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석유공사가 16일 황당무계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일시적으로 100달러를 넘을 수는 있지만 1년 이상 100달러 선을 넘지는 않을 것이며 석유 고갈까지는 최소 80년 이상이 남았다는 내용이다. 언론은 석유공사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쓸 뿐 아무런 비판도 내놓지 않고 있다.
석유공사 해외조사팀 구자권 팀장이 쓴 이 보고서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석유개발국기구(OPEC)의 감산에 따른 단기적 수급 악화나 이자율 인하, 달러 약세에 의한 투기자금 유입 등은 일시적 요인으로 유가 100달러 시대를 가져올 만한 근본적 요인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내년 유가는 올해보다 10% 정도 오르는데 그칠 거라는 이야기다.
또한 2조3000억 배럴의 통상원유 뿐만 아니라 오일샌드 등을 포함한 7조 배럴의 비통상원유의 10%만 회수해도 매장량이 3조 배럴이 넘어 이론적 고갈시점이 가채연수 40년의 2배를 넘어선다는 것이다. 구 팀장은 “매장량의 75%를 차지하는 OPEC 국가들의 생산 여력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구 팀장의 보고서는 그야말로 상식 이하라고 할 수밖에 없다. 오래된 유전에 물을 부어넣어 석유를 밀어올린다는 사실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문제는 물을 많이 부어넣을수록 압력이 낮아져 채굴 비용이 많이 들고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것. 사우디아라비아의 주요 유전들도 물을 채워 넣기 시작한지 오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피크 오일에 대한 논란도 확산되고 있다. 피크 오일이란 석유 생산이 최고에 이르는 지점을 말한다. 더 정확하게는 석유 생산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 지점을 말한다. 소비는 계속 늘어나는데 생산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말은 아무리 많은 돈을 주고도 석유를 살 수 없게 된다는 말이다. 매장량이 얼마나 더 남아있는가와는 관계가 없다.
쉘 알레크렛 스웨덴 웁살라대학 교수는 지난해 한국을 방문해 한국의 에너지 정책이 미국 에너지정보청의 편향된 정보에 강하게 종속되어 있음을 경고하기도 했다. 실제로 정부는 아직까지도 2030년 유가 전망을 배럴당 57달러 수준으로 산정하고 있다. 유가 급등에 따른 아무런 전망도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독일의 에너지워치그룹(EWG)은 세계 석유 생산이 2030년에는 하루 3900만 배럴에 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재 하루 생산량 8100만 배럴의 48% 수준이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시대가 곧 온다는 이야기다. 녹색연합 이유진 팀장은 “석유공사가 무엇을 믿고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보고서를 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매장량이 아니라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에 있다. 이 팀장은 “하루 생산량이 1배럴인데 2배럴을 소비하는 시대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 유가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치솟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 팀장은 “유가 급등을 경계해도 부족할 상황에 오히려 낙관론을 부추기고 있다”고 강력히 비판했다.