이 자본 권력에서 벗어나는 게 가능하겠느냐.”

삼성을 출입하는 다른 한 기자는 “삼성에게 불리한 쪽으로 흘러가는 것 같더니 어제 전면 대응에 나선 것 보면 삼성 쪽도 자신하고 있는 것 같다”며 “양쪽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보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모두 “삼성이 유력한 광고주이긴 하지만 광고 때문에 삼성에 편파적인 기사를 쓰지는 않는다”고 항변했다.

물론 기자들이 삼성의 광고 때문에 삼성의 눈치를 본다고 보기는 어렵다. 삼성이 광고를 빌미로 언론을 노골적으로 협박하는 경우도 드물다. 다만 우리 언론이 기업이 잘 돼야 경제가 잘된다는 단편적인 발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현실, 기업의 부정에 유난히 너그러운 현실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정부의 취재선진화 방안과 관련해 기자협회 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KBS 박상범 기자는 “먹고 사는 문제와 관련돼 있어 단지 비판만 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박 기자는 “언론이 자본권력으로부터 벗어나는 게 하루아침에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이들 언론에 대해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2차 기자회견에서는 “주장만 있고 물증이 없다”는 기자들의 지적에 “(그럼) 일방적 주장이라고 쓰라”고 쏘아 붙이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이와 관련, 한겨레21과 인터뷰에서 “삼성에서 나를 개인적인 흠을 잡아 공격하면 이길 방법이 없다”면서 “왜 내 가정사와 개인사를 이야기하느냐”고 항변하기도 했다.

중앙일보는 11월7일 “세 군데 직장 옮긴 김용철 변호사 왜 떠날 때마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김 변호사는 조직을 나올 때마다 ‘원칙을 지키려다 탄압받아 쫓겨났다’고 주장했다”면서 “그러나 검찰· 삼성· 서정의 얘기는 좀 다르다”면서 김 변호사가 이들 직장을 퇴직하게 된 배경에 의혹을 제기한다. 양쪽의 입장을 중립적으로 소개하는 것 같지만 전체적인 뉘앙스는 김 변호사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쪽이다.

김 변호사는 중앙일보의 정보보고가 하루 두 차례 구조본에 올라오기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의 정보력이 뛰어나다고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언론과 자본의 유착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이야기다. 중앙일보가 유난히 이 사건에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다시 살펴보게 만든다. 계열분리됐다고는 하지만 삼성과 중앙일보의 경영진은 친족관계로 얽혀있고 중앙일보는 에버랜드 편법증여 과정에도 개입돼 있다.

김 변호사의 잇따른 폭로 가운데 가장 놀라운 대목은 삼성의 핵심 임원이었던 그가 삼성에 등을 돌리게 된 이유다. 그는 한겨레21과 인터뷰에서 “검사 때는 애들이 나를 존경했지만, 이제는 안 한다. 그리고 그곳을 거치면서 양심을 잃었다”고 말했다. 현명한 독자들이라면 이 대목에서 김 변호사의 진실을 읽을 것이다.

국내 최대 기업의 최고위 임원이 양심을 잃고 자식들에게 존경을 잃는 이 답답한 현실, 한국 현대사를 점철해 온 구조적인 부패의 연결고리를 밝혀내는 것이 이 사건의 본질이다. 언론 역시 이 부패의 고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언론과 자본의 유착을 감시해야 할 때다. 그래야 진실을 밝히고 이 부패의 무환순환을 끊을 수 있다.

(인물과 사상 12월호에 쓴 원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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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1. 그간의 흐름을 깔끔하게 짚어주셨군요. 다시 한 번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혼탁한 대선 정국 때문에 이 심각한 문제가 조금씩 묻히는 것 같아 안타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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